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시 외출에는 버스가 마냥 편하다. 그 날은 상황이 달라서 서둘러 차를 몰고 나서야 했다. 며칠전, 새로 개통된 워터뷰(water viwe)터널을 신선한 기분으로 달렸다. 제법 긴 터널을 신나게 거의 다 빠져나오려는 순간이다. 갑자기 차에서 기분나쁜 소음이 들려왔다. 속력이 뚝 떨어졌다. 뒤의 차들이 계속해서 앞지르기로 달린다. (드디어 때가 왔나보구나...) 차가 다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시티쪽으로 빠지는 고가가 유난히 높았다. 더는 못 구르겠다고 버티는 차를 간신히 끌고 올라가 내리막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세울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어쩌지?....겁이 덜컥났다. 운전대 잡고 굴리는 것 말고는 차에 대해서 아는게 없질 않은가.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머리가 띵 했다. 이런 때는 누가 옆에 있기라도 했으면 위로가 될 것 같았다. 외로움 같은게 밀려왔다. (침착하자) 조금씩 떨려오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연거푸 심호흡을 했다.
지금 이 순간. 어떤 일부터 처리를 해야 할 것인지 하나씩 순서대로 머리속에 정리를 했다. 제일먼저 다친 다리를 끌고나와 기다릴 딸애에게 전화를 했다. 발목을 삐여 급하게 침을 맞히려 가려던 참이었다.
“엄마 어떻게 해?...”걱정하는 물음에 긴 대답할 시간조차 아꼈다. 다음엔 한의원에 알렸다. 아이를 픽업해 치료해 주시겠다는 말씀이 무척 고마웠다. 더불어 AA에 연락이 힘들면 도와줄테니 알리라는 친절함까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책을 뒤져 전화번호를 찾고 전화를 하려는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톡톡 차창을 두드린다. 경찰이 온 모양인가? 하고 시선을 돌렸다.
밝은 주황색 조끼에 헬멧을 쓴 중년의 남자였다.시동을 걸어보더니 별문제 없다고 고개를 갸웃해 보인다. 그 때 뒤에 있던 또 한 사람이 손가락으로 가리겼다.
왼쪽 뒷바퀴가 납작하게 주저앉아 있는게 아닌가. 아하 펑크였구나 !... 큰 불안에서 조금은 느긋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래서 올려다보면 아득한 고가 위. 막힌데없는 칼바람이 매섭게 달겨들었다. 몸이 날아갈 것만 같다.
그들은 나를 얌전히 차에 앉히고 걱정하지 말란다. 어느 공장으로 갈 것인지?. 출장비도 제법 만만찮을텐데... 이런저런 걱정으로 나는 AA에 연락을 원했다. 그 말을 신경써 듣지도 않는것 같았다. 알았다고 하면서 15분만 기다리란다.
30분쯤. 수시간을 보낸것 같은 지루함 속이었다. 거대한 몸체의 견인차가 어느틈에 시야를 막고 서 있다. 분에 넘치는 남자들의 환대였다.
높다란 견인차에 나를 먼저 올려 태웠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내 늙음을 들킨것 같아 잠깐 자존심이 꿈틀됐지만 그리 기분 나쁜건 아니었다. 마치 검은 갯벌에 방게들이 움직이는 것 같은 작은 차들을 그윽히 내려다보며 달리는 재미가 그럴듯했다. 특별한(?) 사람만이 타보는 이 차. 나는 두 번 째다.
십 년쯤 전이다. 친구분의 차에 동승해서‘실버데일’의 친지집을 방문했다. 종일 잘 놀고 저녁까지 먹은뒤 돌아오는 길이었다.
해동갑을 해서 나오니 서서히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씽씽 잘 달리던 차에 갑자기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못 가겠다고 버텼다. 알바니 어디쯤이었다. 차에서 내릴 수밖에... 길 옆에서는 늦저녁 바람에 헝크러진 마른 푸서리가 무수히 술렁댔다. 둥지를 찾아가는 게으른 새일까? 푸드득 머리 위에서 놀램을 주기도 했다. 급하게 조치하는 친구를 멀찍이. 밤풍경이 낯설은 나는 어둠을 헤치고 품속으로 안겨오는 바람이 몹시도 상쾌했다. 묘한 쾌감에 콧노래가 나올 것도 같았다.
내가 이런 기분이란 걸 알면 조금도 미안해 하지 말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 많이들 미안해 한다고 들었다. 귀가를 서두르는 차들의 빨강 꼬리 등을 보면서 재미있어 손뼉이라도 치고싶은데... 기다림 끝에 견인차가 왔다. 고장차는 큰 차 등에 매미처럼 업혔다.
높고 큰 유리창 너머로 밤 하늘이 참 시원했다. 검푸른 하늘에 하나 둘씩 반짝이는 찬란한 별들. 언제 떠올랐는지 둥그렇게 큰 달이 높직히 걸려있다. 참으로 청명한 밤 하늘이었다. (어머 저 달 좀 봐, 어찌 저렇게 밝고 아름다울까? 멋져라.) 혼자서만 즐기기엔 너무 아까웠다.
“저 달 좀 보세요, 정말 아름답죠.”참기 어려운 탄성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흘러 나왔다. 대답이 있을리 없다. 아 차.... 상황판단을 제대로 못했구나. 혼자서 철없음을 나무램 해야했다. 속으로 혀를 찼을지도 혹시 모른다. 끝없는 내 낭만끼를 옆에서 애교로 이해해 주었는지... 대답없는 친구가 차라리 고마웠다.
공장으로 가는줄 알았는데 고속도로를 빠져 나오자마자 주유소 넓은 마당에 차를 세웠다. 주황색 조끼의 두 사람이 뒤따라 왔음을 알았다. 견인차 기사는 차를 내리자마자“베리 비지”라는 말을 남기고 벌써 저만치 차를 몰고간다.
두 사람이 내 차에서 ‘스페어 타이어’를 꺼내더니 열심히 갈아끼우는 작업을 했다. 그 와중에도 마음 불안한 내가 찬바람에 고생할까봐 자기들 차에 편히 모셔놓는 걸 잊지 않았다. 너무도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손을 툭툭털며 다 되었노라고 조심스럽게 안내를 해 앉혀 주었다. 얼마를 달라해도 아깝지 않을 것만 같았다. 지갑을 열며 물었다.
“오우 노댕큐 노댕큐..”
도리질을 하며 어서 가라고 환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준다. 어려울 때 남을 도와주고 만족해
웃는 그 웃음. 봉사는 바로 그런 보람으로 하는 것임을 새삼 곱씹어본다.
그들은 도로관리를 책임진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적인 친절함같은 것은 그들 개인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직분의 책임감 그 이상으로 120%의 성과를 거두며 만족해 하는 사람들. 두어시간 늦긴 했지만 그 날의 일정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예정대로 마칠 수가 있었다. 그들의 덕이었다.
처음으로 경험했던 어려운 일이었지만 뜻밖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 전화위복이 된 셈이었다. 지금도 그 길을 지날땐 그들의 따뜻한 미소가 생각난다.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칼럼니스트 오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