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동남부최대봉사단체 CPACS 김채원 대표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후원으로 기획취재한 것입니다.
애틀랜타(조지아주)=노창현특파원 newsroh@gmail.com
미 동남부 최대 도시 애틀랜타. 해마다 10월 초순이면 기념비적인 행진(行進)이 펼쳐진다. ‘티 워크’ 행사가 그것이다.
한인들을 비롯, 최소한 3천명 이상의 다민족이 참여하는 ‘TEA Walk(Together Empowering All)’는 아시안 커뮤니티의 권익 신장(伸張)을 위한 “함께 걷기” 행사로 미국 남부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티 워크는 다양한 인종의 공존을 경축하고 공동의 사회참여를 선포하며 애틀랜타 뷰포드 하이웨이상에서 2마일에 걸친 행진이 끝나면 각종 아시안 커뮤니티가 마련한 신나는 축하행사와 공연, 간식과 음악, 댄스를 즐기는 축제의 한 마당을 벌인다.
올해로 13회째인 티 워크를 주최하는 기관은 팬아시안커뮤니티센터(이하 CPACS)다. CPACS는 미남부에서 가장 오래되었을뿐 아니라 가장 규모가 크고 미 주류사회에서도 인정하는 한인봉사단체다.
1980년에 한인커뮤니티서비스 센터로 출발한 CPACS는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한인 등 아시안은 물론, 히스패닉과 난민들에 이르기까지 건강 및 사회복지 업무를 다양한 문화와 언어로 제공하고 이민자와 소수계가 겪는 여러가지 사회적 어려움을 보살펴 주고 있다.
김채원 대표는 CPACS 역사의 산 증인이다. 애틀랜타의 셸로포드로드에 있는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CPACS의 출발부터 물어보았다.
“처음엔 연합장로교회의 출석하던 의사들의 봉사프로그램으로 시작됐어요. 의사들이 돌아가며 이사장을 맡아 자비로 운영했지요. 그러다 본격적인 사회봉사 활동을 하기 위해 교회에서 나왔지만 라틴커뮤니티센터 공간을 빌려서 운영하는 등 역시 재정적인 어려움이 많았어요.”
간호사 출신인 김채원 대표는 의사인 남편 김선희 박사가 한인커뮤니티센터 이사장을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봉사센터와 인연을 맺었다.
“남편이 이사장으로 있을 때 사무직원 월급과 사무실비용으로 1천달러씩을 내놓고 있더라구요. 그런데 여직원이 출산으로 자리를 비우게 되어 비용도 절약할 겸 내가 대신 일하기 시작한 것이 이런 세월이 되었네요. (웃음) ”
개인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잠시 도움만 주려 했던 김 대표는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진정한 봉사란 무엇인가에 생각을 하게 됐단다.
“여기저기 사람을 만나고 도움도 청하다 히스패닉 봉사센터 같은 곳에서 정부 그랜트(보조금)를 지원받고 운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랜트 신청하는 방법부터 배워서 보조금도 받게 되었는데 처음엔 내 월급이 없었어요. 워낙 예산에 쪼들렸기 때문에 인건비를 책정할 수도 없었는데 봉사만 한다니까 그런 단체는 문을 닫아야하는거라고 하는거에요. 봉사를 앞세운 주먹구구식 운영을 하면 오히려 신뢰받지 못한다는 소리에 형식적으로라도 월급을 정하는 해프닝도 있었지요.”
한인커뮤니티센터가 팬아시안 커뮤니티 센터(CPACS)로 이름을 바꾼 것은 1997년이었다. 처음엔 한인사회를 돕는 봉사센터였지만 중국계 필리핀계 태국계 등 아시안커뮤니티들의 비중이 늘어나는 등 인종이 다양해지면서 위상(位相)에 걸맞는 이름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CPACS 웹사이트는 마치 유엔을 방불케 한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 네팔어 스페인어 베트남어 등 6개 언어로 서비스되고 있기 때문이다. CPACS 시설을 이용할 때 서비스되는 언어는 더욱 다양하다. 부탄, 버마, 네팔. 인도. 타갈로그어, 아이티 이민자들을 위한 프랑스어 등 15개 언어에 이른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사회 복지 이민 등 소셜서비스만 10개 부서로 나눠져 미국인들이 와서 보면 놀랍니다. 인종도 다양하고 원하는 서비스도 민족별로 달라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가령 한인들은 푸드스탬프 등 소셜서비스에 관심 많다면 라티노들은 아이들이 많아서 유스 프로그램에 대한 선호도가 높습니다. 요즘 증가추세인 난민들은 젊은 사람들이 많은데 직업을 찾아주는게 큰 문제입니다.”
