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생활 이야기] 오래 전 넘긴 자동차 정비소를 방문하다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송석춘 = 옛날에는 '개천에서 용난다' 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었으나 이삼십년전부터는 들을수도 없고 또 불 수도 없어졌다. 대신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나왔느니 ‘흙수저’를 물고 나왔느니 하는 말을 자주 듣고 보게 되었다.
이민생활을 하다보니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먹는다'는 말을 떠올리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이민 초기에는 나처럼 땀을 흘려가며 힘든 노동을 해서 얼마나 달러를 벌 수 있겠나 하는 말도 들었다.
나는 오늘 내 차 수리를 위해 예약된 시간에 딱 맞춰 갔다. 이 공장은 내가 은퇴하면서 인도인에게 넘겨준 곳이다.
자동차 열쇠를 맡기고 나오면서 공장 입구에 떨어진 오물들을 주섬 주섬 주워 쓰레게 통에 버렸다. 이런 습관들은 내가 정비공이었을 때 고객 혹은 다른 정비공들에게 바라던 것이었고, 나 또한 지키려 애를 썼던 것이다.
많은 빚을 지고 1980년 6월 6일 처음 사업을 시작한 정비공장을 찾아갔다. 이곳은 내가 차를 막 맡긴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러나 공장이 너무 지저분해 들어가지 않고 발길을 돌려 지역에 있는 여러 정비공장을 들러 인사를 했다.
공장 주인이 여러 번 바뀌어 있었다. 그곳은 삼사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별로 없다. 2차선 도로가 4차선으로 넓어졌을 뿐 새로운 건물이나 상가 하나도 들어선 것이 없다. 아마 이곳만큼 변화가 없는 곳은 올랜도에서 찾기 힘들 것이다.
또 하나 변치 않는 것이 있다면 아직도 많은 정비공들이 담배를 피운다는 것이다. 화이트 칼라 직업을 가진 사람이 블루 칼라 직업을 가진 사람보다 평균 수명이 10년 이상 길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는 데, 자동차 정비공들의 수명이 염려된다.
다시 차를 맡긴 곳을 가니 캐리비안 아메리칸 정비공이 내 차의 마지막 타이어를 들어 올리고 있다. 내 차 타이어는 지금까지 생산된 소형차 중에서 사이즈가 제일 큰 것이니 무게가 상당할 것이다. 나는 단 한번도 들어 보지 않았으나 짐작이 충분히 갔다.
60도 되어 보이지 않은 이 정비공도 입에 항상 담배를 물고 있다. 그의 모습에서 병색이 보이는 것은 나의 지레 짐작인 탓일까. 그의 옷은 아침 9시 20분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땀에 흠뻑 젖어있다. 옛 나의 모습이 겹쳐 안쓰러워 보인다.
이 정비공은 내가 옛날에 하던 식으로 타이어 낫도를 손으로 하나 하나 조이고 나서 마지막으로 인펙 렌치로 잠그었다. 나는 나의 용돈 일부를 그의 윗 작업복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계산을 하려고 하니 주인은 내가 약속대로 자신에게 공장을 자기에게 넘겨준 것을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며 부속 값만 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땀 흘린 값을 지불했다. 새로 타이어를 갈아준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니 승차감이 얼마나 다른 지 새삼 감탄이 나왔다.
한국에서나 미국땅에서 힘든 노동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낙심하지 않고 열심히 일해 그 열매를 '정승처럼' 먹는 날이 오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