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주의 정당에서 시작되는 케냐의 정치 불안
2017케냐 대선으로 본 케냐 정치의 특징과 전망①
케냐GBS=송태진리포터 taylorsong@gbskenya.com
아프리카에서는 즐기기 힘든 민주주의의 축제
8월 8일, 케냐는 대통령 선거 및 총 선거를 치렀다. 대통령을 비롯해 주지사와 상원의원 그리고 하원의원 등 굵직한 일꾼을 뽑는 전국 선거였다.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축제라고 일컫는다. 하지만 아프리카, 최소한 케냐의 선거는 그다지 축제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다. 그보다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태풍이라고 부르는 게 나을 거 같다. 태풍이 가져오는 좋은 점도 있지만 함께 일어나는 피해도 적지 않다. 케냐 사람들은 선거가 가까워오면 식료품을 저장하고 현금을 준비하며 선거 이후에 찾아올지도 모를 불상사를 대비한다. 그 동안의 전례를 보았을 때 케냐인들에게 선거는 축제보다 두려움의 대상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왜 이곳에서는 민주주의의 축제를 즐기는 게 어려운 일이 되었을까?
선거가 익숙하지 않은 아프리카 전통 사회
선거는 국민의 대표를 뽑기 위한 제도다. 18세기 프랑스 혁명 이후 시민들이 주인이 된 근대 유럽에서는 다수결 원칙에 따라 선거 제도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했다. 그 후 200여년의 세월이 흐르며 서구사회에서는 시민의 손으로 지도자를 뽑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혀갔다. 시민들은 자기 뜻에 맞는 정당과 후보에게 표를 던지며 각자의 의견을 표현한다. 승리하든 패배하든 다수의 뜻을 인정하고, 선발된 일꾼에게 힘을 실어주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다수결 원칙과 선거는 민주주의 사회를 움직이는 유용한 요소로 오늘날 전 세계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아프리카 전통사회에서는 선거와 다수결 원칙이 익숙하지 않은 의사결정 방식이었다. 아프리카 인들은 오랫동안 혈연으로 맺어진 부족을 중심으로 생활했다. 마사이, 줄루, 아산티 등 각 부족을 이끄는 추장과 원로들은 존경받는 가문의 어른들이었다. 자식이 부모의 말에 순응하듯 부족 사람들은 높은 어르신의 결정을 따르는 데에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간혹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지구상 다른 곳에서도 그렇듯, 부족 단위로 생활하는 아프리카의 전통 사회에서는 원로 및 부족 구성원 다수와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이 어려웠다.
부족사회에서는 의견이 대립될 때 다수결 원칙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난해한 문제가 발생하면 그에 연관된 사람들과 부족의 원로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 이해할 때까지 토론을 진행했다. 모든 사람들이 만장일치에 이르기까지 때로 몇날 며칠이 걸리기도 했지만, 부족사회는 크고 작은 목소리를 모두 수렴하여 가장 지혜로운 결론을 만들어내곤 했다. 많은 부족의 추장과 원로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 과격한 고집쟁이가 아니었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관대한 지도자들이었다. 카렌 블릭센의 ‘아웃 오브 아프리카’나 치누아 아체베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와 같은 아프리카 사회를 다룬 수기에서도 부족 지도자들의 길고 긴 토론과 거기에 순응하는 부족민들의 모습이 꽤나 비중 있게 다뤄진다.
2017 케냐대선에서 지역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라일라 오딩가 (사진=라일라 오딩가 페이스북) |
선거는 부족 간의 총성 없는 전쟁
물론 오늘날 아프리카 국가들은 부족의 원로가 아닌 정치인과 관료에 의해 움직인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사회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언어와 문화, 사고방식 등 많은 부분에서 사람들은 부족의 전통을 따른다. 케냐에도 43개의 크고 작은 부족들이 존재한다. 1963년부터 시작된 ‘케냐’라는 무형의 국가보다 수천 년 전부터 끈끈이 이어져온 자신의 부족에게 더욱 친밀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아프리카 32개국에서 약 5만 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아프로바로미터의 조사 결과를 보면 스스로를 부족민보다 국민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의 비율이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47.5%) 반면, 자신의 정체성에 있어 국민과 부족민이 동일한 수준으로 중요하다고 답한 사람이 전체의 34%였으며 자신이 국민이기 이전에 부족민이라고 답한 사람도 10.1%에 달했다.