CPACS는 2000년 도라빌에 첫 단독 건물을 만들어 입주했고 2010년엔 현재 위치에 아담한 사옥을 세울 수 있었다. 메인 오피스외에도 둘루스 오피스, 노크로스의 헬스센터, 덴탈서비스센터, 카운슬링 센터, 쉘터 등 한인들의 접근성이 좋은 지역들에 시설들이 위치하고 있다.
애틀랜타의 명소인 스톤마운틴 인근 스넬빌에는 2008년에 CPACS가 정부 그랜트를 지원받고 세운 한인노인아파트도 특별한 자랑거리다.
“지금은 직원들이 100명이 넘지만 당시엔 20명 정도였고 아무도 도와줄 분이 없어서 혼자서 돌아다녔어요. 공사장에 가서 주민공청회도 하고 5년씩 따라 다니고...갖은 고생끝에 아파트가 들어섰는데 당시 한 인종을 위한 아파트(53가구)로는 첫 모델이어서 화제를 모았습니다.”
CPACS에선 보험이 없거나 충분하지 않은 아시안 어메리칸들을 위해 어린이들을 위한 백신예방 프로그램인 'Vaccination for Children'을 비롯, 각 언어별 암지원 그룹인 'Asian Breast Care', 정신건강 상담기관 'RICE Center', 저소득층 환자들을 위한 무료진료소 'DOWA Clinic', 가정폭력으로 고통 받는 아시안 여성들과 어린이들에게 초점을 맞춘 최초의 지원센터인 'Hanna House' 등 다양한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CPACS의 혜택을 이용받는 숫자는 매달 평균 2,300명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지난 2015년엔 노크로스에 연방정부의 보조를 받아 저소득층 아시안들을 위한 병원을 오픈했다. 한인 종합클리닉 ‘코스모 종합병원’과 통합해, CPACS 코스모 병원’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 소득이 낮고 보험이 없거나 영어가 불편한 한인 등 지역사회의 소외계층에게 보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조지아주 44개 헬스센터 중 유일하게 아시안 대상 센터인 코스모병원은 한국의 지역 보건소와 비슷한 개념으로 현재 내과, 산부인과, 외과, 치과 전문의가 상주(常住)하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에서 운영하는 저소득층 의료서비스인 메디케이드가 있지만 운영체계는 주마다 다릅니다. 조지아주의 경우 65세이상 노인들과 18세이하 청소년, 임산부 장애인만 제공되는 등 서비스 폭이 너무나 좁아요. 사실 오바마 케어 이전만 해도 대부분 한인들이 의료보험이 없었거든요. 연방정부에서 컨트롤을 못하니까 특히 저소득 이민자들에겐 이러한 사회안전망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곳에선 전년도 세금보고서나 최근 석달치 은행 명세서 등을 지참해 일정액 이하의 소득 증명을 하면, 정부의 의료비 보조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말을 하는 의사와 직원들이 항상 있어 편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무료통역은 물론, 일정 거리에선 무료로 교통편도 제공하구요.”
CPACS의 운영자금은 줄잡아 30개가 넘는 정부 그랜트로 충당된다. 정부 그랜트는 받기도 힘들지만 사후 보고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 행정업무의 절반이 그랜트 관련 리포트를 작성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예산의 80%를 정부 그랜트로 채우고 있습니다. 연방정부 그랜트가 제일 많지만 조지아주와 카운티정부 등 로컬에서 지원하는 그랜트도 있어요. 이런 그랜트를 받으면 매달, 분기별, 그리고 2년에 한번 40장짜리 리포트도 제출해야 합니다. 지원하는 펀더들이 요구하는 것이 서로 다르기도 하고 이런 업무에 매달리는 시간이 너무 많아요. 히스패닉 커뮤니티 같은 곳은 까다로운 정부 그랜트보다는 기업과 개인의 기부금 비중이 아주 높아요. 그에 비하면 한인사회에서는 기업 차원의 도네이션이 미미한게 안타깝지요.”
김채원 대표는 지난 2012년 ‘에블린 G. 울맨(Evelyn G. Ullman) 재단'에서 수여하는 '혁신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울맨 재단은 김 대표가 오랜 기간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지역사회에 의미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 공적을 인정해 수백 명의 후보 가운데 올해의 시상자로 선정했다는 후문이다.
