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박기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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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 1> 위대한 독립운동가! 100% 완전한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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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8월 29일 한국은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하지만 한반도 전체를 감옥으로 삼아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꺾으려 했던 일본 제국주의는 독립을 향한 한국인의 심장을 멈추게 할 수 없었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다 감옥에 수감된 한국인은 1908년 약 2,424명에서 1943년 23,532명으로 증가했고 1919년 3월 1일에는 일본 식민지화를 거부하고 자주 독립을 선언하기 위해 전국에서 약200만 명(당시 한국인 인구 2천만 명의 10분의 1)이 3.1운동에 참여했습니다.

 

독립을 향한 한국인의 의지와 열망은 세계를 놀라게 했으며 3.1운동은 전 세계 독립운동 역사상 가장 찬란하고 위대한 꿈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후 한국은 임시정부를 세우고 광복군을 창설하였으며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목숨을 걸고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싸웠습니다.

 

1941년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자 한국은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중국, 인도 등지에서 일 본과 싸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45년 8월 15일 한국은 독립을 되찾았습니다.

 

한국은 연합국에 의존하여 수동적으로 "독립"을 얻은 것이 아니라, 진취적이고 능동적으로 "독립"을 이루었습니다.

 

한국의 독립은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거부하고 나라를 되찾으려 한 독립운동가들의 꿈과 일본 제국주의를 심판하려는 세계인의 꿈이 하나가 되어 이루어낸 자랑스러운 역사입니다.

한국의 독립 운동가들은 아시아 평화를 만들어낸 자랑스러운 역사의 주인공입니다.

 

여러분은 독립운동가의 심장 소리가 들리시나요?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는 독립운동가의 심장 소리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한국인이 느낄 수 있도록 이 엽서를 제작했습니다.

반크는 이 엽서를 통해 한국의 청년들이 독립운동가들의 꿈을 이어받아 21세기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영역에서 100% 완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길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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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 2> 독립운동가의 심장,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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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독도는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나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산 독립운동가의 심장입니다.

5천 년 역사를 꿋꿋하게 지켜온 한국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제국주의의 강제 식민지가 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독도는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침략의 첫 번째 희생물 이었습니다.

 

그들은 식민 통치를 시작하기 5년 전인 1905년에 한국 영토인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 시켰고 한국의 외교권을 강제로 침탈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독도를 강제로 빼앗아간 것처럼, 일본 통치에 저항하는 한국 사람들의 독립 의지를 꺾기 위해 독립운동가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고 고문하며 생명을 빼앗았습니다.

 

하지만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한국인들의 심장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체포한 전국 감옥의 한국인 수감자는 1908년 2,424명이었지만 1943년에는 23,532명으로 증가했습니다.

 

1919년 3월 1일에는 무려 200만이 넘는 한국인들이 한반도 곳곳에서 독립운동가가 되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21세기 현재, 일본 제국주의 침략 시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일본 초, 중, 고교 교과서에 한국이 독도를 불법적으로 빼앗았다고 서술하며

독도에 대한 왜곡된 역사의식을 전 세계에 홍보하고 있습니다.

 

이에 한국의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의 청년들은 일본 제국주의 침탈의 아픈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21세기 독립운동가가 되어 일본의 역사 왜곡을 막아내고자 합니다.

 

한국 청년들에게 독도는 과거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치열하게 싸운 독립운동가의 심장입니다.

 

“독도에서 통일까지 100% 완전한 대한민국을 향해 나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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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 3> 군인 안중근  1879. 9. 2 ~ 1910.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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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자 의병을 조직해 의병 부대의 지휘관이 되어 일본과 싸운 위대한 군인 안중근. 일본 제국주의의 선봉에서 조선 침략을 진두지휘했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그는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 침략의 원흉이며, 아시아의 평화를 무너뜨렸기에 개인이 아닌 의용군 사령관으로서 그를 심판한 것’이라 말합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아시아 평화를 위해 자신의 삶 전체를 바친 위대한 의용군 사령관 안중근. 그는 1910년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저술하며 동북아 3국의 화합을 꾀함과 동시에 세계 평화를 위 한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사형 집행 연기를 조건으로 공소권 청구를 포기하고 <동양평화론> 집필을 시작했지만 일본 제국주의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일찍 형을 집행해 그 저서는 미완성으로 남게 됩니다.

 

하지만 평화를 향한 안중근의 마음이 담긴 <동양평화론>은 오늘날 우리가 지향할 가치를 담고 있으며, 한 일본인은 언론 인터뷰에서 <동양평화론>은 ‘한일 관계의 매듭을 풀 열쇠’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순국 직전 <동포에게 고함>이란 글을 남겨 자신의 꿈을 후세에 남겼습니다.

