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에스 오픈 뒷얘기] '한국 선수 독무대' 대회에 미국 언론 볼멘 소리
▲ 박성현 선수가 미국 최고 권위의 유에스 오픈 골프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소식을 전한 <유에스 에이 투데이> 17일자. |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한국의 박성현 선수(23)가 16일 미국 뉴저지 베드민스터 트럼프 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막을 내린 미국여자플로골프(LPGA) 유에스 오픈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4라운드 최종 합계 11언더파 277타. 한국 아마추어 최혜진(17) 선수는 2타차로 2위에 올라 일약 차세대 기대주로 떠올랐다.
72년의 역사를 가진 유에스 오프 대회는 4대 메이저 대회 가운데 하나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번 홀이 내려다 보이는 로열 박스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어 더욱 주목을 받았다. 박성현 선수의 우승이 확정되자 트럼프가 선 채로 박수를 치는 장면이 미국 매체의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트럼프는 최혜진 선수가 2타차로 2위를 차지한 것에 대해서 "매우 흥미롭다"라고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 선수의 성적은 유에스 오픈 역사상 아마추어 선수로는 가장 뛰어난 것이다. 1999년에 한국의 박지은이 세운 기록보다 4타나 더 좋은 성적이다. 유에스 오픈 대회에서 아마추어가 우승을 차지한 것은 1967년 캐서린 라코스트 선수가 유일하다.
그런데 이번 대회를 중계한 미국 미디어들은 당황스런 기색이 역력했다. 10위 안에 든 선수들 가운데 미국 이름을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 없었기 때문. 한국 선수들이 1위에서 4위까지 휩쓴 데 이어 14위까지 무려 9명의 한국 선수들이 포함된 데 반해, 단 한 명의 미국 선수만이 11위에 겨우 오르는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미국이 자랑하는 최고 권위의 여자 오픈 골프 대회에서 ‘South Korea’ ‘South Korea’ ‘South Korea’ ‘South Korea’ ‘'South Korea' 'Swiss’ 'China' ‘South Korea’ South Korea’ ‘Sohth Korea’… 식으로 이어진 리더보드를 보는 미국 기자들의 심사가 어떨 지는 짐작이 되고도 남겠다.
유에스 오픈 대회는 1998년 박세리가 한국 선수로는 첫 우승을 차지한 이래, 한국 선수들이 지난 19차례 대회에서 무려 9차례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30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 선수들과 서양 선수들이 독무대를 이뤘던 대회가 이제는 한국 선수들이 우승을 '반타작' 하는 대회가 된 것이다.
<유에스에이 투데이>는 "박세리가 선수가 우승하는 장면을 지켜본 한국의 소녀들은 부모들을 졸라 너도나도 골프채를 들었다"며 "이후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더이상 비밀스런 일이 아니다"고 적었다. 이번 대회만 하더라도 프로와 아마추어가 모두 참가할 수 있는 오픈 대회에 29명의 한국 여자 선수들이 필드에 몰려들었다. 55명이 참가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숫자이다.
유에스 오픈 사상 최악의 성적 거둔 미국
< AP >, < USA Today > 등을 포함한 미국 언론은 이번 대회에서 26세의 매리나 알렉스가 선두에 7타자 뒤진 공동 11위에 오르는데 그친 것을 놓고 탄식과 불만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그도 그럴 것이 유에스 오픈 대회 72년의 역사에서 '탑10'에 미국 선수가 한 명도 끼지 못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난 2012년 대회에서 폴라 크리머가 7위에 오른 데 이어 이번에는 아예 10위에도 들지 못한 '지리멸렬의 성적'을 거둔 데 대해 미국 언론이 미국골프협회(USGA)에 질문 공세를 하자 원칙적인 답변이 되돌아 왔다.
"유에스 오픈 챔피언십 대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USGA는 여성 골퍼들이 최고 수준의 대회에서 당당하게 경쟁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국제적 수준의 퀄리파잉을 거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제공되는 골프 필드는 전 세계의 수 백만명의 젊은 팬들과 선수들을 고무하고 있고, 우리는 리더 보드에 수준급의 선수들이 이름을 올리는 것을 매우 스릴 있게 지켜보고 있다."
< AP > 통신의 스포츠 기자는 트럼프가 이번 주말 내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글귀가 새겨진 빨간 모자를 쓰고 있는 터에 이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 ‘매우 흥미롭다’"면서 "다음 번에는 트럼프가 미국 골프를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olf Again)라고 새긴 모자를 쓰고 나올 지 모른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여성 권익 단체 소속 ‘울트라 바이올렛’ 여성 4명은 트럼프의 로열 박스 오른편에 서서 '골프장에서 트럼프 추방' 티셔츠를 입고 침묵 시위를 벌였다. 티셔츠에는 "미국골프협회에게: 섹시스트 트럼프를 내다 버려라(USGA: DUMP SEXIST TRUMP!)" 글귀가 쓰여 있었고, 트럼프는 이들이 시위하는 장면을 간간이 내려다 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시위는 지난 대선 기간 한 성인물 배우가 '트럼프가 10년 전 타호 호 골프 경기장의 한 부스에서 처음 만난 그날밤 성적 요구를 해 왔다'고 주장한 것 등을 직접 겨냥한 것 외에 성추행 피해 여성들의 연이은 증언들, 그리고 그의 노골적인 성차별적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들은 "성추행을 자랑하는 남성이 소유한 골프장에서 대회를 열고, 이를 지원하여 골프대회를 여는 것은 부당하다"면서 "우리는 두 눈으로 그를 똑바로 바라보기를 원했고, 이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쩌면, 앞으로 미국민들은 ‘골프광’이라는 트럼프가 관람하는 LPGA 메이저 대회에서 “미국 골프를 위대하게”라고 쓰여진 글귀와 더불어 “트럼프를 내다 버려라!”는 글귀를 텔레비전 화면에서 종종 마추치게 될 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