35도를 웃도는 날씨에 덧창을 닫고, 타일 바닥에 천을 깔고 누워있던 시간들이었다.
2층집이라 오후가 되면 태양으로 달구어진 집의 열기가 안으로 스며들며 사우나로 만들었다. 매해 일주일씩 지나가는 혹서는 바람한번 휙 불면 선선한 날씨로 기온이 쑥 내려가더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더위가 올해도 그렇게 지나갔다. 어떻게 비도 내리지 않고 이럴 수 있는지 신기하게 여길 만큼 갑자기 온 가을 날씨에 단비도 내려준다. 겨우내 비올 때는 비가 지긋지긋하다고 여길 때도 있지만, 이번 비는 마냥 반갑기만 하다. 목말랐던 대지와 꽃과 나무들이 달게 마실 단비에 마음까지 가벼워질 정도니 오랜만의 비가 정겨우니 좋다.
이 여름이 지나기 전에 폭염은 신호도 없이 찾아올 것이라, 선선한 바람이 불 때 산책삼아 동네에서 가까운 라니 쉬르 마른을 찾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른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강에서는 여섯 명이 노를 젓고, 한명이 뱃머리에 갑옷을 입고 모형창으로 상대방 기수를 떨어뜨리는 경기를 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며 축제의 분위가 흥겨웠다.
강 뚝 위에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들이 다양했고, 프랑스의 전형적인 가족문화를 한눈에 보듯, 가족과 함께하는 아이들은 놀이를 즐기거나, 아이스크림, 솜사탕과 크레페 등을 먹으며 덥지 않은 날씨에 더 환한 웃음이 가득했다.
라니 쉬르 마른, 다리를 건너야 만나는 마을
라니 쉬르 마른은 파리에서는 26.1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파리 동역에서 기차를 타거나 파리 리용역 앞에서 버스를 타고 La gare de Lagny-Thorigny역에 내리면 바로 제라늄으로 아름답게 장식된 다리가 있다.
다리 위에 서면 강 위를 유유히 거니는 백조무리들이 눈부시게 하얀빛으로 반짝이며 파리를 떠나 교외로 나온 실감을 맛보게 한다. ‘백조의 마을’이라 불릴 정도로 이곳에는 백조가 많지만 이날은 강에서의 축제로 몇 마리의 백조들만이 보였다. 자기네 영역을 내주어야 하는 백조들은 강기슭에서 투덜거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강을 건너면 중세 마을로 이어진다. 13세기에 세워진 아르당 노트르담 성당(Église Notre-Dame-des-Ardents)과 15세기에 세워진 생 푸르시 교회(Église Saint-Fursy)가 마을을 수호하며, 18세기에 세워진 시청, 중세 샴페인 상인들이 사용했던 박공건물들이 오래된 저택들과 함께 여긴 중세마을이란 표시를 하듯 서있다. 광장에는 생 푸르시가 기적을 행했다고 전해지는 장소에 세워진 생 푸르시 분수대가 시원하니 물을 뿜으며 한낮의 빛의 열기를 식혀내고 있다.
라니 쉬르 마른은 아담한 마을이지만 다양한 지역 예술품과 유물을 전시한 가티엥 보네 박물관(Musée Gatien-Bonnet)도 있어 나들이 나온 사람들을 반긴다.
가티앵 보네 박물관Musée Gatien Bonnet à Lagny-sur-Marne)은 1868년에 개관한, 역사가 오래된 시립박물관이다. 박물관 이름인 가티앵 보네는 박물관을 창립한 그 당시의 라니 쉬르 마른의 시장이었던 가티앵 보네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박물관에는 석기시대의 고고학 유물부터 중세 시대의 예술품과 종교품과 라니파의 신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라니파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19세기말과 20세기 초반 라니의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는 것이다.
라니 쉬르 마른은 파리에서 가깝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화가들이 자주 찾던 곳으로 그중에서도 신인상주의 화가들의 많이 모여 그림을 그렸던 곳이기도 하다. 이들을 마을 이름을 따서 라니파(Groupe de Lagny)라고 부른다. 인상파 화가들이 빛의 변화에 따른 색의 변화를 포착하려고 했다면, 신인상파 화가들은 체계적인 광학이론과 색채학에 따른 과학적 이론에 기초한 색채분할을 통해 빛의 효과를 최대한 살려 그림을 그렸다. 신인상파의 대표적인 화가로는 시냑과 쇠라가 있고, 라니파에는 막시밀리앙 루스, 레오 고송, 에밀 콜랑이 대표적인 화가들이다.
박물관에는 그밖에도 19세기 프랑스의 작가·평론가·언론인였던 레옹 블루아(Léon Bloy, 1846~1917)의 자필원고와 유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레옹 블루아는 자연주의 문학과 열렬한 가톨릭 신자로 세기말의 풍조를 향해 신랄한 독설을 퍼붓다가 그의 대표작인 “절망한 사나이”, “가난한 여자”, “가난한 자의 피”제목처럼 소외되어 가난하게 외롭게 일생을 마감했다.
중세 골목길을 따라 돌고 나와 강가를 산책하다 보면 백조들이 거니는 서정적인 풍경이 들어 온다.
북서쪽과는 다른 북동쪽 파리근교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라니 쉬르 마른, 주말에 나들이 삼아 들려보면 또 다른 파리근교의 운치를 느끼는 시간이 될 아름다운 마을이다.
【프랑스(파리)=한위클리】조미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