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연주하는 악기는 다르지만, 10대 초반부터 세계무대를 향한 순수한 음악가의 열정 하나로 함께 꿈을 키워온 젊은이들의 있다. ‘음악은… 하나의 그림이나 이야기와 같다’고 말하는 이 아름다운 두 청년…
한 명은 마르세이유 오케스트라의 최연소 악장으로 또 다른 한 명은 명성있는 국제콩쿨을 모두 휩쓸다시피 하고, 현재 미국 보스톤에 거주하며, 연주여행 스케줄로 한 곳에 오래 머물 시간적 여유가 없다. 오는 10월 9일 마들렌느 성당에 올려질 ‘제 8회 한불친선콘트 MEMOIRE’에 ‘외인부대 오케스트라’와 협연 준비에 한창인 두 솔리스트를 만나본다.
두 사람 모두 CNSM 최연소 입학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졌는데...
(다민) 파리에 만11세에 왔다. 12세에 CRR de Paris(파리시립음악원)에 (지금은 시스템이 많이 바뀌었지만 그 당시에는) ‘최고연주자과정’ 바로 아래 ‘슈페리어’ 과정에 최연소로 입학하여 Suzanne Gessner 선생님을 사사하였고, 1년 반 후에 파리고등국립음악원에 역시 최연소로 수석 입학하였다.
(상윤) 지금 얘기지만, 아주 운이 좋게 입학을 한 경우다. 처음 파리에 가서 말메종 국립음악원에서 Florent HAEU 선생님과 공부 후, 2005년에 파리고등음악원에 입학을 했다. 당시에 뽑힌 5명 가운데 내가 제일 어리긴 했지만, 마지막 등수로 들어갔다(ㅎㅎ).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첫 클라리넷 입학자였다는 것이 제일 큰 감동이었던 것 같다.
음악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다민) 음악은.. 하나의 이야기 같다. 물론 많은 작곡가들의 방식, 사상, 배경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 곡들을 다시 재해석하고 나만의 곡으로 표현할 때, ‘아, 내가 음악을 하는구나’ 싶다. 때로 관객들도 나의 해석을 알아주고 함께 감동을 공유할 때면 그것보다 큰 보람은 없는 것 같다. 음악은 내게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모두를 위한 이야기’라 하겠다.
클라리넷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상윤) 어렸을 적 부모님의 권유로 피아노를 쳤는데 연습시간이 너무 힘들고 지루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피아노 대신 목관악기를 한 가지 골라서 취미로 해보기로 결정하고 고른 악기가 클라리넷인데, 그 이후로 클라리넷 연주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음악가로서 가진 철학이 있다면.
(다민)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사사하였던 Gyula Stuller 선생님께서 음악을 그림에 비유하셨던 기억이 난다. 음악은 그림이고, 나는 화가인 비유. 그 수많은 색깔들로 어떤 표현을 할지는 개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그림에는 항상 크기가 있고 틀이 있다. 그 크기와 틀이 ‘르네상스’, ‘바로크’, ‘고전’, ‘낭만주의’, ‘현대’ 등등으로 나뉘어지는 것이다. 그 정해진 크기와 틀을 넘지 않는 선에서, 색깔을 정하고 어떻게 그릴지는 화가의 자유다. 그러므로 음악은 내게 ‘그림’과 같다.
오랜만에 프랑스에서 다시 공연을 하게 되는데, 소감은..
(상윤) 파리에 중학교 3학년 때 유학을 가서 거의 9년 가까이 유학생활을 했다. 나에게는 제2의 고향같은 곳이고, 음악적으로 악기쪽으로 나를 지금까지 이끌어준 원동력이 된 곳이다. 그런 곳에 다시 돌아와 연주를 하게되어 가슴 벅차고 설렌다. 10월 중순에 보스톤에서 다른 협연이 있어서 바쁘긴 하다. 그래도 먼저 계획된 파리 연주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나마 곡이 얼마전 콩쿨때 예선곡으로 했던 곡이라 조금은 마음 편히 연습중이다.
국제 콩쿨에서 큰 상을 받고 달라진 것이 있다면.
(상윤) 올해 프라하 콩쿨 이후 조금씩 연주 스케줄이 생기고 있어서 다행스럽고 감사히 생각하고 있다. 여러콩쿨을 나가면서 나 스스로의 자신감도 찾고, 다양한 연주로 세계 곳곳에서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인 것 같다.
최연소 악장이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럽지는 않나?
(다민) 가끔은 ‘악장’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기대를 하지 않을까 하는 부담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미 준비가 잘 되었고, 내가 원하는 음악적 사상이 확실할 때면 자연스럽게 음악을 즐기게 되는 거 같다. 그러므로 ‘악장’이란 타이틀은 내게 부담이 아닌 매번 나를 돌아보게 하는 좋은 기준이다.
세계적인 콩쿨을 모두 석권한 경우 같은데,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언제인가?
(상윤) 3번의 콩쿨 우승 중 아무래도 가장 오래 기억이 남는 것은 얼마 전 프라하 국제 콩쿨(2015)이 아니었나 싶다. 나이도 나이인 만큼,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참가한 콩쿨이었고, 대한민국 남자로서는 불가피한 병역 문제가 해결이 될 수 있는 콩쿨이었기에, 부담도 되고 많이 떨렸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 우승을 했지만, 매 라운드마다 많은 긴장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마지막 콩쿨 무대라는 생각에 허심탄회하게 연주를 한 면도 있는 것 같다. 특히 마지막 파이널 라운드에서 ‘모차르트와 코플란드 협주곡’을 ‘프라하 드보르작홀’에서 연주할 때의 감동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이런 좋은 홀에서 언제 또다시 클라리넷의 주된 레파토리 두 곡을 같이 연주 해볼 날이 올까 싶어 가슴 벅찬 연주를 했던 것 같다.