‘내가 한국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삼 년 동안을 해외에서 풍찬노숙 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도달치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 우리들 이천만 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 문에 힘쓰고 실업을 진흥하며,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유한이 없겠노라.’

 

한국을 변화시킨 위대한 군인 안중근.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안중근이 되어 군인 안중근이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 “한국의 독립을 회복하고 아시아 평화를 만들어 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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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 4> 교육가 안창호  1878. 11. 9 ~ 1938.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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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변화시키는 것은 한국인이다. 한국을 개혁하는 것은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 스스로에게 맡겨라.”

 

도산 안창호가 일본 국가 지도자 이토 히로부미 앞에서 당당히 한 말입니다.

안창호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으로부터 한국을 혁신시키는 일은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고,

인재를 양 성하는 힘은 바로 ‘교육’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사람이 모이고 독립운동 단체가 설립되고 신문이 발행되었습니다.

그가 행동할 때마다 학교가 세워지고 독립운동 자금이 모였으며 독립운동가들이 양성되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왜 인물 될 공부를 아니하는 것이오. 우리 민족의 불행의 책임을 자기 이외에 돌리려고 하니 대관절 당신은 왜 못하고 남만 책망하려고 하시오?

우리나라가 독립이 못 되는 것이 다 ‘나 때문이로구나’ 하고 가슴을 두드리고 아프게 뉘우칠 생각은 왜 못하고 어찌하여 ‘그 놈이 죽일 놈이요, 저 놈이 죽일 놈이요’라고만 하고 가만 앉아계시오?” 한국을 변화시킨 위대한 교육가 안창호.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안창호가 되어 교육가 안창호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 “한국은 한국인으로 하여금 혁신케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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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 5> 청소년 유관순  1902. 12. 16 ~ 1920.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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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문 발표. 이때 서울 탑골공원에서는 한 청년이 독립선언서 를 낭독하고 약 5천 명의 시민들이 일제히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대한 독립 만세! 우리는 독 립한 나라이며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일본 제국주의 총칼의 협박과 공포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200만 시민이 비폭력 저항운동인 3.1운동 에 참여했습니다.

17세의 어린 유관순도 또래 친구들과 함께 3.1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어린 청소년들까지 3.1운동에 참가하자 일본 제국주의는 전국의 학교에 휴교령을 내리고

청소년들의 독립운 동을 조직적으로 막았습니다. 유관순은 학교가 문을 닫자 고향에 내려가 3.1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 하다가 체포됩니다.

그녀는 일본 경찰을 향해 “나는 내 나라를 되찾으려고 정당한 일을 했는데, 어찌하여 당신들은 총과 칼을 사용하여 내 민족을 죽이느냐!”라고 당당하게 맞서며 용기 있게 말했습니다.

200만 한국 국민의 3.1운동은 제국주의 아래 자유와 평화를 부르짖는 세계인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었습니다.

유관순은 감옥에서 당한 고문으로 인해 18세 어린 나이에 순국합니다. 순국하기 전 유관순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심장에 다음과 같은 말을 새겨 넣었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슬픔이다.”

한국을 변화시킨 위대한 청소년 유관순.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유관순이 되어 청소년 유관순이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

“대한 독립 만세! 우리는 독립한 나라이며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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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 6> 청년 윤봉길  1908. 6. 21 ~ 1932.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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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중국 침략전쟁 ‘만주사변’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자 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일본 제국주의의 위세는 하늘을 치솟았습니다.

 

1932년 4월 29일, 일본군은 패배한 중국에 모욕을 주기 위해 중국 상하이의 한 공원에서 전쟁 승리의 기념과 일본왕의 생일 행사를 성대하게 개최합니다. 이때 25세 청년 윤봉길은 물통으로 위장한 폭탄을 단상 위에 던집니다.

이로 인해 최고 군대 사령관이 사망하는 등 일본 군 전력은 막대한 피해를 입습니다.

윤봉길은 폭탄을 던진 것이 아니라 인류를 대표하여 일본 제국주의를 심판하려는 한국인의 꿈을 일깨운 것이었습니다.

이 일은 미국의 뉴욕타임스, 영국의 데일리 미러 등 해외 언론 1면에 소개될 만큼 국제사회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중국은 대한 민국 임시정부에 막대한 후원을 하기 시작했고 중국의 장제스 총통은 1943년 11월 카이로 회담에서 연합국을 설득하여 한국을 독립시킨다는 특별 조항이 카이로 선언에 들어가게 했습니다.

