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암 박평일과 김동균목사
Newsroh=신필영 칼럼니스트
* 아랫글은 안부(3)를 보냈더니 버지니아 숲에 사는 친구 海岩 朴平一로부터 받은 回信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나누는 安否가 되기를 바랍니다 (申必泳)
신 회장님,
파란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초원,
밤이면 폭포처럼 쏟아져내리는 별빛들,
격렬한 말발굽 소리들, 그리고 징기스칸의 야망과
정복의 거친 숨결들……
몽고에서 띄운 안부를 읽으며 그 가슴뛰는 풍경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가슴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징기스칸은 이렇게 믿고 있었겠지요.
‘지평선은 하늘과 대지가 맞닿는 우주의 끝이고
인간들의 꿈과 야망이 완성되는 천국이다.’ 라고….
제가 산책을 즐기고 있는 버지니아 숲을 가로질러
Occoquan River 가 흐르고 있습니다.
Potomac River 의 지류(支流)로 그 길이가 겨우 25 마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짧고 아담한 강입니다.
‘Occoquan’ 이라는 단어는 미국 인디언들의 언어로
‘물의 끝’ 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저는 그 강변 숲길을 산책할 때마다
미국 인디언들이 왜 이 강의 이름을
‘물의 끝’ 이라고 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곤 합니다.
그러다가 이런 소박한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미국 원주민 인디언들은 이 짧은 강과 그 주변의 숲과 땅들이
우주라고 믿으며 수만년 동안 아무런 불평없이 행복하게 살아왔을 것이다.
그들에게 강과 숲이 치수나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순응을 통해 조화를 이루어가는 신비한 삶의 일부였을 것이다.’
그런 그들의 삶을 두고 우리들이 감히 문명의 잣대로
‘미개인들’이니, ‘우물 안의 개구리들’ 이니 하고
비난하며 비하할 수 있을까? 저는 솔직히 그럴 자신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순박한 우주관과 삶이 존경스럽고 경외롭기까지 합니다.
한 때 아시아와 유럽 대륙을 말발굽으로 정복했던 징기스칸도,
소박한 미국 인디언들도 단 한 평의 땅도 소유하지 못한 채
한 줌의 흙으로 사라지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500 년 전 중국 화남지방에서 살았던
한 촌부(?)가 깨달았던 ‘풍수지리설’ 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아주 단순한 이론입니다.
‘생명은 바람과 물처럼 끊임없이 흐르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흐름을 수용하고 적응하며
조화를 이루고 살아라. 그게 바로 축복과 행복의 근원이다.’
선가에 ‘아침 이슬 한방울 속에 우주의 섭리가 들어있다” 는 말이 있습니다.
또, 예수는 한 알의 조그만한 겨자씨 속에 천국의 비밀이 숨어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주의 신비는 크고 광활함 속에만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알의 조그만한 겨자씨 속, 한 방울의 물 속에도 그 신비가 숨겨져 있습니다.
인간 인연의 신비도 이와 마찬가지로 만남의 양보다는 질이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 일본인 친구들과 함께 버스로 뉴욕에 다녀왔습니다.
멘하탄! 욕망이 욕망을 먹고사는 도시, 꿈과 절망이 서로 뒤엉켜 딩굴고 있는 도시,
인간들이 쉴새없이 파도처럼 출렁이고 있는 사람들의 도시,
하늘을 찌르는 바벨탐들이 정글을 이루고 있는 오만(傲慢)의 도시,
인류의 마지막 멜팅팟 실험장……..
저는 그런 광기어린 맨하탄 거리들을 사랑합니다.
적막한 버지니아 숲들 만큼이나.
맨하탄 거리를 몇 시간 동안 혼자서 무작정 거닐었습니다.
가슴이 마구 뛰었습니다.
문득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습니다.
이유없는 한 줄기 그리움이었습니다.
흥산단 정동채 동지에게 전화를 걸어 김동균 목사의 전화 번호를 얻어
전화를 걸었습니다. 받지 않았습니다.
“맨하탄 35가에 있는 한밭식당에서 오후 다섯시 반부터 저녁을 곁들어
소주을 마실 예정입니다. 시간이 되시면 함께하고 싶습니다.” 는 간단한 텍스트 멧시지를
전화에 남겼습니다. 그리고 금방 잊었습니다.
5시 쯤에 김 목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일을 하느라 전화 메시지를 늦게 받고 수차례 전화를 했는데
내가 받지 않았다고 미안해 하며 지금 오고 있는 중이니
늦어도 6시까지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김 목사는 6시 쯤에 한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나타나
군만두 한 사라를 안주삼아 ‘처음 처럼’ 소주 반 병을 비우고 있는
나를 첫눈에 알아보고
“집에서 두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입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하며
나를 반겼습니다.
