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이계선 칼럼니스트
시카고의 문우(文友) 강형이 책을 보내왔다. 내가 순천(順天)이라 부르기도 하는 강형은 초등학교교장을 지낸 분인데 실력이 대학교수급이다. 천주교에서 알아주는 성가지휘자요 영어로 소설을 쓰는 낭만필객(浪漫筆客)이다. 이번에 칼럼과 단편을 묶어 창작집을 냈다. 표지타이틀 “철새를 기다리며” 제목부터 마음에 든다.
‘나보다 세살 많은 늙고 병든 몸인데도 그리움 가득한 책을 펴내는 강형은 낭만이 있구나!’
갑자기 더 친해진 느낌이 들었다. 나도 철새를 기다리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시영 아파트 옆으로 농장 50개가 일렬로 늘어서있다. 10평짜리 장난감농장(?)들이지만. Flower Garden(꽃동산) Children Garden(어린이놀이터) Vegetable Garden(텃밭)중 하나를 만들게 돼있다. 난 5개를 얻어 에덴농장(40평) 아리랑농장(10평)을 운영한다. 놀부농장처럼 욕심사납게 크지만 시비하지 않는다. 흑인주민들의 인심을 얻어놨기 때문이다.
“미스터리는 농사선생입니다. 7년전에 이사 와서 폐농처럼 버려진 가든을 멋지게 미니농장으로 가꿔놓았습니다. 그 바람에 우리들도 따라 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지난해 뉴욕가든대회에서 우리부부는 1등(에덴-농장주 이현자) 2등(아리랑-농장주 이계선)을 휩쓸었다. 소꿉놀이지만 농사는 즐겁다.
농사의 즐거움은 수확보다 가꾸기가 먼저다. 봄철이 아름답다. 내가 괭이로 고랑을 파면 아내는 뒤 따라오면서 씨를 뿌린다. 아내의 어깨위로 나비가 나풀거리면 하늘에서 새들이 날라와 울타리나뭇가지에 앉는다. 흙을 뒤엎을 때마다 겨울잠을 자던 굼뱅이들이 기어 나온다. 새들이 날래 내려와 꿀떡 삼켜버린다. 굼뱅이는 새들에게 정력보양식이기 때문이다. 굼뱅이로 정력을 돋꾼 놈들은 내려왔던 나무위로 올라가 사랑의 아리아를 불러댄다. 그러면 구름사이에서 암놈들이 떼로 날라와 격렬하게 사랑의 교미를 즐긴다.
뽕나무가 있는 아리랑농장은 텃새들 땅이다. 참새 비들기 까마귀 굴뚝새같은 텃새들이 마실꾼들처럼 뽕나무로 몰려든다. 이놈들은 뽕나무에 매달려 흑설탕처럼 까맣게 익은 오디를 쪼아 먹는다.
에덴농장은 철새들의 파라다이스. 은사시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파란잎새에 은가루를 살짝 덧칠한 듯한 은사시나무는 미녀나무로 통한다. 그래서 그런지 예쁜 철새들만 몰려든다. 로빈새 오리올 스털링 찌르레기 불르제이가 날라와 미녀군단을 이룬다. 철새들은 먹기에 바쁜 텃새들과 달리 노래하느라 정신이 없다. 놈들은 은사시나무가지에 앉아 봄의 교향악을 합창한다.
나는 텃새보다 철새가 좋다. 텃새는 참새나 비둘기처럼 하나같이 빛바랜 색깔이다. 철새들은 꾀꼬리처럼 총천연색으로 단장한 멋쟁이 패션이다. 새소리도 철새가 아름답다. 텃새들은 참새 까치 까마귀 꿩처럼 짹짹 꽉꽉 꿩꿩거리면서 단음밖에 못 낸다. 철새들은 꾀꼬리 종달새 제비 뻐꾸기처럼 오페라가수들이다. 텃새들은 고집이 세어 죽어도 사람을 안 따른다. 철새들은 새끼에게 먹이를 주면 나를 어미로 알고 잘 따른다.
고향의 어린시절 시골애들은 봄이면 새를 키웠다. 나무를 타고 올라가 둥지에서 새새끼를 꺼낸다. 삶은 달걀 노른자를 주면 제 어미인줄 알고 노란 입을 벌렸다. 애들은 기르기 쉬운 깨끔발이를 많이 키웠다. 난 좀 까다롭지만 이쁘고 목소리가 고운 꾀꼬리 두마리를 길렀다. 잘 따랐다. 학교갔다 올적마다 집근처에서 “끼꼬 꼬끼꼬 키오 꽈아악 꽈아악-"하고 끼꼬리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면 녀석들은 노란날개를 펄럭이면서 날라와 내 어깨에 앉곤 했다. 나는 지금도 꾀꼬리 휘파람을 잘 부른다. 어느해 여름에는 반애들이 기르는 새들을 모두 가져와 철새축제를 벌리기도 했다. 철새들은 사람을 잘 따른다. 나는 이쁘고 노래잘하고 사람 잘 따르는 철새를 좋아한다. 못생기고 노래도 못하는 주제에 고집만 센 텃새들을 싫어한다.
