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5일 금요일 저녁 8시에 파리에서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있었다.
14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강연에는 6명의 질문자가 있었다. 질문은 '관계의 어려움'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것이었다.
법륜 스님은 강연에 앞서 즉문즉설에 대해 설명했다.
즉문즉설은 책에서 읽은 이야기도 아닌, 남의 이야기도 아닌,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여기 나의 이야기에 대한 의문과 고민을 묻는 자리라고했다.
법륜스님은 "지금, 여기 내가 깨어있기 위한 것으로 즉문즉답과는 다르다. 즉문즉답은 답이 있는 것을 질문하고 답을 찾는 것이지만 즉문즉설은 대화를 통해 질문의 해답을 질문자 스스로가 찾기 위한 것"이라고 그 취지를 설명했다.
또한 그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정답은 없다. 자기 좋은 대로 살면 된다. 나 좋은 대로 사는데 괴롭다. 이것이 문제이다. 자기 원하는 대로 사는데 왜 결과가 좋지 않은 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실마리가 잡힌다. 이것이 즉문즉설로 질문자와 청중들이 함께 대화를 통해 고통이 무엇에서 오는 지를 알고, 해법을 찾아 지금, 여기서 행복 하게 살 수 있다는 깨달음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하고는 질문을 받았다.
이날 오고간 내용들을 질문답 식으로 정리한다.
프랑스 유학생으로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않아 부모님 지원 없이 파트타임을 일을 하면서 유학비용을 벌고 있다. 일은 어렵고 학위를 받아 무슨 소용이 있나 싶고, 정토회라도 들어가고 싶다.
도피가 아닌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을 때 정토회에 들어와야한다.
부모와의 갈등에 대해서도, 18세 미만은 미성년으로 부모가 자녀를 책임져야하고 자녀는 부모를 따라야 한다. 성년이 되면 자기 결정권이란 권리가 생기는 나이로 그만큼 스스로를 책임져야한다.
성년이 되어서도 부모로부터 독립을 못하면 간섭을 받게 된다. 한국 부모는 자식에 대해 간섭이 심하다. 자식의 입장에선 부모님의 사랑이니 당연히 받기만 하고 간섭은 하지 말라고 하면 갈등은 사라지지 않는다.
가족 간에서, 사회 안에서의 갈등 등 관계에 대한 어려움이 있다. 참기 어렵고 화가 날 때도 많다. 어떻게 해야하나?
나만 참는 것 같아 나도 이제 화를 내고 싶으면 화를 내라. 그 화가 어떤 화살로 올지 감당할 수 있으면 하면 된다. 화살을 받기 싫으면 참으면 된다. 무조건 참는다가 아니라 화를 참을 때 좋은 것이 있기에 참는 것뿐이다. 화를 내서 좋은 것이 있다면 화내면 된다. 절제는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내게 이익인가에 따라 결정하면 된다.
법륜스님은 어떻게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나?
구체적인 그림은 세우지 않았지만 세상을 위해 의미 있는 삶을 살겠다하고 오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학창시절에 의미 있는 삶에 대한 이상은 아주 중요하다. 그 이상을 잊지 않고 내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내가 하는 일 하나하나에 충실했다.
그 한사람, 그 한 일이 구체적인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않은 자리로 이어지는 통로가 되고 있다.
하나의 민들레 홀씨가 세상을 노랗게 물들이듯이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며 지금, 여기에 충실하면 된다.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 언제나 사람도 일도 처음처럼 대하고 지금 여기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석사과정이 끝나 취업 준비를 해야 하지만 자꾸만 게을러지고, 무엇을 해도 즐거운 마음이생기지 않아 자신에게 실망하고 있다.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자기를 현실보다 높게 평가해서 자신을 비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 자신 자신을 해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고, 자기가 남을 해치는 것은 나쁜 사람이다.
