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경제적 성장이 주는 풍요를 누리고 있는 반면 도덕과 윤리는 실종됐고 가치관과 인간 존중 의식의 상실, 무한경쟁의 ‘전쟁’ 중에 살고 있습니다...” 시드니를 비롯해 호주 주요 도시 한인 가톨릭 교우들과 만나기 위해 시드니를 방문한 한국 가톨릭 대전교구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는 “종교의 핵심 이념인 ‘사랑’은 소진되고 인간 사이의 메마름이 자리를 굳혀가는 이 시점에서 인간 존중(사랑)을 기본으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숙제”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사진은 지난 2006년 시드니 한인성당을 방문, 견진성사를 집전하는 유 라자로 주교.
시드니 방문, 한국 가톨릭 대전교구 교구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 강조
“가톨릭교회의 핵심 이념은 인간에 대한 존중, 사랑이다. 예수님의 삶 또한 그랬다. 오늘날 우리는 엄청난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고 풍요를 누리고 있는 반면 도덕과 윤리는 실종됐고 가치관과 인간 존중 의식의 상실, 무한경쟁의 ‘전쟁’ 중에 살고 있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 참 인간 정신, 특히 종교의 이념인 ‘사랑’은 소진되고 인간 사이의 메마름이 함께 자리를 굳혀가고 있는 것이다.”
시드니대교구 한인성당을 지원하는 한국 가톨릭 대전교구 교구장인 유흥식 라자로 주교가 시드니 한인 교우들에게 ‘복음적 삶’을 강조했다.
지난 주 수요일(12일) 시드니에 도착한 라자로 주교는 이날 저녁 본지와 티타임을 갖고 예수님의 복음이 주는 ‘참 인간 존중’의 메시지를 남겼다. 라자로 주교의 이번 방문은 시드니 및 캔버라 지역 한인 교우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으로, 호주 한인 이민 초기인 1970년대 가톨릭 커뮤니티가 형성된 이래 대전교구는 시드니 한인성당에 한국인 사제를 파견해오고 있다.
지난 2005년 4월 천주교 대전교구 제4대 교구장을 승계한 라자로 주교는 이듬해인 2006년 9월에 이어 세 차례 시드니 한인 가톨릭 교우들과 만난 바 있다. 특히 사회적 혼란기에 직접 각 지역 교회 현장을 찾아가 ‘복음과 일치하는 삶’을 강조해오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하반기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으로 인해 호주 한인 커뮤니티에도 반목과 갈등이 일었던 터여서 라자로 주교의 시드니 방문과 그가 우선적으로 강조한 ‘인간 존중’을 구현하는 ‘복음적 삶’은 한층 무게감 있게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남의 이야기에 먼저
귀 기울이는 사람 되어야...
라자로 주교는 ‘인간 존중의 삶’을 강조하면서 “물질적 풍요를 뒷받침하는 정신이 고갈되고, 그래서 개개인의 이기심이 극에 달하고 있다”고 진단한 뒤 “종교계 입장에서 이런 사회 현상은 아주 부끄러운 모습”이라며 “그런 점에서 인간 존중을 기본으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숙제”라는 점도 강조했다. 가톨릭 교회의 핵심 이념은 ‘인간에 대한 존중, 사랑’으로 요약되는데,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 또한 그러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분의 복음에 따라 살아가는 삶의 자세, 그 가르침과 일치하는 삶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라자로 주교는 또한 이 같은 삶의 실천 부재에서 사회적 혼란이 나타나게 마련이라며 “모두가 큰 귀를 가졌으면 한다”는 점 또한 중요한 메시지로 남겼다.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내 말을 먼저 하고 내 말만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의 이야기에 먼저 귀 기울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당부하면서 “진정한 소통은 바로 이런 바탕에서 이루어진다”고 덧붙였다. 이전 한국 정부의 국정농단에 대한 국민적 반발로 나타난 촛불집회가 ‘인간의 존엄성 상실, 황금만능주의, 소통의 부재’의 부재가 원인이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라자로 주교가 강조했던 ‘사람을 존중하는 자세’와도 같은 맥락이다.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바탕에서 대화가 가능하게 되고, 이것이 서로에 대한 이해로 넓혀지며, 마침내 상대(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구현된다는 의미이다.
이날 라자로 주교는 호주사회의 종교 인구가 감소하는 점에도 주목했다. 실제로 지난달 말 공개된 ‘센서스 2016’ 집계 결과에 따르면 호주인구 중 비종교인 수는 전례 없는 수준으로 증가했으며, 5년 전 센서스에서 전체 종교인구 가운데 61%를 차지하던 크리스찬 비율은 52%로, 이중 절반에 달했던 가톨릭 비중은 23%로 떨어졌다.
유 라자로 주교는 “로마 교황청 통계를 보면 아시아 및 아프리카 지역에서의 가톨릭 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행동을 통해 ‘인간 존중’을 실천하고자 하는 교황의 이미지, 그리고 세상에 이 같은 복음적 가치를 전파한 것이 이의 실질적 배경”이라고 설명한 뒤 “호주 사회의 경우, 교회가 인간을 위해 어떻게 봉사하고 헌신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라자로 주교는 “사람들에게 교회가 얼마나 신뢰를 얻고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며 “분명한 것은, 복음적 삶을 실천하면 믿는 이들은 늘어나게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복음을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이면 엄청난 문제가 생긴다. 극단 이슬람의 창궐은 다른 종교가 참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도 한 원인이라고 본다”면서 “교회를 구성하는 모든 이들이 참 복음의 삶을 보이지 않으면 언제든 이단이 나오는 풍토가 조성되는 것”이라는 우려를 전했다.