한국의 초 대 대통령 이승만은 그의 저서에서 ‘중국 장제스 총통이 한국의 자주 독립을 적극적으로 연합국에 설득한 것은 윤봉길 때문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일본 내무성이 작성한 문서에는 상해 의거에 관해 윤봉길이 남긴 당당한 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세계 지도에 한국은 일본과 같은 색으로 표기가 되어 전 세계인은 한국의 존재를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다. 따라서 한국을 세계인의 머릿속에 강력하게 새겨 넣는 것은 장차 우리의 독립운동에 관해서 결코 헛된 일이 아님을 믿는다.”

한국을 변화시킨 위대한 청년 윤봉길.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윤봉길이 되어 청년 윤봉길이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

“전 세계인의 머릿속에 대한민국을 강력하게 새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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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 7> 의사 이태준  1883. 11. 21 ~ 192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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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들어 고통받는 몽골인을 치료한 의사이자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친 독립운동가 이태준. 그는 1911년 세브란스 의학교를 졸업한 후 의사로 활동하다가 안창호 선생의 권유로 독립운동 단체인 ‘청년학우회’에 가입하여 항일 활동을 합니다.

 

그러나 일본 경찰에 체포될 위기에 처하자 중국을 거쳐 몽골로 망명하고, 몽골의 고륜(울란바토르의 옛 이름)에 병원을 세워 전염병 등 질병에 시달리는 몽골 인의 치료에 헌신을 다합니다.

수많은 몽골인을 질병으로부터 구해 몽골인의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이태준은 몽골 칸의 주치의로도 임명되었으며, 1919년에는 몽골 정부가 외국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이태준은 몽골에서 번 돈 대부분을 독립운동가들을 위해 사용했으며, 그의 병원은 독립운동가들에게 숙식과 교통 등의 편의를 제공하는 쉼터로 쓰였습니다.

하지만 이태준은 1921년 38세의 젊은 나이 에 일본 제국주의와 연결된 러시아의 한 군대에 의해 피살당하고 맙니다.

몽골에서의 위대한 의사 이태준의 삶이 있었기에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이루고자 했던 꿈은 한국을 넘어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꿈으로 승화될 수 있었습니다.

한 독립운동가는 그의 책에서 몽골에서의 이태준의 삶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몽골에 있는 이태준의 무덤은 민중을 위해 젊은 일생을 바친 한 조선 청년의 거룩한 헌신과 희생의 기념비다.’

2006년 몽골 정부는 이태준의 업적을 기리는 공원과 기념관을 수도 울란바토르에 설립해 그를 향한 몽골인의 존경을 영원히 남기기로 했고, 이곳은 몽골과 한국 사이에 우정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한국을 변화시킨 위대한 의사 이태준.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이태준이 되어 의사 이태준이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

“뜨거운 가슴으로 조국과 세상을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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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 8> 정치가 김구  1876. 8. 29 ~ 1949.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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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는 ‘독립한 나라의 가장 낮은 자가 남의 나라 밑에 사는 가장 높은 자보다 기쁘고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지배로부터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바쳤습니다.

“독립이 없는 백성으로 70 평생에 설움과 부끄러움과 애통을 받은 나에게는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은 완전하게 자주 독립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보다가 죽는 일이다.

나는 일찍이 우리 독립 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했거니와 그것은 우리나라가 독립국만 되면 나는 그 나라의 가장 미천한 자가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독립한 한국이 장차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지 그의 자서전 <백범일지>에는 이러한 말이 남겨져 있습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경제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군사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그는 완전하게 자주 독립한 하나된 나라의 문지기가 되어 높은 문화의 힘으로 전 세계인을 행복하게 하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것입니다. 한국을 변화시킨 위대한 정치가 김구.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김구가 되어 정치가 김구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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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 9> 선교사 스코필드  1889. 3. 15 ~ 1970.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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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선교사로 한국에 온 푸른 눈의 외국인 한 사람이 서울 곳곳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총과 칼 앞에 “대한 독립 만세”를 당당하게 외친 수많은 이들의 위대한 함성과 모습이, 그에 의해 세계 역사에 진실로 기록됩니다.

또한 그는 독립 만세 운동에 대한 일본군의 보복으로 행해진 경기도 제암리 주민 집단 학살사건을 접하고 이 억울한 죽 음을 보고서로 기록해 언론을 통해 전 세계에 알립니다.

