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기] 파행 우려 뒤엎고 '자제력' 보여준 총회
▲ 지난 8월 5일 오후 5시 30분 탬파 사리원그릴에서 열린 플로리다한인회연합회 총회에서 제33대 연합회장에 당선된 김정화 후보가 박정환 선관위장으로부터 당선증을 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탬파=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큰일났습니다. 이번 선거가 100% 싸움판 될 게 틀림없습니다."
"연합회가 난장판이 되어 갈라지고 체육대회도 물건너 가게 생겼습니다."
비폭력을 통한 정상화 시대의 흐름을 탄 탓이었을까. 모두가 기우에 불과했다. 시종 팽팽한 긴장이 느껴졌지만, '싸움'도 없었고, 난장'도 없었다. 연례 연합체육대회도 아직 장소를 구하지는 못했지만, 예정대로 올랜도에서 치뤄질 것으로 보인다.
탬파 사리원그릴에서 5일 오후 열린 제33대 플로리다한인회연합회장 선출을 위한 총회에서 김정화 후보가 이우삼 후보를 19대 14, 5표차로 이기고 새 회장에 당선됐다. 절차상 하자도 없었고 간간이 웃음이 오가는 가운데 '페어플레이'가 펼쳐진 가운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승자는 패자를 위로했고, 패자는 승자를 기꺼이 축하해 주었다.
이날 연합회장 선거를 위한 총회는 일단 출석률 부터가 좋았다. 비록 '동원'된 분위기가 감지되었지만, 회원 36명 가운데 33명의 회원이 투표에 참여했다. 기자의 기억으로는 지난 20여년의 연합회장 선거에서 가장 많은 회원이 참여한 선거였다. 5~6년씩, 심지어는 10년이 훨씬 넘도록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던 회원들도 눈에 띄었다. 그만큼 이번 선거의 '열기'가 뜨거웠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총회는 오후 5시 30분경 최헌 회원의 사회로 막을 열었다. 일부 회원들이 '먼저 식사를 하고 총회를 하자'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선거 끝나고 하면 체할 것 같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예정대로 하자는 분위기가 대세을 이루며 긴장 속에 약식 국민의례에 이어 키스톤침례교회 김은복 목사의 기도, 노성일 회장의 인사, 최창건 탬파지역 한인회장의 환영사, 박정환 선관위원장의 당부의 말로 이어졌다.
험악한 분위기가 우려되어서인지 최창건 회장은 화합, 협력, 단결을 유난히 강조했고, 박정환 위원장도 '끝난 후가 문제'라며 결과에 승복할 것과 화합과 포용을 신신당부했다. 태권도인이기도 한 박 위원장은 ''이번 선거과정에서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가운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면서 섭섭함을 표시하고 "모두가 호형호제하며 한인사회를 위해 일하는 분들인만큼 승자도 패자도 관용과 포용으로 형제가 되는 선거를 치루자"고 당부했다.
▲ 지난 8월 5일 오후 5시 30분 탬파 사리원그릴에서 열린 연합회 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노성일 회장. 이날 총회에는 플로리다 전역에서 33명의 회원들이 참가해 높은 참여도를 보여 주었다. |
'회비대납' 시비, 근거 있는 해명으로 일단락
이어 이종주 선관위 간사가 최종 선거권자 36명의 명단을 발표하기 위해 단상에 나왔고, 모두가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전화와 이메일과 카톡방 대회에서 회원들 간에 엄청난 논쟁을 벌였다'는 전언이 나돌았던 터였다. 당초 연합회 사무처가 지난 7월 11일자로 최종 투표권자 명단으로 35명을 확정 발표했으나, 이날 투표에서 36명으로 하나가 늘었던 것이다.
2012년 9월 2일 최종 개정된 연합회 회칙 제20조 '선거권자 자격' 조항에 따르면, "선거권은 현 회장의 임기 만료일로부터 92일 이전까지 현 임기 회비납부를 필한 회원에게 부여한다"고 되어 있다. 문제는 이번에도 회비대납' 때문에 발생했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회비대납 당사자들인 포트마이어즈 신승렬 회원과 김혜일 회원이 발언권을 얻어 해명한 바에 따르면, '골프선수인 딸의 골프 토너먼트에 동반 참가하느라 여유를 갖지 못하자, 같은 지역의 김혜일 회원에게 요청하여 대납했다. 그런데 연합회사무처가 30일 이를 연합회 구좌에 입금한 며칠 후, 노성일 회장이 '대납은 안 된다'며 이를 되돌려 주었다는 것이다.
