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넥과의 긴 동거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송석춘 = 이민온 지 만 43년이 됐다. 강산이 네 번이나 변한 세월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한 곳에서 참으로 오래 살았다.

얼마 전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발생한 유혈 폭력 사태를 텔레비전에서 보았다. 남부군의 로버트 리 장군 동상 철거가 유혈 사태의 발단이라고 한다. 그들이 ‘피로 땅을 적신다(Blood & Soil)’라고 외치는 구호가 섬뜩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폭동후 텔레비전에 나와 양쪽 모두 좋은 사람들이라고 특유의 모습으로 말하는 것을 보고 노동자인 이 늙은이가 듣기에도 너무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6.25때 미공군부대 하우스 보이부터 긴 군대생활을 하면서 어쩌다 미군들과 가까이 군대생활을 하였으니 바보가 아닌 이상 그들의 백인 우월감이 어느 정도인 지 잘 알면서도 이민의 길을 선택했다. 미국 땅은 열심히 일하면 남의 눈치 안보고 살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이 있어서였다.

취업된 공장은 100여년 동안 유색인종으로 그 공장에서 일한 사람이 내가 유일할 정도로 백인 사업체였다. 그러나 나는 ‘진인사 대천명’이란 고사성어를 믿고 열심히 일했다.

이민 온 지 6년이 되는 해에 잘 알지도 못하는 백인 노인이 내가 전문적으로 하는 자동차 정비에 꼭 필요한 장비를 가져다 주고는 “너 스스로 정비공장을 해 보라”고 했다. 장비를 값으로 따지면 10여만불이 가까웠다. 나는 몇 개월을 망설이다가 남의 땅을 빌려 공장을 지어 1980년 6월 6일에 문을 열었다.

레드 넥(Red-neck 남부의 가난한 백인 노동자)인 직장 동료들은 자신들과 함께 일하던 유색인종이 공장을 차려 나간다고 하자 심문 아닌 심문을 해댔다. 처음 공장에서 일할 때만 해도 똥차도 없어 걸어서 출퇴근 하던 내가 무슨 돈으로 값비싼 장비들을 구입했느냐는 것이었다.

이민생활을 하면서 직장동료, 고객, 그리고 이웃 중에 종종 레드 넥드 인상을 주는 이들을 만나 볼 수 있었다. 또 오래전에는 이번 샬러츠빌 폭력 사태를 연상시키는 이들을 직접 볼 기회도 있었다.

당시 나는 내 공장 고객인 백인 노인과 같이 올랜도에서 두 시간 이상을 운전하고 가서 주말에 백인들만 모여서 전쟁놀이 하는 곳에 가본 적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열심히 일하여 낸 세금으로 일도 하지 않고 놀고 먹는 이들에게 그 세금이 쓰인다고 불만을 토로하며 고함을 쳐댔다. 이번에 텔레비전을 볼 때 느꼈던 것 처럼 그들의 모습은 섬뜩했다.

내가 차린 조그마한 공장에서 나는 최선을 다해 일했다. 레드넥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무엇보다도 아침에 공장문을 열고 저녁에 닫을 때마다 6.25때 지리산 끝자락 어느 깊은 산속에서 어머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기도 한 탓이다.

“지로(석춘)야, 세상 어디를 가든 남이 주는 밥에는 가시가 섞여 있는 법이다”

어머님 말씀이 박힌 탓인 지 나는 빠듯하게 생활해 나가면서도 다섯 아이들 무료급식조차 신청하지 않았다. 그리고 공장 청소도 열심히 했고, 집 마당 잔디나 꽃밭도 신경써서 관리하는 등 정성을 다 했다고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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