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생활이야기] 없어진 턱시도 돌려준 손님, 정말 감사합니다
(탬파=코리아위클리) 신동주 = 매일 얼굴을 보고 사는 가족 사이에는 오가는 감정이 복잡하리만큼 많다. 부부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는 흉과 허물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서로 오가는 마음이 항상 평온하지만은 않다. 가장 사랑하는 사이이지만 때로는 사랑과 배려가 가장 필요한 관계일 수도 있다.
얼마 전에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참 귀신이 곡할 일이다. 한 고객이 결혼한다며 턱시도 양복 수선을 밑기고 토요일 오전까지 찾으러 오겠다고 했다. 그날따라 프롬파티 드레스도 몇 벌 들어와 물량이 많은 편이었다. 수선할 물건들이 많아 이른 새벽부터 작업을 하여 먼저 양복부터 끝맺음을 했다.
토요일 아침이 되어 턱시도를 맡긴 손님이 왔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턱시도 양복이 보이질 않는다. 분명히 깨끗하게 수선해 두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손님은 시계를 자주 보며 결혼식에 빨리 가야 한다고 야단이고 턱시도 양복은 없고,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옆에 있던 아내는 한술 더 떠서 어떻게 이런 실수를 하느냐고 따진다.
신랑도 턱시도 없이 결혼식을 하게 생겼다고 궁시렁 거리며 거의 체념해 가는 눈치였다. 분명히 내가 컨베어에 넣었는 데 정말 알 수가 없었다. '혼비백산'이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경황없이 식은 땀을 흘리며 혹시 하는 마음으로 컨베어를 돌리고 있을 때 다른 손님이 턱시도를 들고 가게로 들어섰다.
아침에 양복 몇 벌을 찾아 갔는데 턱시도가 함께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이 토요일이라 누군가가 이 턱시도가 꼭 필요한 것 같아서 곧바로 들고 왔다고 했다.
상대를 적극적으로 배려하는 마음
나는 너무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눈물이 울컥 나오는 것을 느꼈다. 턱시도를 가지고 온 손님은 사색이 되어 있는 아내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바쁘다 보면 그런 실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다 해결되게 마련이에요. 보세요, 이렇게 제가 도로 가져 왔잖아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테니 잘 된 거에요"
이 손님은 10년이 넘도록 우리 가게를 이용하는 단골 고객이었다. 어떻게 그 턱시도가 다른 손님의 양복 사이에 끼어있었는지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날 이후 아내를 보면 나는 주눅이 들어 말까지 더듬거렸다. 그렇지만 야박하게 몰아세운 아내가 야속하고 섭섭해서 며칠 동안 말도 안했다.
곰곰이 생각 해 보니 나의 실수가 확실했다. 양복이 다섯 벌 쯤 됐으니 끈으로 양복을 한 묶음으로 묶을 때 맨 뒤에 있는 턱시도까지 묶어 버린게 분명했다. 이런 실수를 가끔 범한 전례가 있긴 있었다. 다행히 해피 엔딩으로 모두 끝났지만 이번 경우는 정말이지 식은 땀이 나는 일이었다. 결혼식처럼 행복한 날에 마음을 구기게 할 뻔 했으니 말이다.
바쁜 이민생활을 하다보면 생각할 것도 많고 일거리도 많아 머리속이 항상 복잡하다. 더구나 나이가 들면서 뇌 세포가 점점 소멸하니 깜박 잊어버리는 일이 잦아진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자신이 없어지고 때로 관계도 소연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의 수명이 점점 길어져서 백세 시대를 내다보고 있는데 벌써부터 의기소침하고 불행하게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아마 조만간 아내쪽에서 혹은 내쪽에서 사랑의 손길을 뻗칠 것이다.
가족이나 부부처럼 가까운 사이에서는 흔히 "정신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 "왜 맨날 그 모양이냐" 하며 비난과 추궁을 하기 쉽다. 같은 말이라도 "당황하지 말고 잘 생각해봐", "그 나이에 그 정도 기억하고 사는 것도 다행이야", "이번 실수를 겪었으니 앞으로 더 신경쓰면 돼" 식으로 말한다면 마음에 닿는 바가 180도 다를 것이다.
이웃과 친구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잘할 때 칭찬 보다도 실수할 때 진정한 위로와 사랑을 주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턱시도를 도로 가져다 준 손님은 옷을 다른 날 가져다 주어도 되는 입장이다. 그러나 턱시도를 입을 일이 분명 토요일에 있을 것인데, 누군가가 곤경에 빠질 것으로 생각하여 번거로운 수고를 해주었다. 적극적으로 남을 배려한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워서 앞으로 고객의 옷에 더 신경써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