일을 하고 싶으면 내일이라도 슈퍼마켓에 가서 일을 하라. 자기한테 실망을 한다는 것은 자기를 너무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자기의 모습을 너무 높게 그려놓으니 현실에 있는 자기가 한심스럽게 보여 실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자기가 만든 환상을 현실의 자기에 맞추려 노력하면 죽을 때까지 만족할 수 없다. 환상의 자기를 버려야 한다. 현실의 나는 훌륭하고 건강한 사람으로 지금 그대로 소중한 사람이다. 신체가 건강하고, 석사까지 공부했고, 세계인들이 가보고 싶어 하는 프랑스에 사는 것만 해도 재산이다. 난민들이 극한의 환경을 극복하면서도 프랑스에 오려하지 않는가.
지금 대학에 가려고 공부하는 학생들은 공부를 끝낸 것을 얼마나 부러워하겠느냐, 지금 여기서 공부를 끝내고 일을 찾으려 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큰 재산을 가진 것으로 현실의 나를 그대로 바라보면 된다. 자신이 그린 그림에 맞추어 자신을 작게 보고 있으니 괴로운 것이다. 지금, 여기, 자신에게 깨어있지 않은 것이다. 우리 존재 자체는 지금 이대로 소중한 존재이다. 지금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 부모님은 정성을 다했고, 본인은 오랜 시간을 공부하며 노력해 학위까지 땄다. 내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나와 많은 사람들의 얼마의 노고가 들어갔는지,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은 소중한 존재이다. 함부로 팽개친다는 것은 자신, 부모, 사회에 대한 배신이다.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나고, 뭘 하겠다 하고 못 하는 게 뭐 그리 대수인가. 안 해도 되는 일이니까 안하는 것이다. 지금 아무 지장이 없기에 그런 것이다. 억지로 하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자기가 목표로 세운 기준에서 보면 못 미치지만 아무 문제없다.
내일부터 물건배달부터 시작하고, 일을 하다보면 다른 자리로 옮겨갈 수 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일을 시작해야 다른 일로 연결이 되어 온다. 생존이 먼저이다. 생존을 위해서 일을 하고,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면 노동효율이 높은 쪽으로 이동할 기회가 온다. 전공을 살려 재능이 필요한 곳으로 갈 수 있고, 자기 재능이 아니면 더 효율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다.
그것도 아니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이 선택은 놀이와 같은 것으로 수입이 보장되지 않지만, 수입에 대한 계산을 하면 안 된다. 취미삼아 하는 것이기에 돈에 대한 계산을 하면 안 되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산다면 좋은 일이지만, 수입이 없어 못하겠으면, 잘 하는 일을 하면서, 하고 싶은 건 취미로 하면 된다.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이 재능을 알아주면 재능을 살려서 일하고, 또 재능을 몰라주면 어떤가. 내가 한포기 풀처럼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하면,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를 높게 평가하고 그 평가만큼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이 문제가 되어 실망을 하게 되고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게 된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닌 줄 알면 이 세상에서 뭐든 할 수 있다.
관점을 조금만 바꾸어라. 우리는 소중한 존재이다. 우리 스스로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오늘 하루는 단순한 하루가 아니다. 오늘의 하루는 태어나 여기까지 쌓아온 경험의 하루다. 내일의 하루는 오늘의 하루가 쌓인 하루다. 인생살이의 매일은 수학적인 하루하고 다르다.
법륜스님은 질문자와의 즉문즉설을 마치고 참석자들에게 결론의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첫째 자기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두 번째는 자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과는 반대로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한다. 인생을 환상으로, 과대망상으로 살면 안 된다. 사람은 길가의 풀 한 포기 같은 존재로 알고,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가지지 않고 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며 살면, 입가에 미소를 띠며 행복하게 살아 갈수 있다. 행복이란 신기루를 쫓다보면 죽을 때까지 행복은 누려보지 못하고 괴로워하다 생을 마치게 된다. 행복은 언제인가 내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 내가 행복을 누리고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렇게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며 강연을 마쳤다.
강연이 끝난 후에는 법륜스님의 저서 책 사인회가 이어졌다.
【프랑스(파리)=한위클리】조미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