석호필(石虎弼)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이 외 국인은 바로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그는 1916년 기독교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3.1운동 견문록을 비롯한 독립 관련 보고서인 <끌 수 없는 불꽃>을 저술해 전 세계에 일본 제국주의를 고발하고 한국인의 위대한 독립운동을 격려했습니다.

100 년 전 그가 찍은 사진과 보고서들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은폐되고 축소될 뻔한 한국 독립운동의 역사가 전 세계에 올바로 드러나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사망하기 전 국내 언론사에 기고한 글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을 향한 자신의 꿈을 기록했습니다.

 

“‘1919년 당시의 젊은이와 늙은이들에게 진 커다란 빚을 잊지 마시오.’

이 말은 내가 오늘의 한국 청년들에게 주고 싶은 말이다. 국민은 불의에 항거해야만 하고 목숨을 버려야만 할 때가 있다.”

 

한국을 변화시킨 위대한 선교사 스코필드.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스코필드가 되어 선교사 스코필드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 “청년들이여! 1919년 3.1운동을 이끈 한국인들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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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 10> 역사가 신채호  1880. 11. 7 ~ 1936.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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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26세에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나,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관직을 포기하고 역사 연구와 저술 활동으로 국민의 민족 의식을 고취시켜나간 위대한 역사가 신채호.

 

그는 역사 연구야말로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길이며 장차 독립된 나라를 일으킬 새로운 국민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국가 발전의 원동력은 한두 명의 위대 한 영웅의 탄생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국민 개개인의 역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무분별하게 들어오는 외국의 사상이 한국인에게 전파되는 것을 막고자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공자가 들어오면 한국을 위한 공자가 되지 못하고 공자를 위한 한국이 된다.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 해 통곡하려 한다.” 일본 제국주의가 ‘우월한 일본이 열등한 조선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식의 왜곡된 식민주의 역 사관을 전파하자, 신채호는 <이순신전>, <을지문덕전>, <조선상고사> 등 한국 중심의 진취적이고 주제적인 역사관을 담은 책을 집필하여 한국 청년들에게 독립 정신을 심어주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뤼순감옥에서 역사에 대한 자신의 꿈을 후세에 남겼습니다.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거든 역사를 읽을 것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게 할 것이다.’

한국을 변화시킨 위대한 역사가 신채호.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신채호가 되어 역사가 신채호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 “청년들에게 역사를 가르쳐 조국을 사랑하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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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 11> 학교 설립자 이회영  1867. 3. 17 ~ 1932.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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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이회영은 자신의 여섯 형제를 한자리에 모아 “우리 집안이 대의를 위해 죽을지언정 일본 제국 주의 아래에서 어찌 생명을 구한단 말인가?”라고 말하며 전 재산(오늘날 600억)을 처분해 일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떠납니다.

 

이회영은 귀족 작위를 주겠다는 일본 정부와 타협해서 편하게 살 수 있었음에도 나라를 위해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는 중국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10년 동안 약 3,500명의 독립군을 배출하여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는데, 한국 독립운동 역사의 위대한 업적 인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에 참가한 독립군들이 바로 신흥무관학교 졸업생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한국의 위대한 독립운동 역사를 만들어낸 ‘의열단’의 활동을 지원합니다.

그러나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친 이회영과 형제들은 정작 하루 한 끼 먹기도 힘든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66세의 노 령에도 독립운동 작전을 수행했던 이회영은 일본 경찰에게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한 후 감옥에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재산, 지위, 생명까지 포기하며 높은 사회적 신분에 걸맞은 도덕적 의무와 책임을 실현한 위대한 지식인

이회영과 여섯 형제. 이회영의 삶은 국가의 위기 때 국민을 위한 지도자들 의 삶이 어때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과 세계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살고 죽는 것은 다 같이 인생의 일면인데 죽음을 두려워해 가지고 무슨 일을 하겠는가.

이루고 못 이 루고는 하늘에 맡기고 사명과 의무를 다하려다가 죽는 것이 얼마나 떳떳하고 가치 있는가!”

 

한국을 변화시킨 위대한 학교 설립자 이회영.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이회영이 되어 학교 설립자 이회영이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

“이루고 못 이루고는 하늘에 맡기고 사명과 의무를 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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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 12> 문화재 수집가 전형필  1906. 7. 29 ~ 1962.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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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필은 1906년 우리나라 최고의 부잣집에서 태어나 부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젊은 나이에 큰 재산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 제국주의는 ‘우월한 일본이 열등한 조선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 하다’며 한국 문화 말살을 서슴지 않았는데, 이에 전형필은 상처난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한국 문화와 역사의 위대함을 증명할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해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를 되찾고 전국 곳곳에 흩어진 문화유산을 수집하는 ‘문화유산 독립운동가’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1930년대 말부터 일본 제국주의의 민족말살정책은 더욱 심해져 당시 모든 한국인에게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도록 하고, 한글이 다른 나라 글을 복사한 것이라고 비방했습니다. 이때 전형필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아냅니다.

