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청론] 이제 트럼프의 선택은 대화뿐이다
(마이애미=코리아위클리) 김현철 기자 = 북한이 새 유엔제재 결의 4일 후인 9월15일 새벽, 지난 8월29일 북태평양에 첫 발사했을 때와 같이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일본 홋카이도 상공을 거쳐 화성-12형을, 이번에는 이동발사대에서 같은 방향으로 직접 발사, 최대고도 770km, 비행거리 3,700km(북 - 괌 거리 3,400km)를 날아 태평양에 낙하했다.
북한은 이번 발사 전 24시간 동안, 은폐, 기만 등으로 미국의 첩보위성을 따돌리는 대신 일부러 발사준비 과정을 노출시켜 백악관을 강하게 압박하는 한편, 전번에 이어 이번에도 미사일을 일본 상공을 통과하도록 발사, 유사시 미군 대신 일본군 한반도 진출을 꿈꾸는 일본 아베정부도 동시에 압박하는 인질정책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미사일 발사가 새 유엔제재에 대한 보복임을 밝힌(9월16일) 김정은은 미국이 대북적대시정책을 끝내 포기하지 않겠다면 북한은 전쟁준비가 끝났으니 전쟁할 테면 하자는 자세이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계속 딴청을 하면서 미국 주도의 유엔 안보리를 통해 9월15일 긴급회의를 열고, 북한을 규탄하는 언론성명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북한을 옥죄는 수단과 방법이 사실상 바닥이 나고 있는 실정인데다, 요격이 불가능한 미사일의 성능과 횟수가 계속 강화되는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은 앞으로 트럼프가 아무런 효과 없는 유엔제재 카드 대신 대화 카드를 선호할 수 밖에 없는 구석으로 몰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영국의 BBC는 이날 ‘이제 세계의 힘의 균형이 분열됐다’(Split of Power)며, 오늘 날 북한의 비대칭군사력을 통한 높아진 위상을 보도했다.
일본에 있는 사드, SMP-3 등 미일 군 최신요격체계 9기는 이번에도 너무 높이 날아 오른 북한 미사일 요격을 포기했다. 이렇게 미일군의 북한 미사일요격체계가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이 계속 노출될 경우, 앞으로 미국의 무기시장은 한산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미사일 발사 뒷날,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심판의 날"이란 표현까지 쓰면서 대북 군사옵션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외교적 옵션이 모두 고갈됐느냐"는 기자 질문에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심판의 날"이란 표현까지 나왔다면 ‘그렇지 않다’가 아닌 ‘그렇다’가 정답일 텐데 역시 트럼프는 핵강국인 북한과의 군사대결만은 피하고 싶은 것이다. 즉 가끔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하는 제스처나 트럼프, 백악관 안보실장 등의 대북 강경발언 등은 대북대화 시작 전까지 미국이 할 수 있는 최대의 허세나 객기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9월17일 트럼프 대통령이 걸어 온 전화통화에서, 최근 북한의 계속되는 핵,미사일 도발에 대응, 더 강력하고 실효적인 제재와 압박을 가해 나가기로 했단다. 이 역시 장사꾼 출신 트럼프가 시간이 허용하는 한, 미국의 세계 최대 호구인 한국을 통한 무기장사로 실속을 챙기자는 속셈에 속아 문재인이 화답한 것이다.
허나,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으로서는 이럴 때 과거 영혼이 없는 이명박근혜가 했던 것처럼 미국이 하자는 대로 한없이 끌려 다닐 게 아니라, 유엔을 핑계 삼아 앞으로의 대북대응은 유엔에 맡기자는 정도의 융통성은 발휘했어야 했다. 그게 바로 후보시절에 “미국에 NO! 할 줄 아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던 약속을 반이라도 지키고자 하는 흉내 정도가 될 것이다.
특히, 북한이 트럼프의 주장인 ‘제재와 대화’를 똑같이 들고 나오는 문 대통령의 대화요청에 응하지 않고 계속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다 해서 바로 휙 돌아설 게 아니라 끈질기게 남북 동족간의 대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자세가 올바른 외교 자세다. 북한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며 지난 반세기 이상을 끈질기게 미국에 요구, 그 열매가 맺힐 날이 머지않았음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가 불안해 보이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 더이상 미국에 끌려가지 말아야
문재인 정부의 최대 외교목표는, 북한의 ‘체제유지’ 의도를 정확히 파악.확인하고 이를 인정하고 수용해서 남북한 평화공존을 유도해 나아가는 것이다. 계속 미국에 얽매어 대북정책을 끌어간다면 하늘처럼 믿고 있는 미국이 어느날 갑자기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경우 북한의 무력적화통일을 막을 방법이 있을까? 북한의 눈에 한국은 미국의 보호 없이는 존재할 수없는 나라로 비쳐서는 희망이 없다는 뜻이다.
