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장호준 칼럼니스트
캠프가 끝나고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가는 스쿨 버스 안에서 뒷자리에 앉은 카일에게 갔다고 온 아나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내게 말합니다.
"챙, 카일이 오줌을 쌌대."
카일은 1학년 남자 아이인데 캠프에서 떠나기 전에 화장실을 다녀오지 않았던가 봅니다.
"바지가 다 젖었니?"
"아니 조금 젖었는데 오줌 싸야 한대. 어떻게 해?"
캠프에서 떠난지 20분정도 지나 이미 타운을 벗어났고 여기서부터 다음 타운까지는 15분 정도는 더 가야 하는데 이러다가 정말 버스 안에서 오줌을 싸게 생겼습니다.
"알았어, 앞에 있는 숄더에 버스를 세울 테니 조금만 참으라고 해."
비상정차를 할 수 있는 공간에 버스를 세우기는 했지만 다음 문제는 누가 카일을 버스에 타고 있는 다른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숲으로 데리고 들어가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나는 11학년 여자 카운슬러이며 스쿨버스 운전사인 나는 아이들을 놔두고 버스에서 내려서는 안 되도록 규정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1학년 카일을 혼자 스쿨 버스에서 내려주어서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경찰차가 비상등(非常燈)을 켜고 버스 곁에 서더니 창문을 열고 내게 말을 합니다.
"무슨 일이야? 별일 없어? 도움이 필요하니?"
스쿨 버스가 비상정차 지역에 서있는 것을 보고 지나가던 경찰이 멈추어 선 것입니다.
"어, 남자 아이가 급하게 화장실을 가야한다고 하는데 버스에는 여자 카운슬러 밖에 없고 나는 스쿨버스에서 내려서는 안 되잖아. 그래서..."
경관이 "알았어" 하고 대답을 하더니 경찰차를 후진해서 내 버스 뒤편에 비상등을 켠 채로 주차를 해 놓고는 성큼성큼 버스로 다가와 카일을 데리고 버스에서 스무 걸음 쯤 떨어진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버스에 타고 있던 아이들이 모두 창문에 매달려 케일과 경관이 들어간 숲을 동그란 눈으로 처다 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카일이 다시 버스를 타면 아이들이 놀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카일이 타기 전에 아이들에게 놀리지 말라고 말을 해야 하는지 그렇다면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는 중에 경관이 카일을 번쩍 안아 들고 숲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마도 도로와 숲 사이에 카일이 건너기에는 폭이 넓은 배수로가 있었던가 봅니다. 그러더니 버스 앞에 와서는 아이들이 창문으로 보고 있는 것을 의식하고는 카일과 하이 화이브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다른 아이들의 눈빛에서 순간 카일이 놀림의 대상이 아니라 부러움의 대상으로 바뀌는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내가 안심한다는 표정으로 "Thank you, officer" 라고 하자 엄지를 척 들고는 "No problem" 이라고 하며 빙긋 웃더니 뒤편에서 오는 차들을 모두 세우고는 버스가 먼저 가도록 해 주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배려(配慮)라고 하는 것, 어떤 사람에게는 그저 별 것 아닌 작은 일이겠지만 당사자에게는 큰 도움과 힘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공감(共感)이라고 하는 것, 줄 수 있는 사람에게는 하지 않아도 그만 인 것이겠지만 필요한 사람에게는 큰 감동과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휠체어를 타고 이재용 재판을 보기 위해 나온, 뇌종양 수술을 받은 삼성반도체 피해자 한혜경씨를 향해 "병신들이 왜 여기 와", "인천 앞바다에 들어가 버려"라고 짖어대는 것들이나 "아들 같아서 전자팔찌를 채웠다."고 지랄을 떠는 것들...
이웃의 고통을 공감하며 배려 할 수 있는 역사적 인식을 가지고 있기에 사람인 것이지 그렇지 못하다면 그건 그저 짐승일 뿐인 것입니다.
세상이 굶주린 것은 줄 수 있는 빵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눌 수 있는 공감과 배려가 없기 때문입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장호준의 Awesome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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