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폐회식 동시입장으로 상징성 거둬야
뉴스로=로빈 칼럼니스트
2018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남북단일팀 구성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에 단일팀 구성과 남북 동시입장, 북한응원단 초청 등을 제안(提案)한데 따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단일팀 구성을 제안한 취지는 십분 이해가 간다. ‘이명박근혜’ 10년간 남북관계가 극도로 경색돼 스포츠를 통해 관계개선의 물꼬를 트겠다는 것이다.
이미 남북은 단일팀 구성의 역사가 있다. 1991년 탁구세계선수권대회(일본개최)와 세계청소년(U20)축구선수권대회(포르투갈개최)에서 단일팀이 출전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과는 조건 등 상황이 다르다.
당시엔 남북이 모두 세계선수권 출전자격을 얻었다. 축구의 경우, 세계선수권 출전자격이 걸린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남북이 나란히 결승에 올랐고 탁구 역시 남한의 현정화와 북한의 리분희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포진하여 자격에 문제는 없었다.
여타 출전국들이 남북 단일팀을 용인한 것은 해당 세계연맹의 노력과 스포츠를 통한 남북화해 등의 메시지에 공감(共感)한 것도 있지만 그들도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라는 판단도 있었기 때문이다.
즉 세계선수권 출전자격을 갖고 있는 남북이 하나의 팀이 되면서 남는 자리를 얻는 팀이나 선수들이 생긴 것이다. 돈을 주고 살수도 없는 출전권이 공짜로 생기는데 반대할 이유도 없었을뿐더러 남북이 합친다고 경기력이 올라갈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91년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당시 축구기자였던 나는 남북단일팀을 반대하는 칼럼을 쓴적이 있다. 갈라진 남북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한민족으로서 열렬히 원하지만 인위적인 단일팀 구성은 스포츠를 정치화하는 것이며, 오히려 전력을 떨어뜨리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축구의 경우, 남북이 아시아 1, 2위 팀이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단일팀이 구성되면 전력이 상승할 것이라는 단순계산을 했다. 그러나 11명이 오랜 훈련을 통해 호흡을 이뤄야 하는데 기계적으로 50:50을 구성하면 오히려 전력에 해가 될 가능성이 많다. 최고의 선수들로 반반씩 구성한다해도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이념과 정서가 다른 청소년들이 물과 기름처럼 겉돌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끝에 단일팀은 성사됐고 남북청소년팀은 조별 예선을 통과해 8강까지 올랐다. 언론은 단일팀이 됐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감상적인 기사를 쏟아냈지만 난 여전히 동의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대로 남북은 아시아 최강이었다. 수년간 호흡을 맞춘 남북이 각각 출전했더라면 더 좋은 성적을 거뒀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남북이 나란히 예선을 통과해 8강 혹은 4강에서 만났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세계는 남북이 벌이는 활약에 매료되고 언젠가 통일되어 한팀으로 나온다면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통일 코리아’에 경외감도 갖게 되었을 것이다.
탁구의 경우, 축구와는 또 조금 달랐다. 여자단체전에서 남한은 중국의 벽에 가로막혀 만년 준우승팀이었기 때문에 전력이 상승된다 해도 중국만 양해하면 가능했다. 중국이 단일팀을 용인(容認) 한 것은 남북을 배려하는 정치적 결단을 내리기 쉬운 나라였고, 설사 남북이 합쳐도 중국의 전력을 깨기 어려울 것이라는 자만심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실례로 서독과 동독이 단일팀으로 출전했던 1956년 멜버른 올림픽과 1960년 로마올림픽때 단일팀은 금메달 숫자가 이전보다 줄어들었다. 91년 세계탁구선수권에서 남한의 일인자 현정화와 북한의 일인자 리분희가 짝을 이룬 복식에서 단일팀은 중국에 0-2로 완패했다.
어쨌든 탁구는 남북 선수들이 미묘한 정서상의 차이와 보이지 않는 갈등을 잘 풀어냄으로써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어찌보면 정치적 시험대에 오른 선수들이 줄어든 성공의 확률에도 마음을 열고 힘을 합쳐 훌륭하게 장애물을 극복한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단일팀으로 인해 희생되는 소수(小數)가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대표팀에 발탁돼 오랜 세월 땀흘린 남북의 선수들이 엔트리의 제한으로 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단 선수만이 아니라 일부 임원진 역시 세계선수권 출전의 영광을 놓치고 말았다.
게다가 여자아이스하키는 북한이 출전자격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설사 IOC가 단일팀 출전을 승인한다 해도 남한의 일방적인 희생이 불가피하다. 전력이 떨어지는 북한 선수들을 5대5 균등선발하면 팀 전력 또한 추락이 불보듯 훤하다. 무엇보다 북한선수들로 인해 선발에서 제외되는 남한 선수들의 피해를 어떻게 보상해야 하는가. 태극마크를 어렵게 딴 후에 오직 평창올림픽만 바라보며 긴긴 세월 땀흘린 선수들의 희생을 누가 강요(强要) 할 수 있단 말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1991년 최초로 남북 단일팀을 구성해 최고의 성적을 거뒀던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세계청소년축구대회의 영광을 다시 보고 싶다”고 했지만 이는 스포츠를 모르는 순진한 발상이다. 더구나 지금까지 땀흘린 선수들이 하루아침에 인생의 꿈을 놓쳐야 한다면 대통령의 제안은 너무 경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장웅 IOC위원은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 단일팀이 성사되기까지 무려 22차례의 남북회담을 했다”며 단일팀 구성에 난색(難色)을 표했다. 경험과 실무에 밝은 그로선 당연한 반응이다. 단일팀 구성은 불과 8개월을 남겨둔 평창올림픽이 아니라 2022년 올림픽에서나 논의가능한 화두(話頭)일뿐이다.
북한이 자랑하는 마식령 스키장 시설을 일부 활용하는 것도 논의할 수는 있겠지만 이미 시기적으로 늦었다. 미사일과 핵실험 등으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는 국면도 그렇거니와 북한이 비록 제한된 시설일망정 수많은 선수단과 관광객들의 출입을 허용할 것 같지도 않다.
결론적으로 남북은 평창올림픽에서 개폐회식 동시입장과 공동응원단 구성에 합의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서 남북한은 한반도기를 들고 사상 처음 동시 입장하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남북이 하나되는 동시입장은 2002년 부산 하계아시안게임과 2003년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2004년 아테네 하계올림픽, 2005년 마카오 동아시안게임,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과 도하 하계아시안게임, 2007년 창춘 동계아시안게임까지 총 9차례 이어졌다.
지난 '이명박근혜' 정부의 10년은 남북으로서 잃어버린 세월이었다. 금강산관광은 중단됐고 남북경제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도 폐쇄됐다. 찔끔찔끔 하던 이산가족 상봉도 언제 재개될지 가늠할 수도 없다. 남북이 불신의 시간을 보내면서 북한과의 대화나 협력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過猶不及)’고 했다.
남북이 그간 쌓인 불신의 기류를 조금씩 걷어내면서 다시 화해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야말로 단일팀이라는 정치적 합의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로빈의 스포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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