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이 몰아치는 창밖을 보면서 겨울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월동준비를 충분히 해 둔 덕분에 지난 해보다 더 따스하게 보내고 있지만, 지독한 독감은 내 온 몸을 지치게 만들었다.
물 한 모금 입에 댈 수가 없었다. 음식을 거부하는 몸을 그대로 놔둔 채 며칠 동안 물만 넘기면서 지냈다. 의사도 찾지 않았다. 그냥 누워서 가만히 쉬기만 했다.
쉼표의 미학을 읊조리면서 창밖의 변화무쌍한 날씨를 바라보는 것이 요 며칠의 내 일상이었다. 시간이 약이라더니, 내 몸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스스로 치유를 해나가고 있었다. 잠시 사이에 몸무게가 확 줄어 들어 기운은 없었으나 점점 몸이 더 편안해지면서 배가 고파 오기 시작했다.
마음과 달리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간이 없는 흰죽을 조금 먹고 그저 내 몸이 스스로 치유를 하는 시간을 줄 수밖에 없었다. 세수를 할 의욕도 그 어떤 의욕도 일어나지 않아 내가 한 일은 그저 창밖을 보는 일.
남편이 쒀 놓은 어설픈 흰죽을 먹으며 하얀 은방울꽃들이 조랑조랑 피어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해마다 봄이 오고 있음을 미리 알려주고 있는 꽃들이다.
이사온 지 몇 해 안 되어 우리집 정원에 스스로 뿌리를 내린 꽃이다. 산에서 날아온 녀석인지 다른 집 정원에서 날아온 녀석인지 잘 모르겠으나 가늘디 가는 꽃대에 작디 작은 하얀색의 방울꽃들이 조랑조랑 빛을 발한다. 너무 예뻐서 그냥 내가 은방울꽃이라고 이름을 붙여버렸다.
겨울의 끝자락이 온 걸 알려주는 하얀 얼굴들이 예쁜 도깨비 방망이처럼 보였다. 굵직하고 뿔이 돋아나 있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닌 가녀린 꽃방망이었다. 늘 그렇듯 그녀석들을 보고 나면 좋은 일들이 일어났으니 착한 도깨비의 방망이 임에 틀림이 없다.
그 하얀 얼굴들이 소리없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내 몸은 빠르게 치유가 되어 갔다. 입맛도 돌아 오고, 새로운 희망도 용솟음쳤다. 가게 일이 복잡해서 마음이 좋지 않았었는데, 그 걱정도 그녀석들이 하늘거릴때마다 사라져 갔다.
‘우리 집에 분명 도깨비가 살고 있는 거야. 어떤 도깨비일까? 가장 추운 겨울에 저리도 예쁜 꽃방망이를 흔들어서 새로운 희망을 안겨 주는 착한 도깨비. 그러고 보니 하얀 꽃방망이가 흔들리고 나면 꼭 우리 집에 좋은 일이 생기더라. 암담했었던 일들이 확 풀리면서 새로운 환경이 되어 버리더라.’
아니나 다를까? 매장에서도 좋은 소식이 들려 왔다.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오는 것이다. 도깨비 방망이를 매일마다 뚝딱 뚝딱 내려 친 것처럼.
도깨비도 시대에 따라서 많이 변했을 거 같다. 인간의 의식이 높아진 만큼 도깨비의 의식도 높아져서 힘이 아닌 사랑으로 꽃방망이를 하늘하늘 흔들면서 모든 욕심과 심술과 변덕을 하나하나 녹여나갈 것이다.
감사하고 사랑한다.
칼럼니스트 김지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