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노창현칼럼니스트 newsroh@gmail.com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8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유엔이 강경화를 빼앗겨 많은 것을 잃었다”고 농(弄)을 던졌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마지막 날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을 만났는데요. 인사말에서 “지난번 통화에 이어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총장님을 보좌하던 강경화 정책특보가 우리 대한민국의 첫 여성 외교부 장관이 되어 기쁘게 생각하실 것으로 기대합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제 밑에 있었던 직원이 대통령님 밑으로 가게 된 것을 조금 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유엔은 강 장관을 빼앗겨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조금은 아쉽습니다”라고 농담해 폭소가 터져 나왔습니다.
아마도 많은 독자들은 흐뭇하게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조크를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입맛이 썼습니다. 안그래도 아픈 상처(?)를 구테흐스 총장이 건드렸으니까요. 지난 6월 6일자 칼럼 ‘강경화후보자에 대한 또다른 생각’에서 저는 문재인정부의 강경화 지명은 ‘뼈아픈 실책’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강 장관은 아다시피 자타가 인정하는 유엔 전문가입니다. 지난해 10월 구테흐스 당선인의 유엔사무 인수팀장을 하다 12월 정책특보로 임명됐습니다. 이정도면 예사 전문가가 아닙니다. 앞으로 10년간 유엔의 수장(首長)을 맡은 구테흐스 사무총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측근중의 측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문 대통령은 외교부 장관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유엔에서 보이지 않게 대한민국의 이익을 수호하고 막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을 우리 스스로 빼내 버린 것입니다. 굳이 그녀가 아니더라도 외교부 장관을 훌륭하게 수행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겠지만 유엔에서 그녀를 대신할 수 있는 한국인은 존재하지 않기에 저는 답답하고 안타까웠습니다.
일본은 속으로 쾌재(快哉)를 불렀을 것입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측근으로 유엔 내부에서 일본에게 불리한 조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저절로 사라졌으니까요. 한일간 외교는 개인의 역량보다는 국가가 취하는 기본 스탠스가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강경화 장관이 빼어난 외교적 수완을 갖추고 있다 해도 그녀의 ‘개인기’가 한일간 특수한 외교에서 작용할 여지는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외교장관의 역할이 한일문제로 국한(局限) 되는 것은 아니지만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관점에서 한일간 외교의 비중이 큰 것은 사실입니다.
구테흐스 총장은 이날 강 장관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포옹한채 '양볼 비비기'로 반가움을 표했습니다. 이어 “강 장관이 좋은 동료이자 친구이기에 새로운 직책을 맡은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복잡하고 도전적인 대외 환경을 헤쳐나가는 데 있어 최고의 성공을 기원합니다”라고 덕담을 건넸습니다.
그 역시 취임 초기 강경화정책특보가 없는 것이 못내 아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유엔이 강경화 장관을 빼앗겨 잃은 것보다 대한민국이 잠재적으로 잃은 것들이 훨씬 많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버스 지나간뒤 손흔들기지만 강경화 장관이 구테흐스 총장과 함께 몇 년이라도 손발을 맞춘 연후에 외교부 장관으로 영전하였다면 참으로 좋았을 것입니다. 유엔에서 구테흐스 호를 안착(安着)시키고 어느정도 자신의 존재감도 과시한 다음에 말입니다. 더불어 자신의 후계자가 될 한국인 전문가들도 양성하였더라면 금상첨화(錦上添花)였을 것입니다. 강경화 장관같은 인재라면 문재인 정부하에서 외교장관을 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을테니까요.
어쨌든 문재인정부는 ‘강경화 빼내기’로 인한 유엔에서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치밀한 전략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강경화 장관의 보이지 않는 역할 또한 필요한 이유입니다.
취임후 미국에 독일에 정신없이 수행하던 강경화 장관이 최근 에티오피아에서 일어난 한국대사관 고위직원의 성폭행 사건으로 격노(激怒)했다고 합니다. 문제의 파렴치범은 엄중한 조사후 일벌백계(一罰百戒)의 징벌을 가해야겠지만 차제에 세계 각국에 파견된 외교관들에 대한 엄격한 평가관리를 통해 전면적인 물갈이를 할 것을 제안합니다. 현지에서 채용한 대사관의 행정직 계약직 직원들이 전형적인 을의 입장에서 갑의 횡포에 휘둘리는 것 또한 시급히 개선해야 할 사항입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비외무고시 출신에 외교부 최초의 여성장관이라는 기록을 세운 강경화 장관이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는 과감한 개혁으로 대한민국 청사(靑史)에 남을 멋진 외교부 장관이 되어줄 것을 기대해 봅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창현의 뉴욕편지’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