식민지배에 따라 좋든 싫든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 묶인 각 부족은 서로를 견제하며 보다 앞서나가기 위한 경쟁을 시작했다. 특히 정치는 치열한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다. 독립 직후에 각 부족 간 적절히 안배되었던 국가 권력은 초대 대통령 조모 케냐타의 집권이 길어지면서 점차 그가 속한 키쿠유 족에게 편중되기 시작했고, 2대 대통령 다니엘 모이 시절에는 칼렌진 족이 비슷한 특권을 누렸다. 1992년 다당제의 도입은 잠시나마 희망을 가져왔으나 부족 중심으로 설립된 새로운 정당들은 부족 정치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국가 권력은 집권한 정당과 그 부족에 의해 사유화되기 십상이었다. 중앙의 정치인은 지역의 정치인을, 지역 정치인은 부족의 추장과 원로를 돈과 권력으로 포섭하는 것이 케냐 정치의 문법이 되었다. 그들이 국민을 위하는 지도자인지, 국가의 발전과 개혁을 바라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선거가 시작되면 많은 유권자들은 자신이 속한 부족의 정당에 표를 몰아준다. 후보자가 어떤 사람인지, 공약이 무엇인지 보다는 부족에서 지명한 정당 출신인지 아닌지가 표를 주기 위한 가장 중요한 이유로 작용한다. 이때 선거는 나라를 위해 바르게 일할 수 있는 유능한 지도자를 뽑으려는 목적 보다는 자기 부족의 이익을 대변해 줄 대표를 정치계에 진출시키기 위한 ‘부족 간의 총성 없는 전쟁’과 같은 모습을 띤다. 선거구라는 전장에서 후보자는 장수요, 유권자는 병사이며, 그들의 한 표는 탄환처럼 움직인다. 전쟁의 목적은 자신이 속한 정당, 즉 부족의 승리다. 전쟁터에서 상대편의 장수가 유능하다고 해서 진영을 이탈할 수 없듯, 투표를 하는 사람들은 후보의 자질에 관계없이 승리를 위해 자신의 정당에게 표를 던진다. 이러한 모습은 일견 한국의 지역주의 정치와도 유사하게 보이지만, 케냐의 혈연 정당이 주관하는 부족주의 정치는 그 정도와 영향 면에서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케냐 여당인 주빌리와 야당연합 NASA의 정책적 차별성은 존재하지만 궁극적 차이는 부족간의 연합에서 나온다. 사진은 우후루 케냐타를 지자하는 선거운동 (사진=우후루 케냐타 페이스북) |
케냐 43개 부족들의 거대한 합종연횡, 대통령 선거
선거를 통한 부족 간의 싸움은 대통령 선거에서 절정에 달한다. 케냐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오르기 위한 여러 부족들의 합종연횡과 권력의 뒤편에서 벌어지는 암투와 음모가 치열하게 펼쳐진다. 올해 역시 선거 전부터 내무부 장관이 심장마비로 급사하며 암살 의혹이 불거졌고, 부통령 사택에 무장 괴한이 침투하기도 했으며, 선거관리위원이 고문당한 채 시신으로 발견되는 등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았다. 야당에서는 선거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여당의 부정선거 의혹을 지적하며 견제구를 던졌다.
2017 대선에서는 여당 ‘주빌리’(Jubilee)와 야당연합 ‘NASA’(National Super Alliance)가 맞붙었다. 조지타운 대학교의 켄 오팔로 교수는 두 당의 공약을 비교하며 야당이 여당에 비해 조금 더 분배 중심의 진보적인 정책을 주장하는 등 일부 정책적인 차별성이 존재한다고 지목했다. 하지만 두 당 간의 궁극적 차이는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그들이 각각 어떤 부족들과 연합 세력을 구축했는가로 해석 하는 게 더 쉽다.
주빌리에서는 현 대통령인 ‘우후루 무이가이 케냐타’(Uhuru Muigai Kenyatta)를 후보로 그의 재선을 노렸다. 주빌리에는 케냐 인구의 22%를 차지하는 최대 부족인 키쿠유를 중심으로 칼렌진, 엠부, 메루 등의 부족들이 연합했다. 이들은 주로 케냐의 중부 지방을 거점으로 하는 부족들이다. 그 외에도 주빌리는 여당의 위치를 남용해 제3의 부족인 공무원과 군경 등을 선거유세에 투입시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에 상대편 야당연합 NASA는 전 국무총리 ‘라일라 아몰로 오딩가’(Raila Amolo Odinga)를 후보로 세웠다. 라일라 오딩가는 이미 1997년과 2007년, 그리고 2013년 세 번의 대선에 출마해 패배한 경험이 있지만 72세의 노구를 이끌고 대통령의 권좌를 향해 네 번째 출사표를 던졌다. NASA는 인구 순위 두 번째와 세 번째 부족인 루히야, 루오 및 캄바, 타이타 등의 부족과 손을 잡았다. 그들은 주로 서부 빅토리아 호수 인근과 동부 해안지방을 거점으로 한다. 선거기간 합종연횡 하는 케냐의 43개 부족들은 주빌리와 NASA라는 거대한 두 개의 깃발 아래 모이는 제후들의 군대처럼 느껴진다.
이런 대세 속에서 선거 운동이란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더 좋은 공약을 만들고 이를 알리는 활동이라기 보다 ‘우리 대 그들’(Us vs Them)의 구도를 조성하고 패배 시 찾아올 위기감을 강조하여 연합에 속한 부족민의 투표율을 끌어올리는 일로 이해된다. 케냐 SNS에서 인기를 얻은 여당의 부정적 홍보영상을 보면 만일 야당이 선거에서 이길 경우 국회는 해산되고 헌법은 폐기되며 상시 계엄령이 선포될 것이고 급기야 케냐는 아프리카 최빈국으로 전락할 것이라며 위협하듯 여당 지지자들의 투표 참여를 독려한다. 반면 야당은 과거 2007년 및 2013년 선거 모두 실제론 야당 후보인 라일라 오딩가가 승리했지만, 현 여당이 선거 결과를 조작했다면서 야당 지지자들을 자극했다. 이처럼 부족 연합간의 대결 구도가 짜인 채로 치러지는 선거는 개인의 의견이 반영될 여지가 없는 부족 간의 전쟁으로 전락할 수 있다.
2부로 이어집니다.
2부 기사 보기 ⇒ http://www.okja.org/saseol/67307
나이로비(케냐)=송태진 리포터
감수=이인복 (UC San Diego 정치학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