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워싱턴=코리아위클리) 박영철(전 원광대 교수) = “한국 벤처의 새로운 아이콘을 찾아 모시려 했는데, 답을 찾지 못했다.”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5일 자진 사퇴를 밝힌 후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최근에 불거진 ‘인사논란’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면서 한 말이다.
지난 8월 24일 문재인 대통령이 새로 신설된 중소벤처기업부의 초대 장관에 박성진 포항공대 교수를 내정하자,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박성진 교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공학자이자 20년 전부터 대기업, 벤처기업에서 현장경험을 쌓아온 학자입니다. 중소벤처기업 중심의 혁신적이고 새로운 경제 생태계를 만들어 나갈 것으로 기대합니다”며 극찬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박성진 후보 내정 발표 그 다음 날, 청와대는 박 후보가 진화론을 부정하는 기독교 근본주의 단체인 한국창조과학회 이사로 장기간 활동해 온 사실과 당일 창조과학회의 이사직을 사임했다고 뒤늦게 발표하면서 “장관 후보자 검증에는 종교 활동과 관련된 부분이 안 들어가는 만큼 이 단체의 이사로 활동한 사실을 미리 알지 못했다”고 궁색한 변명을 했다.
그 이후 박성진 후보에 대한 평가는 급속히 부정적으로 변해 가며 ‘촛불 시민’과 학계, 특히 공학계는 청와대의 지명 철회나 후보의 자진 사퇴를 강력히 요구하기 시작했다. 한국 진화론의 대가인 장대익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창조과학과 같은 반지성적 세계관을 신봉하고 실천하는 이들이 버젓이 높은 자리로 올라가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실은 지성에 대한 모욕”이라고 힐난했다. 위와 같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박성진 후보는 벤처기업을 살릴 ‘아이콘’이며 ‘생활보수’로서 장관 자질과 역량에 모자람이 없다”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강력히 요구해서 관철했다.
그러나 박 후보의 국회 인사청문회의 결과는 지난 15일 결국 자진 사퇴로 그 막을 내리게 됐다. 박 후보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여야 어느 쪽의 지지도 얻지 못하고, 세 야당이 주도한 ‘부적격’ 청문보고서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묵인하에 국회 전체회의에서 채택되는 수모를 겪었다.
왜 이 같은 참담한 결과가 발생했는가? 언론에 따르면 박 후보가 인사청문회에서 명쾌히 해명해야 할 쟁점이 적어도 6개가 넘는데도 그중 하나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부적격’ 판단을 받았다고 한다. 문제가 된 쟁점 6개는 창조과학회 활동, 역사 인식, 직무 적정성, 직무 수행 능력, 정책 기조 그리고 도덕성과 윤리 의식 등이다.
이 중 박 후보가 진화론을 부정하는 ‘창조과학’ 신봉자라는 사실 하나만을 좀 더 짚어보자. 인사청문회 중에 가장 논란이 된 쟁점은 단연코 박 후보의 창조과학회 활동과 지구 나이에 대한 오락가락한, ‘횡설수설’에 가까운 답변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창조과학을 반과학 또는 유사과학이라고 하는데, 박 후보는 과학계가 45억4000년으로 추정하는 지구의 나이를 얼마라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신앙적으로 6000년이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다음날 어느 종편 뉴스는 박성진 후보의 “신앙적으로 지구의 나이가 6000년이다”라는 답변이 맞는다면, 신석기 시대 일부가 사라지고, 기원전 3000년 전에 시작한 고대 이집트 문명은 공룡과 동시대가 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언론과 학계의 냉랭한 반응은 인사청문회 보고서에 명백히 기록된 “성경적 창조론으로 무장한 신자의 장관 업무 수행에 있어
종교적 중립성에 의문이 제기된다”라는 부적격 사유를 극명하게 반영한다고 보아야 한다.
글을 마치면서, 이번 창조과학회의 적극적인 활동가인 박성진 후보의 낙마가 시사하는 중요한 교훈 2개를 지적하고 싶다. 하나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 원칙에 따라 특이한 종교관을 가진 경우는 정부의 고위 관직에 나가는 것을 삼가는 것이 좋겠다.
또 하나는 큰 구멍이 뚫린 청와대의 인사 시스템을 보완 수정해야 한다. 특히 청와대 비서 간에 혹시라도 지역이나 대학, 또는 전공을 바탕으로 한 ‘마피아 서클’이 있는지 수사하여 조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인사추천위원회’ 설립을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