박정환 선관위원장은 '회칙을 (자의적으로) 해석.적용하기로 든다면, 마감시한인 30일을 넘겨서 도착하도록 회비를 낸 다른 몇분들도 투표자격이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며 신승렬 회원의 대납이 양해될 만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회원들은 박 위원장의 권유에 이어 신승렬 회원과 김혜일 회원의 해명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일단 수긍하는 분위기였고, 노성일 회장도 '뒷탈없이 공정하게 선거를 치러야 하는 입장에서는 회칙을 엄격하게 적용할 수 밖에 없었다'는 사과성 해명과 함께 '대납 해명'을 받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플로리다 한인사회 원로인 이하진 회원이 발언권을 얻어 "선권위원장의 (유권 해석)판단에 맡기자"고 권유하고 동의를 구했다. 이에 회원들도 박수로 동의했다.
이로써 최대 위기를 넘긴 선거는 흥미진진한 '축제 분위기'를 이뤘다, 두 후보와, 이들을 적극 밀어왔던 일단의 극성 회원들의 속내는 시간이 갈수록 긴장에 빠져들었을 터이지만, '위기'를 넘긴 탓인지 웃음꽃이 만발한 가운데 두 후보의 선거공약이 발표되었다. 여기에는 선거 사회자 이종주 간사의 '분위기 잡기'도 한몫 했다.
동전던지기를 통해 먼저 단상에 오른 기호 2번 이우삼 후보는 시종 당당하고 결의에 찬 표정으로 공약을 발표했다. 딸과 부인의 도움을 받았다고 밝힌 이 후보는 '같이 갑시다' '우리는 하나입니다(We Are One)'라는 종이 표지판을 만들어 자신의 결심을 밝혔다. '연합회 역사록을 만들겠다' '친목도모를 위한 추억만들기 여행' '연합체육대회에 민속놀이 추가' 등 눈에 띄는 공약들에 일부 회원들이 놀라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김정화 후보도 이에 뒤질세라 '연합회장 자리와 관계없이 연합회를 위하여 충성스럽고 열성적으로 일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말하고 '총영사관 재 설치' 및 '한국 직항노선' '한국어 플로리다운전면허 시험' 추진 등 굵직한 공약들에 이어 '차세대 미 주류사회 진출에 노력하겠다'는 단골 공약도 들고 나왔다. 김정화 후보는 특히 선거 후유증을 의식한 듯 "선거 결과에 관계 없이) 연합회의 화목을 이루는데 힘쓰겠다"고 밝혔다.
두 후보 '승복 서약'… 긴장 속 차분한 선거
투표에 앞서 두 후보는 선관위원장과 전 회원들 앞에 오른 손을 들고 '선거 결과에 대한 승복 서약'을 했다. 두 호보가 읽은 서약서는 "상기 본인은… 선관위가 내리는 선거에 관한 어떠한 결정에도 불복하거나 그 결정을 상대로 일체의 법정소송도 하지 않을 것을 서약합니다"는 내용을 적시했다.
이어 다소 시끌벅적한 가운데 투표에 들어갔다. 시종 농담을 섞어가며 가나다 순으로 선거권자들이 호명되어 투표장으로 들어갔고, 하나같이 밝은 표정으로 제자리로 돌아왔다. 앞자리에서 서로 마주보고 앉은 이우삼 후보와 김정화 후보는 서로 "누구를 찍었죠?" "당연히 나를 찍었죠"라며 농담을 주고받는 여유를 부렸다. 속이야 어떨망정 일단 여유있는 분위기를 연출해 나간 두 후보의 처신은 회의장 분위기를 밝게 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무려 20여분 간 투표가 진행된 후 양측 참관인 최헌 회원과 신승렬 회원이 양쪽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선관위원들(박정환, 김혜일, 정상호, 이종주, 서민호)이 일일이 표를 확인했다. 최종 투표자 수와 검표까지 재확인한 박정환 선관위원장이 단상에 나와 "이우삼 후보 14표,김정화 후보 19표로, 김정화 후보가 제33대 연합회장에 당선되었음을 선포합니다"라고 발표했다. 회원들은 우렁찬 박수로 새 회장의 탄생을 축하했다.
