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경제 협력발전과 한국
김원일(모스크바대 정치학 박사)
러시아는 2012년 시작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집권 2기에 극동개발부를 신설하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담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하는 등 이른바 신동방정책을 장기적인 국가 발전 방향으로 설정하고 열정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 있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미국, 서방과의 갈등 국면과 계속되는 경제제재의 영향은 러시아로 하여금 중국 북한 등과의 협력관계 발전에 가속도를 붙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북한과 그 동안 전통적인 우호 관계였던 중국과 러시아는 현재 대북 정치, 경제 관계에서 차이가 많이 나는 입장에 놓여 있다. 중국은 북한의 계속된 핵개발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고 있진 않지만 여전히 국제무대에서 정치적인 후원자 역할을 맡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북한의 거의 유일한 무역 상대국이고 북한 투자 외자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는 구소련이 무너지고 대 한반도 정책이 한국 중심으로 급선회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과는 정치·경제 관계가 수교 이후 괄목할 정도로 향상되었지만 북한과는 그동안 형식적인 외교 관계를 갖는데 그치고 있었다. 북·러 양국의 경제관계도 무역 거래량에서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율이 1% 미만일 정도로 거의 무시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북한과의 관계 단절은 러시아 입장에서는 동북아 지역에서의 영향력 상실로 이어졌다.
지금 러시아는 동북아 지역에서의 세력 균형과 러시아 극동 지역의 경제 개발을 위해서 북한의 가치를 다시 평가하고 이를 활용해야 한다는 지정학적 결론에 도달해 있다. 이러한 러시아의 입장은 “북한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북·러 양국의 정치 관계 및 통상 관계 협력의 심화는 양국 국민의 이익과 지역 안보, 안정의 강화에 부합한다”라는 푸틴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러시아는 2000년대 초부터 남·북·러가 함께 참여하는 대규모 합작사업들에 대해 깊은 관심과 추진 의사를 계속해서 밝혀 왔다. 하지만 이러한 협력사업의 실제적인 수행은 남북한 양국 내부의 정치적 상황 변화와 남북 관계의 불안정성 때문에 그 동안 많은 장애를 겪어왔다. 특히 2010년 천암함 사태 이후에 발표된 한국의 5·24조치와 북한의 핵실험 등에 기인한 한반도의 긴장 상태가 장기화되면서 남·북·러 협력사업들은 답보 상태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중국에 대한 정치·경제적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것을 스스로 잘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가능한 한 이를 줄여야 할 정책적 필요가 있었다. 남북 관계가 막혀 있는 현 상태에서 중국 외에 주변국가 중에서 또 다른 정치·경제적 협력 파트너를 만들어내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한편 러시아 입장에서는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에서 강한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견제의 필요성이 컸다. 이는 러시아 당국자가 북한 철도 현대화 사업의 명칭을 ‘포베다(승리)’라고 명명한 이유를 “북한에서 이 사업을 따내기 위한 국가들 간의 경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데서도 잘 드러난다.
아울러 러시아는 대북 관계 강화를 통해서 미국, 서방과 한국에 자신의 존재감을 정치적으로 과시하려 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북·러 접경 지역 개발은 유라시아 지역과 한반도를 연결해주는 운송, 물류기지로서의 사업성이 아주 뛰어나다. 그리고 북한 철도 현대화 사업비를 대신하게 될 북한의 광물자원들(특히 희토류)의 경제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논점은 러시아가 북한과의 경제협력사업을 시작하면 사업이 가지는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한국도 추후 참여를 요청해올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최근 한국에서 나진-하산 철도와 운송을 총괄하는 북·러 간 합작회사인 ‘나선콘트란스’의 러시아측 지분에 한국 기업이 참여하는 논의를 하는 것 등으로 미뤄 어느 정도 타당성을 가진 분석으로 볼 수 있다.
한국 경제에서 미국 일본 등 이른바 해양세력의 비중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고 반면에 중국 러시아 등 대륙 세력의 비중은 이미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그 동안 한국 정부는 유라시아 대륙으로의 적극적 진출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지고 장기적 국가전략으로 추진해 오고 있다. 이는 오늘에 이르러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정책으로 다시 확인되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과의 연결은 한국 경제 재도약의 발판을 만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과제이다.
러시아는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지탄과 북한 정권의 제반 문제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국의 국익을 우선시하여 대북 관계를 꾸준히 다져나가는 지극히 실용적인 국가관계 수립의 원칙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혹시 한국이 북한 정권의 문제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상호 이익이 될 수 있는 대북 경제협력 분야와 그 시기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남·북·러 관계에서 한국이 직접 정책과 사업을 개발하고 주도적으로 북한과 러시아의 참여를 견인해 나가야 할 때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남·북·러 모두에게 큰 의미를 가지는 중요 사업의 주도권을 러시아가 북한과 함께 행사하고 있다. 급기야 러시아가 한국의 사업 참여를 견인하려는 상황에 이르렀다면 우리 입장에서는 대러시아 관계와 동북아 정책 그리고 대북한 관계와 통일정책에 대해서 다시 검토해 볼 부분은 없는지 성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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