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개인이 겪고 있는 고독감의 심각성에 경종이 울리고 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가족, 친구, 직장동료, 배우자, 이웃 등과 제각기 사회적 연결고리를 맺는다. 프랑스에서 이러한 연결고리가 끊겨진 채 살아가는 사회적 고립자들은 500만 명으로 추정된다. 4년 전에 비해 100만 명이 늘어난 숫자이다. 이들 중에는 대화를 나눌 상대는 오직 벽이고, 유일한 친구는 텔레비전이라고 호소하는 이들도 포함되어 있다. 


고독감이 단순히 혼자라는 의미를 지니며 외로움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행복한 인간은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라고 했다. 혼자라는 사실에 불안해하지 않고 심리적 휴식과 자아평정을 되찾을 수 있다면, 이 고독한 순간은 그야말로 정신적으로 완전한 충만감을 누리는 순간이 된다. 그러나 고독감이 가족 혹은 배우자와의 관계부재, 사회생활에 대한 적응불능과 고립에서 빚어지는 외로움과 소외감으로 연결될 때 지독한 마음의 병으로 깊어질 수밖에 없다. 


자선사업단체 ‘프랑스재단(Fondation de France)’이 지난 7월 발표한 실태조사에 의하면,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프랑스인 4명 중 1명은 일상에서 고독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 10명 중 4명은 1년에 몇 차례 가족모임에 얼굴을 내밀어보일 뿐 거의 교류가 단절된 가족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4명 중 1명은 지속적으로 끈끈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관계가 결여되어 있다.


이웃과의 관계를 보자면, 프랑스인 36%가 이웃과 예의상 인사만 건넬 뿐 거의 교류 없이 지내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4년 전에 비해 5%가 늘어난 비율이다. 물론 농촌보다 도시에서 이웃과의 단절은 더 심각하다. 주민 10만 명 이상 도시 주민들 23%가 이웃이 누구인지 모르고 지내는 반면 시골 지역은 13%에 머물렀다. 


현재 프랑스에서 독신생활자는 800만 명으로 집계된다. 4년 전보다 150만 명이나 증가했다. 물론 이들 독신자들이 모두 고독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혼, 사별, 실직, 질병, 불의의 사고 등으로 불가피하게 홀로 지내는 독신자들이 가장 심각하게 고독감에 노출된 편이다. 특히 사별로 인해 독신 생활자가 된 74세 이상 고령층에서 고독의 병을 앓고 있는 비율이 가장 높아 2010년 16%에서 올해 27%로 증가했다. 


이같은 사회적 고립감은 물질적, 경제적 빈곤과도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한 달 소득 1,000유로 미만 소득자들이 고독증을 앓고 있는 비율은 18%이지만 3,500유로 이상 고소득자의 경우 7%에 지나지 않았다. 




실직, 빈곤, 고독감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지독한 악순환 현상마저 빚는다. 필립이라는 49세 독신남자의 경우를 보면, 월수입이 변변치 않은 단순 노동자였다. 여기저기 작업장을 떠돌며 혼자 일했던 탓에 평소에 동료들과 대인관계를 맺을 기회가 없었다. 게다가 끈끈하게 유지해온 친구도 없이 외톨이생활을 이어오던 중에 그나마 일자리마저 잃고 말았다. 그는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근근이 홀로 살아가는 78세 노모의 집으로 거주지를 옮겨왔고, 이때부터 두 사람의 삶에는 악순환이 거듭된다. 


두 사람이 같은 지붕 밑에서 살게 되면서 대화는 더욱 단절되고 하루에 겨우 몇 마디만 투박하게 주고받을 뿐이다. 필립은 사회적 소외감이 심화되자 대인기피증마저 생겨났다. 사면의 벽 속에 혼자 갇혀 지내는 노총각 아들의 모습을 하루 종일 말없이 지켜봐야 하는 노모의 가슴은 더욱 답답해질 수밖에 없다. 노모는 차라리 혼자 사는 것만도 못하다는 넋두리를 친절한 이웃들에게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반복되어 듣게 되는 신세타령에 이웃들도 피곤해져 슬그머니 노모로부터 등을 돌려버렸다. 실직과 빈곤으로 인하여 함께 살아가는 두 사람이 겪는 고독의 무게는 오히려 두 배로 더 무거워진 셈이다.


 


▶ 젊은 층에게 확산되는 고독감




무엇보다도 40대 미만 장년층에게로 확산되는 사회적 고립감에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18~29세 연령층에서 4%가 사회의 아웃사이더로 스스로 비하하고 있다는 보고이다. 4년 전보다 2%나 더 늘었다. 30~39세 연령층에서 앓고 있는 사회적 소외감은 더욱 깊어 2010년 3%였지만 올해엔 7%로 증가했다. 


젊은 층에게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고독감은 오늘날 프랑스가 앓고 있는 고실업률과 직결된다는 분석이다. 사회적 고립감을 앓고 있는 18~39세 연령층 대부분이 무직자들이다. 고실업률이 드리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인맥의 폭이 좁은 이들 젊은 무직자들에게 악순환 현상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활발한 사회활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재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취업인 20%가 다른 사회활동과는 단절되어 있다. 이들은 퇴근 후 한 잔 마시며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즐길 직장동료와의 대인관계마저 결핍되어 있다. 현대사회의 특성과도 맞물린 단독업무 종사자들, 기업체의 근무일수가 1, 2일에 불과하거나 출장이 잦아 직장동료들과 대인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외로운 직종의 종사자들도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




활발한 사회생활자들이 SNS을 통한 사회친선교류에도 더 적극적이라는 분석이다. 활발한 사회활동자 37%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이용하는 반면 고독한 사회고립자들은 13%에 머문다. 심리분석학적 차원에서 인터넷과 각종 소셜네트워크가 고독의 병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때문에 최근 일부 프랑스 대학기숙사에서 각 방에 설치된 인터넷무선접속장치 WIFI를 제거하고 도서관 등 공공장소에서만 인터넷을 사용하도록 시설을 바꾸는 움직임도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학생들이 제각기 컴퓨터 앞에서 혼자 지내는 고립된 생활시간을 줄이고 공공장소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며 그들끼리의 교류를 유도하겠다는 배려이다. 


물론 깊어져가는 현대인의 고독은 프랑스에서만 찾아보는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물질주의로 팽만해져가는 한국사회에서 더욱 심각하게 대두되는 사회문제가 아닌가 싶다. 사회 고립자들의 ‘묻지마 범죄’ 유형에서도 그 실례를 찾아볼 수 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낙오되거나 높은 취업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채 고독감을 앓다가 극단적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젊은 층이 늘어가는 현실은 바로 오늘날 한국사회가 지니는 한 폭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한위클리 / 이병옥 ahpari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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