김 목사와의 만남은 이번이 두번째 입니다.
5-6 년(?) 전에 맨하탄 한 한국 음식점에서 그를 만나
이차로 이름도 모르는 한 교포 집에서 밤을 함께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목사라는 사실, 복음을 전도에 전념하기 위해서
자녀들을 갖지 않기로 사모와 맹세를 했다는 사실,
뉴욕 빈민촌에서 10여명 남짓한 교포 1.5세들, 2세들을 상대로
목회(牧會)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그때 들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를 걱정하는 나에게
부인이 은행에 근무하며 얻은 월 수입으로 아파트 월세와 생활비를 충당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고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귀한 손님들에게 아침을 대접하고 싶다며
그 지역에서 맛있기로 소문난 해장국 집으로 우리 일행 네명을 초대했습니다.
“가난한 목사에게 신세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 마음만을 고맙게 받겠습니다.” 하는
나의 수차례 사양을 뿌리치고
“제 한달 생활비가 200불 입니다. 이정도 지출은 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며
거금(?)을 지불했습니다.
솔직히 그때까지 나는 김 목사의 얼굴도, 정확한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참 별난 목사다.’ 라는 것이 그에 대한 내 기억의 전부였습니다.
우리들은 식사로 콩나물 국밥, 술 안주로 제육구이 한사라를 주문해서
오래된 친구처럼 스스럼 없이 주제 없는 대화를 나누며 소주 두 병을 비웠습니다.
무슨 말들을 서로 주고 받았는지 ……. 기억들이 별로 떠오르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들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 취했다.’ 는 사실입니다.
우리들은 33th 가와 8th 에버뉴 코너에서 8시 15분에 떠나는 버스 스케줄에
맞추어 7시 45분 쯤에 아쉬움을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습니다.
화장실에 가면서 웨이트레스를 조용히 불러 내 크레딧 카드를 건내며
식사비 결제를 부탁했습니다. 화장실에서 돌아오니 김 목사가 카운터 종업원과
이미 결제가 끝난 계산서 지불을 취소하고 자기 크레딧 카드로 결제하라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크레딧카드가 번거로우면 현금으로 내겠다며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렸습니다.
“김 목사, 이래뵈도 내가 김 목사보다는 훨씬 부자야. 내가 이미 냈으니
그냥 넘어갑시다.”
“아닙니다. 나를 찾아온 손님에게 신세를 지는 것은 사람된 도리가 아닙니다. ”
그는 나보다 더한 황소 고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몇분 이상의 크레딧카드 지불 전쟁을 민망하게 지켜보고 있던
종원업이 참다 못한 나머지 휴전협정안을 제안했습니다.
“ 이미 결제가 된 계산서이니 더 이상 번거롭게 하지말고
김 목사님이 양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김 목사는
“ 박 선생님, 다음 번에는 내가 꼭 대접을 하겠습니다.” 하며 고집을 꺾었습니다.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참 기인 목사!’
8시 15 분에 떠나기로 한 버스가 밤 10시 30분까지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참고 기다리는 것에 익숙한 미국인들, 일본인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불평불만들을 쏟아냈습니다.
“해도해도 너무하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이게 무슨 짓거리야.
이 버스의 고객이 운전수야, 손님들이야?”
“밤이 늦은 시간이니 사모에게 돌아가라.” 는 나의 거듭된 권유에도 불구하고
김 목사는 끝까지 내 곁을 지켜주었습니다.
“박 선생님 목마르시지요?” 하며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물병들을 사들고 와서 내 주위분들에게 한 병씩 돌리기도 했습니다.
‘감로수’ 는 이런 물을 두고 하는 말인가.
밤 10시 30분, 드디어 흑인 여자 운전수가 버스를 몰고 모습을 보였습니다.
얼굴이 피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은 씩씩하고 활기찬 모습이었습니다.
“새벽 6시에 버지니아에서 출발해서 5시간 이상을 운전하고 나서
다시 밤길을 운전하고 돌아가려면 8시간 정도의 충분한 휴식이 필요합니다.
나와 고객들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휴식입니다. “
운전수의 간단한 변이었습니다.
새벽 세시에 버스에서 내리면서
“당신은 내가 만나 본 가장 위대한 운전수 중 한명입니다.” 하는
진심어린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운전수에게 건넸습니다.
“You are welcome!’
김 목사, 흑인여자 버스운전사, 한 버스로 뉴욕을 오고갔던 승객들,
그리고 맨하탄 거리에서 마주쳤던 이름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이 글마저도 처음이자 마지막 인연처럼 느껴집니다.
다시 뵈올 때까지 강건하고 재미있는 여행이 되시길 빕니다.
이 편지는 가까운 벗들과 나누고져 합니다.
버지니아 숲 속에서
07/27/2017 아침에
해암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