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 읽기] 트럼프 정부, 한미FTA 협상 신경쓸 여력 없어
(워싱턴=코리아위클리) 박영철(전 원광대 교수) = "지난 22일 서울에서 열린 한국 산업통상자원부와 미국 무역대표부(USTR) 간의 한미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의 첫 회담이 양측의 이견으로 어떤 합의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추후 협의 일정도 정하지 못했다."
김현종 한국 협상 대표가 회담 결렬 후 낸 성명 내용이다. 회담 장소 문제로 한 달 정도나 볼썽사나운 기 싸움 끝에 가까스로 서울에서 열린 한미FTA 개정 협상이 첫 회담부터 삐걱대고 있다.
여기서 강조할 점은 이번 개정 협상이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중에는 논의조차 되지 않은 의제라는 점이다. 한미 정상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협상의 목적이 기존 한미FTA 협정의 개정이라고 일방적으로 규정하고 한국에 통보했다는 사실은 외교적 '무례'와 '협박'에 준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트럼프가 한미FTA 개정 협상을 선언한 직후 문재인 대통령은 이 협상이 어려울 것으로 예측하고 곧 구성될 한국 협상팀에게 "협상에 당당히 임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이명박과 박근혜 전 정권처럼 '미국 비위 맞추기', '끌려가기' 및 '굴욕적'인 협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인 간곡한 지시이다.
이 칼럼에서는 한미FTA 재협상에 임하는 양측의 입장과 성취하고자 하는 주요 목적, 그리고 향후 협상의 전망은 어떤지 살펴본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FTA 개정 협상을 일방적으로 선언하면서 미국의 대(對)한국 무역 적자가 한미FTA 발효(2012년) 이후 크게 악화하였으므로 이 같은 무역 불균형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트럼프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파트너인 멕시코나 캐나다, 그리고 세계 경제 대국인 중국에 '무역 전쟁'을 선포하면서,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막대한 무역흑자를 축적한다'는 비난보다는 그 어조가 부드러운 편이지만, '세계 무역'의 경제적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왜곡한다는 점과 충동적인 '협박'이란 점에서는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국제 무역의 목적이 단순히 무역 흑자를 내는 것만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다행히 위와 같은 미국의 '도전적'인 주장에 문재인 정부 협상팀의 대응은 매우 단호하고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강점을 가진다.
우선 협상 회의 장소를 미국이 제안한 워싱턴이 아니라 서울로 정하고 회의 시기를 늦추자고 역으로 제안하여 결국 성공시켰다.
더 중요한 사실은, 한국 협상팀은 한미FTA 효과가 미국의 주장처럼 한국에만(One Way) 유리한 것이 아니라 두 나라에 다 같이 유리한 '상호 호혜적(Mutually Beneficial)'이라고 주장하는 4~5개의 보고서가 한국과 미국의 정가와 학계에서 발표한 사실을 공개했다. 그중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의 보고서는 2016년 미국의 대(對)한국 무역적자가 238억 달러지만, 만약 한미FTA 협정이 없었더라면 오히려 440억 달러로 거의 배로 확대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또 국제문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한국 수입시장 점유율은 2011년 8.5%에서 2016년 10.6%로 2.1%포인트 상승하고, 한국의 미국 수입시장 점유율도 같은 기간 동안 2.57%에서 3.19%로 상승하여 한미FTA 협정이 상호 호혜적이란 사실이 통계로 확인된 셈이다.
트럼프 정부, 무능력에 NAFTA 협상에도 급급
그런데 한미FTA 공동위원회 특별 회기의 첫 회담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추후 협의 일정도 정하지 못하고 결렬되었는가?
회담 시작 전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미국의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가 회담 장소가 서울로 정해지면서 돌연 미국 측 대표로서의 방한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회담 당일에는 미국 측이 한미FTA 개정 협상을 정식으로 요구하면서, 한국이 이를 '수용 불가'라고 못 박고, <한미FTA 의 경제적 효과 분석의 필요성>을 역으로 제안하여 회담이 시작도 못 하고 끝났다. 왜냐하면, 미국대표단이 한국의 역제안에 대한 답을 귀국 후에 통보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어찌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아직 공식적인 설명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양측 대표단은 말을 아끼고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추론이 매우 높은 설득력을 가진다. 즉 미국 측은 우선순위에서 크게 밀리는 한미FTA 개정 협정에 큰 관심도 없고, 최악의 경우 기존 한미 FTA 폐기도 수용할 의사가 있는 것 같다는 말이다. 아래 두 가지 이유가 이 같은 추론을 뒷받침한다.
첫째, 미국은 현재 진행 중인 미국과 멕시코 간의 NAFTA 협상에서 크게 고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미국이 고전하는 첫 번째 이유는 미국 협상팀 중에 NAFTA 전문가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몇 주 전 서울 방문을 돌연 취소한 미국 협상팀 대표 라이트하이저도 현재 이 협상에 몰두하고 있다. 미국 측이 고전하는 또 다른 이유는 NAFTA 개정 협상의 일정이 너무 촉박하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이 협상을 올해 안에 끝내려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 2018년 7월 1일로 예정된 멕시코 대선 기간에 NAFTA 개정 협상이 '폭발적인' 정치 현안으로 변질하여 미국 측에 불리하게 전개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 아나 스완슨, '트럼프는 NAFTA에 대한 협박을 이행할 수 있는가?')
둘째, 트럼프 행정부 기능이 폭발 개연성이 높은 국내 문제로 거의 '혼란' 상태에 빠지고 있다. 최저치 39%로 떨어진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도, 특임 검사 뮬러가 속도를 내는 러시아 수사(Russia Probe), 백악관 웨스트 윙의 내부 권력 싸움과 트럼프 대통령을 만든 일등 공신 스티브 배넌의 전격적인 해임, 백악관과 의회 지도부 간(미치매코넬과 폴 라이언 하원 의장)의 감정적인 충돌과 갈등, 9월 말로 다가오는 정부 부채 한도 연장, 트럼프의 최우선 과제인 오마바케어 폐기 실패, 슈퍼리치만을 위한 조세 개혁 법안의 정체, 샬러츠빌 인종주의 세력들의 난동과 폭력사태에 대한 트럼프의 양비론적 발언,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 금지, 백인 우월주자인 애리조나 전 경찰청장 아파리오의 사면 등 수많은 사건이 트럼프의 행정 능력을 크게 마비시키고 있다.
다시 말하면, 백악관의 대외 정책이 노련한 행정부 관료나 전문가의 도움 없이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미국 우선주의적인 독선과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판단에 좌우된다는 뜻이다. 물론 자신의 골수 지지층을 겨냥한 발언이고 정책이지만, 이 같은 트럼프 행정부는 야당인 민주당뿐만 아니라 여당인 공화당과 심지어 군부에서도 비난을 받고 우려를 낳고 있다.
그렇다면 한미 FTA 개정 협상의 전망은 어떤가? 답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한국이 이번 협상에서 매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다고 본다. 최악의 상황인 기존 한미FTA의 폐지라는 극단적인 결과가 온다 해도 크게 손해날 게 없는 상황이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고, 손자는 '적을 알라'고 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자신도 잘 모르고 우리 한국은 전혀 이해 못 하고 있다. 반대로 이제 한국은 '우리 자신을 다시 알게 됐고' 동시에 '미국의 허점'도 제대로 파악하게 된 셈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은 이번 한미FTA 개정 협상에 '당당히 임하여' 좋은 결과를 맺을 기회를 가진 셈이다. 당장 협상하자고 조를 필요가 없고 협상이 재개되면 '한국 우선주의'를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