그 당시 <훈민정음 해례본>이 한국인에 의해 보관되고 있다는 사실이 일본 에 알려진다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우리 역사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위대한 한국 문화를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증거라고 생각하여 당시 소유자에게 거금을 주고 구입합니다.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목숨을 걸고 지켜낸 <훈민정음 해례본>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미술관인 ‘보화각’을 설립해 자신이 수집한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보관해 나갔습니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 <혜원전신첩> 등이 그가 지켜낸 한국의 국보급 문화유산입니다.

한국을 변화시킨 위대한 문화재 수집가 전형필.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전형필이 되어 문화재 수집가 전형필이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 “위대한 한국의 문화유산을 되찾는 데 너의 인생을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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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 13> 국어학자 주시경  1876. 11. 7 ~ 1914.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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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주시경.jpg

 

 

1876년 황해도 봉산 산골에서 태어난 주시경은 ‘조선을 향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이 진행되고 있지만 조선이 이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조선 사람들이 글을 몰라 힘을 키울 수 없었기 때문’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우리 국민들이 우리말을 쉽게 읽고 쓴다면, 나라의 힘이 하나로 모이고 국민들이 지혜로워져 강해질 수 있고 이를 통해 일본 제국주의 침략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무너진 나라를 일으키고 국민의 역량을 높이기 위해 우리말에 대한 다양한 문법책, 교과서, 연구서적 등을 발간하고 제자를 키워낸 주시경.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의 노력이 씨앗이 되어 문맹률은 대대적으로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모아진 국민 들의 힘은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와 전쟁 그리고 가난을 이겨내고 경제 문화 강국으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한국이 세계적인 나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무너진 나라를 일으키기 위해 한국어 발전과 연구, 제자 양성에 평생을 바친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작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고 한글을 지키기 위한 연구와 강의에 매진하다 3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 을 떠난 주시경.

한글을 창제한 사람은 세종대왕이지만 한글의 문법 체계를 세워 한국을 바닥에서 일 으켜 세운 사람은 주시경입니다.

한국을 변화시킨 위대한 국어학자 주시경.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주시경이 되어 국어학자 주시경이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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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 14> 변호사 후세 다쓰지  1880. 11. 13 ~ 1953.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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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국인으로부터 한국인의 친구라고 불리었던 사람, 그 공적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건국 훈장을 받은 일본인,

후세 다쓰지. 그는 1911년 조선의 의병운동을 다룬 논문 〈조선독립운동에 대하여 경의를 표함>을 발표하여 일본 경찰의 취조를 받은 뒤부터 조선의 독립운동과 조선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는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침략을 지속적으로 비판했으며 일본이 한국인의 토지를 강탈하자, 조선인 토 지 반환 소송을 제기합니다.

1923년 9월 일본에서 대지진으로 약 10만 명이 희생되자 일본 정부는 국민적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한국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라는 괴소문을 유포하고 일본에 거주하던 한국인 6천여 명을 학살합니다.

이때 후세 다쓰지는 한국인 학살을 막지 못한 참회 의 글을 신문사에 알리고 보고서를 작성해 역사에 남깁니다.

붙잡힌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을 구하기 위해 모든 법률적인 노력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일본 정부는 후세 다쓰지의 변호사 자격을 세 번이나 박탈했으며 심지어 징역 2년을 선고하기도 합니다.

1945년 한국이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독립을 하자 그는 〈조선건국 헌법초안>을 작성해 한국을 도왔습니다.

국적을 가리지 않고 오직 정의의 편에 서서 한국인의 인권을 지킨 위대한 변호사.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일본 사람의 인권이 소중하듯 한국 사람의 인권 또한 소중하다고 믿고 행동에 옮겼습니다. 

한국을 변화시킨 위대한 변호사 후세 다쓰지. 이제 여러분이 21세기 후세 다쓰지가 되어

변호사 후세 다쓰지가 꿈꾸었던 대한민국을 완성해 주세요!

“오직 정의의 편에 서서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인권을 지켜라!”

 

 

*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박기태의 세게로 가는 반크'

 

http://www.newsroh.com/bbs/board.php?bo_table=cp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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