조용한 성품이지만 강단이라면 누구에도 뒤지지 않는다. CPACS에서 15년을 근무한 한 직원은 “‘채원 킴’ 하면 주류사회가 다 알아요. 맨땅에 헤딩한다는 말 있잖아요. 김 대표님은 아시안이기 때문에 주류사회에 얼굴을 자꾸 들이밀어야 한다고 말씀하세요. 끼워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쫒아다녀야 한다는거죠.”
미국 남부엔 여전히 아시안 등 소수계에 ‘오픈마인드’로 대하기보다는 자기들만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폐쇄적인 태도를 보이는 카운티가 많다. 아무리 미국을 잘 알고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해도 비백인들에게 보이지 않는 벽(壁)이 존재하는 것이다.
오랜 세월 주눅들지 않고 찾아다니며 시민으로서 소수계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는 김채원 대표의 시련이 얼마나 컸을지는 쉽게 짐작할 만 하다.
조지아는 미 전역에서 아시안의 증가속도가 4번째로 많은 주로 자리매김할 만큼 팽창속도(膨脹速度)가 엄청나다. 그런만큼 CPACS에 대한 한인사회의 자부심은 적지 않다. 한인이 창설하고 주도하는 봉사기관이 아시안과 다른 소수계와 난민들까지 아우르는 희망의 등불이 되었다는 것은 보이지 않게 한인사회의 위상강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CPACS는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와 시카고 한인교육문화마당집과 함께 앨라배마에서 대규모 연대 집회에 참석했다. 이민자권익과 노동자 권리, 투표권 및 공교육 등 미국내 민권 회복을 위한 노력에 함께 동참하는 행사였다.
1965년 앨라바마에서 셀마부터 몽고메리까지의 역사적인 투표권리 행진을 재현하며, 이민자권익과 공교육 수호의 메시지를 선명하게 과시했다. 당시 김채원 대표는 “동서부에 있는 최초, 최대, 최장수 아시안아메리칸 봉사단체로서 우리 커뮤니티를 대표하여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 향하는 행진의 정신을 계승하고 연대를 다지기위해 이 행사에 참석한 것은 무척 의미있는 일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올해 트럼프 정부 출범이후 반이민과 인종차별 등 ‘이민자의 나라’ 미국의 정체성을 흔들고 역사퇴행(歷史退行)으로 나아가는 현실에서 더더욱 연대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올해로 13년째 계속하는 CPACS의 티 워크 행사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티 워크는 2005년 창립 25주년을 앞두고 당시 이사였던 김정아교수(조지아스테이트 유니버시티 사회과학)가 축하 행사로 제안한 것이었다. CPACS 사옥이 있는 뷰포드 하이웨이 선상에 아시안 커뮤니티가 많이 있으니 함께 걷는 행사를 통해 아시안커뮤니티를 알리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200여명이 통일된 티셔츠를 입고 걷지 발런티어로 참여하고 샌드위치도 만들어 나눠 먹으며 하루를 보냈다. 이듬해부터는 참가인원이 500여명으로 늘었고 그다음해는 1천여명 등 크게 증가하는 등 뜨거운 참여열기 속에 오늘날 아시안 커뮤니티의 파워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명물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소수계의 권리 증진을 위해 필수적인 하나는 시민권을 따도록 독려(督勵)하는 것이다. CPACS는 30 여개 ESL/시민권반 교실을 15 개 장소에서 각각 운영하며 매년 1100 여명의 학생들을 교육시키고 있다.
특히 시민권 준비반은 2016 조지아테크니컬 칼리지 시스템 추계대회에서 ‘최다수 시민권 획득 학생상’ 및 ‘교육성취 종합 우수상’을 6년 연속 수상할만큼 거의 100% 합격률을 자랑할만큼 내실있는 교육으로 정평(定評)이 나 있다.
긴 역사만큼 근무하는 직원들도 10년이상 된 이들이 꽤 많다. 현재 CPACS에서 부회장을 맡고 있는 베트남계 부회장은 유소년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인연을 맺은 후 고교와 대학에서 발런티어를 하고 졸업후 파트타임 직원으로 시작한 이력을 갖고 있다.
김채원 대표는 “CPACS의 모토가 ‘피플 니드 피플’(사람에겐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이랍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니까요. 인종과 언어, 종교를 초월한 사랑의 손길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라고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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