또 이명박근혜를 거쳐 지금 한국정부의 무능으로 중국에게 빼앗긴 북미 간 매개 역할을, 한반도 문제 당사자인 한국이 되찾아서 북미 간 대화로 연결시키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동안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임에도 수치스런 꼭두각시로 만족해야 했던 북미중일 중심의 코리아패싱(한국 소외)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외교의 최고위직이라는 외교 담당 국무위원 양제츠 전 주미대사가 11월초 트럼프의 중국방문과 관련하여 사전 의제 협의, 남중국해문제, 미중 양국통상문제, 세컨더리 보이콧 문제 등에 대한 협의를 이유로9월13일부터 사흘간 미국을 방문한다. 하지만 실내용은 트럼프가 가장 다급한 의제로 꼽는 북핵 관련 해법 모색으로 알려져 있다. 양제츠의 북핵 해법 모색은 분명히 우리 강경화 외교장관의 몫이어야 했다. 이 또한 코리아패싱의 한 예에 불과한 것이니 안타까울 뿐이다.
한편, 트럼프의 오랜 친구이자 유일한 책략가로 알려진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배넌은 지금도 트럼프 대통령과 2~3일마다 1시간 정도씩 대북문제 등 각종 국정난제를 놓고 은밀히 통화, 백악관에 재직할 때와 똑같이 트럼프를 적극 돕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백악관을 떠나기 직전, ‘대북전략의 비밀’을 온라인매체 ‘아메리칸프로스팩트’(2017년8월16일)와의 대담에서 밝힌 것을 다시 상기해 보자.
‘서울 인구 1천만 명이 재래식 무기 공격으로 전쟁 개시 30분 만에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보이지 않는 한 북핵에 대처할 군사적 해결법은 없다. 그런 건 잊어라, 주한미군 철수와 북한 핵동결문제를 맞바꾸는 외교협상을 트럼프 대통령이 고려해야 할 때가 되었다‘.
즉 지금 미국은 대북핵대결과 대중경제전쟁을 동시에 치를 능력이 없으니 북한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는 가장 합리적인 구상이다. 베넌은 북핵으로 이제 미국의 안보는 파탄이 났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제 북미 핵대결을 끝내고 미중 경제전쟁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는 배넌의 전략구상에, 북핵을 넘어설 힘이 미국에게는 없다는 사실을 아는 트럼프로서는 오랫동안 전산기를 두들겨 본 결과, 그의 구상이 최상책임을 알았을 것이다.
경솔함, 막말 등 결점을 지닌 트럼프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가 정신이상자가 아닌 한 북핵을 막을 능력이 전무한 승산 없는 전쟁을 치르겠는가?
한국의 극우 보수 야당인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한국에 배치해 달라며 방미한 미국의 전술핵무기 실체를 알면 크게 당황스러워 할 것이다. 미국 <원자과학자회보(BAS)> 2013년 10월 25일자를 보면 미국이 거의 반세기 전(1968년)에 만든, 작전수명 7년인 미군의 전술핵 B61 열핵폭탄(수소탄) 3155발 중 너무 노후화돼서 모두 폐기하고 2012년 현재 겨우 435발만 남아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조차도 내장된 6000여 개 부품 중 핵심부품들을 작전수명 7년(2019)이 되기 전에 새 것으로 바꿔 주어야 49년이나 된 B61이 발사시 그나마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미국에는 현재 북미 전쟁이 터질 경우 전략무기 이외에 전술핵무기는 없다는 것이다. 최근 미 국방부가 한국 군부의 요청인 전술핵 배치 불가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미 국방부는 B61의 작전수명연장사업에 필요한 790억 달러를 예산으로 책정해달라고 연방의회에 요청했지만 예산문제로 거부당할 수 밖에 없었다.
배넌은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대담(9월14일)에서, ‘미국과 중국이 북미핵대결을 끝낼 해결책을 찾아내기를 바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11월 방중이 그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1월초, 아시아를 방문할 때 베넌의 건설적이고 합리적인 구상을 실천하느냐, 아니면 전쟁의 길로 들어서느냐의 여부가 결정되겠지만, 전쟁을 선택할 처지가 못 되는 미국으로서 선택할 길은 이제 하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