▲ 지난 8월 5일 오후 5시 30분 탬파 사리원그릴에서 열린 연합회 총회 회장 선거에서 양측의 참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관위원들이 검표를 하고 있다. |
등단한 김정화 당선자는 박 선관위원장으로부터 당선증을 받은 후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여러 회원님들을 모시고 섬기는 마음으로, 수평적인 연합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우삼 후보는 김정화 당선자에게 축하의 악수를 건넸고, 김 당선자는 이 후보에게 가벼운 위로의 포옹을 했다. 속내와는 별개로 페어플레이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근래에 보기드문 총회풍경이었다.
한편, 이번 총회 와중에서는 올해 연합체육대회 개최와 관련하여 서민호 올랜도 지역 한인회장의 개최 준비 보고가 있었다. 서 회장은 박정환 선관위원장이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체육대회는 예정대로 치뤄져야 하고 모두 적극 참석해 달라'고 당부하며 '올랜도에서 체육대회를 여는 것이 확실한가'고 묻자, 서 회장은 '올랜도에서 연다'면서 "9월 4일 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10곳을 접촉했으나, 아직 장소를 구하지 못했다"고 보고했다.
<꼬리 기사>
자제력 돋보인 총회… 고질적인 선거과정 '혼탁' '회비대납' 시비
이번 연합회 총회는 선거를 치르는 와중에 물밑 과정이야 불협화음이 있었을 망정, 여러가지 긍정적인 면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여타 선거와는 달랐다.
우선, 참관기에서 밝혔듯이 참석자들의 '호응도'가 좋았다는 것이다. 참가자의 숫자에서뿐 아니라, 회의 석상에서의 무질서하고 돌발적인 사태가 현저히 줄어든 점이 돋보였다. 토의중 발언권도 얻지 않고 불쑥불쑥 말을 내뱉는 경우, 상대편의 발언 중 느닷없이 말을 자르는 경우, 상대 의견에 공격적 태도를 취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고, 회의 도중 옆 사람과 큰 소리로 잡담을 하는 경우도 분위기를 해칠 정도는 아니었다. '위기감' 때문이었는지, 서로 자제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특히 앞 테이블에서 조용히 회의 광경를 지켜보며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한 원로 회원들의 역할도 자못 컸다.
선거 기간 중 카톡방이나 이메일 대화 등에서 일부 회원들간에 '바퀴벌레'(평상시에는 활동하지 않다가 선거 때에만 활동하는 회원을 일컫는 말. 기자 주) 논쟁이 벌어졌고, 이날 회의중 잠시 불거져 나왔으나 양측이 서로 자제해 자칫 격해질 분위기를 가라 앉혔다. 한 회원은 "나이들어 느린 손가락으로 카톡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자칫 문자를 잘 못 찍어 실수하는 경우가 많고 해명하기도 쉽지 않다"며 "카톡방 대화 방식이 위험하여 중단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질적인 몇가지 '악폐'도 여전했다, 서로간에 경쟁이 심화되어 인신공격과 흑색선전이 난무했다는 후문도 들려왔다. 일부 회원들이 특정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허위사실을 유포하는가하면, 외부 인사들을 동원하여 압력을 행사한다는 불평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회비대납' 문제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는 고질병 가운데 하나다. 이번의 경우, 과거와는 달리 대납 당사자들의 해명이 설득력 있었고 진정성을 인정받아 넘어갔으나, 회비대납 문제는 여전한 골칫거리로 남게 되었다. 기자가 목격해온 지난 20여년의 연합회장선거때마다 회비대납 문제가 빠짐없이 거론되어온 것을 떠올리면, 아직까지 이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점이 '불가사의'에 가깝다.
하지만, 답은 의외로 간단해 보인다. 회칙에 '회비대납은 어떤 경우든 안 된다'라는 규정을 넣거나, '대납의 경우 구체적으로 누구를 통해, 왜, 언제, 어디서 대납을 부탁했는지 서면으로 혀야 한다'는 규정을 넣는 것도 고려해 봄직하다. 어떤 경우든 '소인이 찍힌 날짜 또는 마감일까지 도착을 접수로 인정한다'는 문구를 넣어서 뒤탈을 없애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거의 모든 회의때마다 '봉사.친목 단체이니 회칙 무시하고 화기애애하게 하자'는 동네식 '적당주의'가 작용해 왔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몇주씩 서로 싸워가며 만든 회칙을 불과 수개월 후에 열린 총회에서 무시하는 광경도 목격했다. 일단 회칙이 있으면, 회칙대로 하는 것이 법적 윤리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길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연합회가 친목 성격을 넘어서 실제 플로리다한인사회를 대내외적으로 대변하는 단체라면, '룰'에 따라 회장을 뽑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