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생활 이야기]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가난한 사람들'
(탬파=코리아위클리) 신동주 = 가난은 임금님도 구제 못한다고 했다. 어느 곳에서나 가난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기적이 일어나기 전에는 가난은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나는 신호등 정지 신호 앞에서 우회전을 대기 중이었다. 그때 길 가에는 초라한 행색에 꾀죄죄한 외모의 여자가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서 있었다. 아이는 연속 칭얼대고 있었지만 아이 엄마는 눈가만 계속 훔쳐내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고생을 이미 다 겪었다는 표정으로 하염없이 눈물을 계속 닦아 내고 있다.
그 모습을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나는 지갑을 열어보았다. 마침 잔돈이 없었다. 어떻게 할까 잠시 망설이다 10불짜리를 꺼내 조수석 문을 열고 여자에게 건네자 그는 눈물을 닦은 후 거친 손으로 돈을 받아들고 머리를 여러번 굽실거렸다. 신호등이 바뀌어 서서히 회전을 하면서 보니 여자가 손을 흔들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있었다.
사흘 쯤 후 그곳을 다시 지나는 데 그 여자가 같은 장소에서 여전히 서 있었다. 그녀는 내 차를 보더니 마침 나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한 눈으로 애처롭게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도 신호 대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이번에는 1불짜리 하나를 주니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데 눈물이 볼을 타고 뚝 떨어진다. 내 뒤에 있는 차에서도 돈을 주고 있는 것을 보니 그 사람도 여자를 불쌍히 여겼던 모양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표정이 당황스러워졌다. 내 뒤차 사람은 돈을 준 것도 모자라 등에 업힌 아이에게 초콜릿 한개를 쥐어 주었고 여자가 뜻하지 않은 배려에 당황스러움을 표한 것이다.
내게도 손녀들이 있는데 나는 왜 엄마만 생각했지 아이에게는 미처 신경이 가지 않았을까. 아마 내가 초콜릿을 가지고 있었어도 그 아이에게 줄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간 사거리 교차로에서 홈리스가 '배고프다(헝그리)'는 단어를 누런색 박스 조각에 써서 들고 있는 것을 종종 보았다. 그러나 그때는 무심코 스쳐 지나가기만 했다. 왜 그랬을까. 흔히 보는 노숙자들이라서? 내가 주지 않아도 남이 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부유한 미국에서 배고프다는 말은 괜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얼마전에는 평상시 보다 1시간 정도 일찍 출근했는데 쇼핑센터 입구에 들어서자 처마 밑 외등 불빛 아래 어떤 사람이 허름한 이부자리를 덮고 반듯하게 누워있는 것을 보고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얼굴은 반쯤 내 놓고 있는 것으로 보아 죽은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그의 옆을 지나 나는 가게 문을 열어 놓고서 간식으로 가게에 놔둔 빵과 소다 한개를 가지고 가보니 노숙자는 차 소리에 잠이 깨었는 지 어느새 짐 보따리를 싸들고 가고 없었다.
사실 우리는 그들의 개인 사정을 알지 못한다. 그들 중에는 정말 글자 그대로 배가 고파서 길거리에서 그렇게 구걸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테고, 노숙자는 진정 잘 곳이 없어 길거리에서 자고 있었을 것이다.
비록 가난을 함께 나눌 수는 없지만 바로 눈 앞에서 불우한 이웃을 보면 순수하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는게 좋을 성 싶다.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불우한 이웃에게 닥아간 선한 사마리아인의 얘기가 매일 나의 이야기가 되어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