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어하우스 3박이 특별환대라구라?
뉴스로=소곤이 칼럼니스트
영빈관(迎賓館)과 게스트하우스.
두 단어는 대저택과 초가삼간만큼의 차이가 느껴진다. 영빈관의 사전적 의미는 ‘귀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따로 잘 지은 큰 집’이지만 영어로는 그냥 ‘게스트 하우스’ 일뿐이다.
워싱턴 DC에서 외국 정상의 영빈관을 일명 ‘블레어 하우스(Blair House)’라고 하는데. 정식 명칭은 ‘President's Guest House’다. 영빈관을 대통령의 게스트하우스라고 하면 많이 격이 떨어져 보이지만 어쨌든 영어로는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부터 3박5일 일정으로 미국 방문에 들어갔다. 문 대통령의 숙소인 ‘블레어 하우스’ 얘기를 하게 된 것은 한국 언론의 호들갑 때문이다. 본래 2박이 허용된 블레어 하우스 투숙이 3박으로 늘어나 각별한 예우(禮遇)를 받게 됐다는 기사가 나온 것이다.
이같은 보도는 동아일보의 워싱턴 특파원이 가장 먼저 했고 이어 연합뉴스, 서울신문, 경향신문, 이데일리, MBN 등 거의 모든 주류 언론이 따라 썼다. 대체 블레어하우스에서 3박을 하는게 뭐가 그리 대단한지 궁금했다.
블레어 하우스는 백악관 바로 옆 펜실베니아 애버뉴에 위치한 타운하우스 4개동으로 이뤄진 건물이다. 1942년부터 백악관이 외국 정상의 숙소로 쓰기 시작했고 두차례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했다.
한국언론은 블레어 하우스에 무려 115개의 객실이 있다고 소개했지만 이는 방(room)의 영어 개념을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집을 언급할 때 room은 객실(bed room)과 욕실(bath room) 거실(living room) 식당(dining room) 등 모든 종류의 공간을 포괄한 개념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블레어 하우스는 베드룸이 14개, 배쓰룸(욕실)이 35개 등 총 119개의 방(room)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특파원은 익명의 워싱턴 관계자 말을 빌어 문 대통령이 국빈방문(State Visit)이 아니라 실무방문(Ofiicial Working Visit)‘임에도 블레어 하우스에서 3박을 하게 된 것은 이례적 환대(歡待)라고 평가했다.
2박은 실무방문, 3박은 국빈방문이라는 얘긴데 위키피디아를 통해 관련 정보를 검색했지만 투숙일수와 국빈방문의 함수관계(函數關係)를 확인할 길은 없었다. 정작 흥미로운 것은 문 대통령이 2박에서 3박으로 조정되는 과정이 각별한 예우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사실이다.
당초 백악관은 청와대의 3박 요청에 ‘실무방문은 2박까지 할 수 있다’는 내부 규정으로 불가하다는 뜻을 표명했다고 한다. 이에 청와대는 외교부까지 동원해 3박을 강력 요청했고 (여차하면 일정을 이틀로 줄인다는) 배수진을 친 끝에 기어코 관철(貫徹)시킨 것이다. 익명의 관계자는 이게 정말 자랑할만한 내용이어서 기자에게 제보했을까.
알려진대로 이번 방문은 트럼프 대통령의 초청에 따른 것이다. 게다가 백악관은 한반도에 기습 배치한 싸드 포대와 무역불균형 문제 등 문대통령의 양보를 얻어야 할 사안이 많다. 극진한 대접은 기본이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블레어 하우스에서 3박은 곤란하다고 난색(難色)을 표했다면 문 대통령을 환대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내규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다른 행사 일정 때문에 사흘씩 제공하는 것이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외교부까지 동원해 ‘어거지 1박’을 따냈고 이를 전리품(戰利品)이라도 된 양 자랑스럽게 언론에 공개했다.
문 대통령에 누(累)가 될 수도 있는 ‘내막’을 보도한 것이 혹시나 보수 미디어 동아가 진보 대통령에 호의롭지 않아서 예우를 가장한 물먹이기가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미디어도 따라 쓴 것을 보면 청와대의 숙박일 늘리기 작업(?)은 사실로 보인다.
문대통령은 취임이후 어깨에 힘을 빼고 소탈한 모습을 여과(濾過)없이 보여주며 국민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고 있다. 그런데 청와대와 외교부는 블레어하우스에서 하루 더 자게 됐다고 특별 환대요, 예우 타령이다.
탄핵된 박근혜까지 들먹이며 과거 워싱턴 방문시 블레어 하우스에서 2박을 했는데 문대통령은 3박을 한다고 수선을 떠는 것은 낯간지럽다. 아닌 말로 외국 순방시 화장실도 개조했는데 그깟 블레어 하우스 1박을 못늘리겠는가.
이번 방미는 문 대통령으로서도 커다란 시험대(試驗臺)가 아닐 수 없다. 한미간 선린우호와 동맹관계를 우선시하더라도 촛불민심을 기억하고 진정한 국익을 위해 할 말은 하는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근데 전혀 중요하지도 않은 블레어하우스 1박을 늘리려고 아쉬운 소리를 했다면 처음부터 밑지고 들어가는 셈이 된다.
요즘 미국을 방문하는 외국 정상들은 협소(狹小)한 블레어 하우스를 기피하는 경향이 많아 국빈 숙소보다는 국제회담 장소로 더 많이 활용되고 있다. 하물며 격식과 겉치레, 권위주의를 내던진 문 대통령에게 블레어 하우스 추가 숙박이 뭐가 대수겠는가. 블레어 하우스든 블루 하우스든 편한 곳에서 잠만 잘자면 장땡인 것을, 청와대 보좌진은 쓸데 없는 일에 정력을 허비하지 말고, 한국 언론은 시시콜콜 신변잡기(身邊雜記) 중계는 고만 작별하기를 바란다.
*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소곤이의 세상뒷담화’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s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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