어디 새 뿐인가? 난 철새같은 여자가 좋다. 나이 27에 선을 봤다. 하나같이 텃새아가씨들 뿐이었다. 착하고 순종하는 여필종부(女必從夫). 남편이 무능하고 사나워도 시집귀신이 되겠다고 꾹꾹 참아대는 텃새며느리. 그런 텃새와 살면 목회성공 가업성공은 이루겠지만 부부싸움도 못하고 얼마나 답답할까?
그때 마침 부산에서 철새 한마리가 날아와 결혼할수 있었다. 그런데 결혼생활 50년을 하고나니 아내는 완전 텃새로 변해버렸다. 처제가 언니에게 옷을 선물한다기에 달려갔더니? 아! 글쎄 몸빼바지를 준다.
“이거 입으면 좀 뚱뚱해 보이지만 아주 편하고 좋아. 언니에게 맞을것 같애.”
아주 망했다. 완전 텃새가 된 것이다.
난 요즘 세 번씩 농장에 나간다. 푸른채소와 빨갛게 익어가는 도마도가 아름답다. 은사시나무를 올려다 본다. 텅 비어있다. 철새들이 보이지 않는다.
“말복이 되자 철새들이 모두 날라가 버렸구나. 내년 봄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그런데 맨해튼에서 철새들이 날라왔다. 지난 주일에 맨해튼에서 7명의 철새미녀들이 날라왔다. 맨해튼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하는 7명의 미녀들이 돌섬을 찾은것이다. 얼굴 목소리 패션이 철새처럼 이쁘다.
그녀들은 아리랑농장의 도라지와 더덕을 보고 소녀들처럼 소리쳤다. 50대 노처녀들이.
“처음보는 더덕넝쿨에서 더덕향기가 스모그처럼 몰래 스며 오르네요”
“하얀꽃 연두색의 도라지꽃도 아름다워요. 이렇게 큰 도라지와 더덕넝쿨을 첨봐요”
“3년생들이라서 사람 키만큼 자라고 있지요. 내년쯤 팔뚝만하게 자란 이놈들을 캐서 도라지비빔밥에 더덕구이를 곁들여서 먹으면 천하일미이지요 내년에도 꼭 와요”
에덴농장으로 옮겼다. 바다처럼 넓어 보이는 40평짜리에 토마토 고추 오이 호박 가지가 가득했다. 애호박만큼 큰 황제토마토가 붉게 익어가고 있는 장관을 보자 아가씨들은 갑자기 서리꾼으로 돌변 했다. 농장안으로 쳐들어가더니 토마토 고추 오이 호박 상추 깻잎을 닥치는 대로 따기 시작했다.
서리해온 요리로 차린 점심식탁이 즐겁다. 성가대원들 답게 즉석음악회를 열었다. 그녀들은 돌섬을 찾아온 철새였다. 어린시절에 기른 꾀꼬리처럼 우리부부를 따랐다. 아내를 친정엄마라고 부른다. 내손을 꼭잡고 비치를 걸었다. 딸처럼 간호사처럼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내가 넘어질까 봐 살펴가면서.
돌섬을 떠나는 그녀들을 보내고 우리부부는 음악을 들었다. 사이몽과 카펑클이 부르는 “철새는 날라가고”
/여기에 머물다 떠나간 백조처럼/ 인간은 땅에 머물러 있다가/ 가장 슬픈 소리를 세상에 들려주지? 가장 처량한 소리를/
“여보 당신 철새처럼 떠나지 말아요. 병들어도 죽지말고 오래오래 같이 있어줘야해요”
“철새처럼 이쁘던 당신이 이제 텃새가 돼버렸는데 어떻게 떠나요? 비록 늙었지만 철새들처럼 재미있고 즐겁게 살아야지”
정지용의 시 “향수”에 나오는 구절이 생각난다.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지고 이삭 줏던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아내가 멋지다. 시인의 아내처럼 사랑스럽다. 아내가 70넘어 텃새가 되고보니 20대의 철새시절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부부는 요즘 철새처럼 산다. 장난하고 연극하고 일하고 싸우면서 재미있게 산다. 애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철새처럼 대한다. 시카고의 문우강형의 책 “철새를 기다리며”도 실은 텃새이야기다. 20년동안 척추를 앓다가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는 순애보(純愛譜)다. 어디 철새만 떠나는가? 텃새도 떠나가는걸. 그래서 우리는 철새처럼 즐겁게 살아야한다.
맨해튼에서 날아온 철새미녀들이 토마토 서리꾼으로 돌변했다
*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등촌의 사랑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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