프로 음악가로 활동하면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다민) 무엇이든 하면 할수록 발전하는 것처럼, 점점 무대가 즐거워진다. 많은 사람과 내 음악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그 나눔의 소중함을 매번 느낀다.
보스톤의 생활은 어떤가?
(상윤) Boston University에서 작년부터 박사 과정을 시작했다. 한국과 여러나라를 다녀야 하는 연주 일정 때문에 이번 학기는 잠시 휴학을 해놓은 상태다.
자신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라면...
(다민) 신념이랄까. 크리스챤인 나에게는 믿음이다. 내 인생에 옳은, 혹은 개개인이 옳다고 정의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신념, 또는 그 분이 선하게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때로는 잘 되다가도 또 넘어질 수 있는 게 인생 아닌가. 인생에 좋은 길, 나쁜 길은 없는 것 같다. 모든 것이 하나의 과정인 만큼 어떤 길이든 확실한 방향, 목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반 오케스트라가 아닌 군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게 되는데. 곡 선택 등에 어려움은 없는지
(상윤) 군 오케스트라, 특히 관악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처음이라 떨리기도 하고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곡 선택에 있어서도 관현악단과는 달리 제한이 있고, 하지만 파리고등음악원을 다닐 때부터 군오케스트라의 명성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고 많은 친구들이 군 오케스트라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여전히 활동 중인 것으로 알고 있기에 기대도 많이 되고, 설렘으로 공연준비를 하고 있다.
(다민) 사실 바이올린과 관악 오케스트라 곡으로는 근대음악에 독일작곡가 Kurt Weill이 작곡한 바이올린 콘체르토 빼고는 거의 없다. 다 편곡을 해야하는 상황인데 Emile Lardeux 지휘자께서 잘 준비를 해주셔서 난이도가 특별히 높은 곡들은 아니지만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즐길 수 있는 곡들로 선정하였다.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다.
(상윤) 파리 연주후 보스톤에서 Brookline Symphony Orchestra와의 협연, 한국에서 광주시향과의 협연을 앞두고 있다. 내년 5월에는 프라하 춘계 페스티벌에서 BBC symphony orchestra와 협연이 예정되어 있어 준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시 태어나도 바이올린을 할 것 같은가?
(다민) 음... 사실 피아노를 들을 때 종종 피아니스트였어도 좋았겠다고 생각에 잠기곤 한다 (어렸을 때 너무 싫어해서 바이올린으로 바꿨지만...). 그래도 역시 현악기만이 표현할 수 있는 소리, 비브라토, 그리고 그 중에서 바이올린이 가지고 있는 음역대가 역시 내겐 제일의 매력이다. 뭐 다시 태어나봐야 알겠지만. (웃음)
음악을 하는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상윤) 요즘 우리나라 후배들이 정말 너무 잘 하고 있는 것 같아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있다. 얼마 전에도 파리고등음악원에 또 다른 클라리넷 입학생과 한국인으로서는 첫 트럼펫 입학생이 생겼다는 얘기를 들었다. 너무 자랑스럽고 최고의 학교인 만큼 앞으로 세계 무대를 많이 빛내주길 바란다.
끝으로 다민군의 마르세이유 커튼 심사 때 얘기를 들려줄 수 있가?.
(다민) 처음에 마르세이유 오케스트라 악장 콩쿨을 보러 가기 전에 지인들이 "콩쿨 때 칸막이가 있을 것이다"라고 해서 그런가 보다하고 무작정 갔었는데 막상 마지막 순서로 마르세이유 오페라 홀에 들어가보니 2,5미터는 될만한, 그리고 엄청 넓은 칸막이가 놓여 있었다. 그 바로 앞에 서서 도대체 이게 누구를 위한 음악인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1차가 지나간 것 같다. 마르세이유까지 가서 벽 보고 혼잣말하는 느낌이랄까.(웃음) 2차 이후, 마지막으로 혼자 파이널에 올라갔을 때는 다행히도 칸막이에 익숙해져 있었고, 악장이라면 자주 솔로부분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어떻게 하면, 이 오페라 홀을 소리로 장악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하며 콩쿨에 임했던 것 같다.
칸막이를 쓰는 여러 오케스트라에서도 파이널 만큼은 걷는 편인데, 유독 마르세이유 오페라에서는 끝까지 ‘칸막이 심사’ 주의를 지키고 있다. 그렇게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치뤘던 콩쿨을 마치고 칸막이 덕분에(?) 심사위원들의 반응도 전혀 모른 채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때, 수 만가지 생각이 교차하며 홀가분하면서도 긴장이 많이 되었다. 그 시간이 한 15분 정도였는데 그 날 치뤘던 콩쿨시간보다 길게 느껴졌다.
오케스트라 총관리인이 내게 와서 ‘합격이다~, 심사위원들을 보러 가겠느냐?’라고 말해주었을 때 실감 대신 머리가 몽롱했고, 극장 홀로 들어가보니 스트라스부르그, 니스 오케스트라 악장들을 포함한 심사위원 9명, 그리고 악장인 만큼 콩쿨을 들으러 왔던 10명이상의 단원들이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로 맞아주었을 때에 느꼈던 그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무리 명성이 높은 음악가도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서 완성되어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두 사람의 연주여행이 늘 기쁨으로 충만하길 빌어본다.
【한위클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