유 라자로 주교는 호주 한인 가톨릭 교우들에게도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고 말했다. “우리(한국 가톨릭)은 순교자들의 후손”이라고 전제한 라자로 주교는 “그런 자부심을 갖고 복음의 가치로 세상을 (사랑으로) 변화시키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국 가톨릭 순교자들은 믿음과 삶의 모습이 일치했던 이들”이라며 “우리도 그분들과 같은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전교구장 승계와 함께 사목 표어로 ‘세상의 빛’을 밝힌 우 라자로 주교는 누구에게든 먼저 다가가는 생활을 견지하고 있다. 시드니 방문 직전인 지난 7월5일(일) 충남 당진 솔뫼성지에서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미사를 봉헌한 뒤 청소년들을 격려하는 라자로 주교(사진)
유흥식 라자로 주교는...
‘자기희생 전제한 영성적 삶’ 실천하는 교회 지도자
지난 2003년 주교가 된 후 2005년 한국 가톨릭 대전교구 제4대 교구장을 승계한 유흥식 라자로 주교는 교회 내에서 영성의 삶을 몸소 실천해 온 교회 지도자로 꼽힌다. 이는 신학교 시절부터 몸에 익힌 ‘포콜라레’(Focolare)와 무관하지 않다. 포콜라레는 1943년 이탈리아 트렌토(Trento)에서 시작된 평신도 사도직 운동 단체 ‘국제 마리아의 사업회’ 활동을 일컫는 말로, ‘일치의 영성’으로 요약된다.
실제로 유 라자로 주교는 신학교 시절, 성소의 위기를 느꼈을 때 ‘포콜라레 영성’을 만나 그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지난 12일(수) 시드니를 방문한 라자로 주교가 한인 교우들에게 주는 첫 번째 당부로 강조한 ‘복음적 삶’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2006년 시드니 한인성당을 방문했던 라자로 주교는 당시에도 각 교회 단체들과 만나 한결같이 ‘복음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삶의 실천’을 강조한 바 있다.
이 같은 영성적 삶의 실천은 라자로 주교의 소탈한 성격과 소박함 생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는 평이다. 교회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버리고 모든 신자들에게 편안하게 눈높이를 맞추어주는 생활 하나하나가 이를 뒷받침한다. 대전교구 교구장 주교가 된 라자로 주교는 집무실 탁자를 원형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지위에 맞는 자리를 거부하고 사제이건 신자이건 같은 위치에서 대화를 나누려는 배려에서이다. ‘상대의 이야기에 먼저 귀 기울여야 한다’는 당부도 바로 이런 생활 자세에서 비롯되는 셈이다.
라자로 주교가 신학교 시절부터 견지해 온 영성적 삶은 주교가 된 후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주교로 서품되면서 사목 표어로 ‘세상의 빛’(요한 8, 12)을 언급하면서 “그리스도께서는 부활의 빛이며, 그 빛은 스스로를 낮추고 비우고 나를 죽일 때 드러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세상의 빛’과 같은 삶이 모든 신앙인이 가야 할 자세이며, 복음의 삶을 실천하는 길임을 강조한 것이다.
유 라자로 주교는 이번 방문에서 시드니 한인회 백승국 회장과 운영위원회가 마련한 간담회에도 참석해 인사를 전하며 “가능한 호주 주류사회와 깊은 유대를 갖고 한인으로서의 품위를 보이며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커뮤니티가 되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시드니에 도착한 이날, 라자로 주교는 시드니 한인회 백승국 회장과 운영위원회가 마련한 간담회에도 참석해 인사를 전하며 “가능한 호주 주류사회와 깊은 유대를 갖고 한인으로서의 품위를 보이며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커뮤니티가 되었으면 한다. 그렇게 우리 한인 이민자 그룹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앞장서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인간 존중과 사랑, 복음을 실천하는 삶의 자세를 통해 모범을 제시하며 ‘사람 중심의 세상’을 주도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라자로 주교의 이런 당부는 11년 전 방문에서도 똑 같이 언급한 바 있다. 당시 한인 교우들에게 나자로 주교는 첫 언급으로 “모든 신자들이 사제와 일치하여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은 공동체를 만들고 또한 시드니에 거주하는 만큼 시드니대교구는 물론 호주사회를 위해서도 봉사하고 공헌하는 한인 가톨릭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던 것이다.
라자로 주교는 충남 논산 출생으로 논산 대건중고교를 졸업했으며 대전가톨릭대학교 2년 수료 후 군 복무를 마친 뒤 로마 교황청립 라테란대학교를 졸업하고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어 동 대학교에서 교의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총장,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 위원장,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시복시성주교위원회 위원장 등 여러 사회 활동에도 주력해 왔다.
김지환 기자 jhkim@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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