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생활이야기]
(탬파=코리아위클리) 신동주 = 가난하게 살고 있는 한 노인이 있었다. 사람들이 그 노인에게 "당신의 평생의 소원이 무엇이요?" 라고 물으면 노인은 매번 "아주 고급스런 외투를 갖는 것이요" 라고 대답했다.
그는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았다. 드디어 그는 꿈에 그리던 그 외투를 샀다. 노인은 아무리 보아도 멋있기만 한 외투를 보며 너무 행복해 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룬 노인의 가슴엔 큰 기쁨이 가득 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외투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만 강도를 만나서 외투를 강탈당했다. 그 노인은 절망했다. 그날 이후 노인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러시아의 단편소설 '외투'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소설에 나오는 노인은 단순히 고급 외투를 잃은 것이 아니라 외투를 갖겠다는 목표를 잃어버린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목표를 세우는 일이다. 그것이 사업에 성공하는 것일 수도 있고, 자녀를 잘 키우는 것이기도 하고, 결혼을 잘 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자신이 살아가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당연한 일들에 구체적으로 목표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낯설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소망하는 것을 향해 지속적인 노력을 한다.
그런데 종종 그 목표를 놓쳐 버리는 일이 생긴다. 나이가 들었다는 핑계로 지금 시작해서 언제 잘할 수 있겠느냐며 미리 포기하거나, 잘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는 자기 비하 등이 바로 목표조차 못 갖게 하는 방해물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목표가 없으면 무기력 해 진다. 뚜렷한 목표와 꿈이 있는 사람은 활기차고 밝은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허탈함과 공허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나는 오래전에 알고 지내던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밝고 자신있게 보이던 예전과는 달리 태도가 많이 변해 있었다. 심지어 자신의 삶에 대해 자꾸 숨기려는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피폐해진 모습이 분명 목표가 없는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음이 틀림 없었다.
친구는 아침이면 일어나 밥을 먹고 습관적으로 일터에 간다. 이런저런 일들로 시달리다가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잔다. 이렇게 무의미한 생활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내일도 똑같은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시간이라는 올가미에 몸을 가두고 살아가는 것이다. 친구는 이러한 삶에 아무런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자기 발전과 자존감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은 목표를 세우고, 이것을 위해 정성을 쏟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마음 속에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그것에 몰입하면 자신 안에 감춰져 있던 놀라운 능력을 찾아낼 수도 있다.
당장 할 수 없는 일이라도 시일을 두고 조금씩 하다보면 언젠가는 큰 밑그림이 보이게 된다. 중요한 것은 '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100세 시대를 맞으면서 60 초반에 은퇴를 해도 30년이나 되는 긴 시간을 살아야 한다. 주변의 60대 혹은 70대 노인들을 보면 손자하고 놀아주고 골프나 치러 다니기엔 너무 젊어 보인다. 또 스스로 노인이라며 시간을 대충 보내고 있는 것이 보기에 안타깝다.
누군가는 행복이 '소유'가 아니라 '존재'에 있다고 말했다. 자존감이 충만해 질때 진정 행복할 수 있다는 고백은 바로 행복이 '존재'에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일하기에 바빠 다른 것을 배운다거나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볼 수 없었다면 다시 목표를 세우고 정진해 보는 것이 어떨까.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작은 꿈을 갖고 구체적인 목표를 향해 살았을 때는 바빠도 아프지 않았고 매순간이 행복했지. 그런데 그 꿈들을 놓아 버리니까 삶이 나를 이렇게 패인이 되게 했지"
친구는 이제부터라도 기운을 차리고 꿈을 다시 주워모아 열심히 살고 싶다고 했다. 10년쯤 후에 다시 만나면 적어도 목표의 반에 반이라도 이뤄놓겠다며 슬며시 웃는 친구의 얼굴에서 옛날의 모습이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