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인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77주년이 되는 해다
빅토르 최가 소비에트 시절 음악을 통해 러시아 인들의 대중영웅이 됐다면 김병화 선생은 콜호츠에서 한인 특유의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벼농사를 성공시켜 노동 영웅으로 추앙 받고 있다. 이런 소련의 노동영웅 김병화 선생을 기념하는 사진전이 11월 27일 주러 한국문화원 2층에서 열렸다.
1937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김병화 선생을 비롯한 한인들에게 새로운 정착지의 상황은 막막했다. 한인들은 굶주림·궁핍 그리고 죽음과 싸워야 하는 힘든 생활에 직면했다. 대부분의 한인들은 추위를 피하기 위해 토굴이나 창고·마굿간 등을 개조하거나 갈대로 움막집을 짓고 겨울을 나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풍토의 한계에 굴하지 않았다. 그들은 기적을 일으켰다. 황무지를 옥토로 바꾼 것이다. 이번에 전시된 사진들은 김병화 선생의 업적을 중심으로 삶에 대한 일대기를 담고 있다. 특히 우즈베키스탄 콜호즈 농장을 중심으로 농장 근로자들의 생활상이 잘 반영돼 있다. 또한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니키타 흐루쇼프와 브레즈네프가 고려인 콜호츠 농장을 방문했을 때의 사진등이 전시돼 있다.
고난을 희망으로 극복한 고려인들이 사진을 통해 당시의 모습을 증언하는 셈이다. 그의 손자인 로베르트 김이 설립한 김병화 재단에서 고려인 150주년 기념사업 및 '문화 연대-민족 연대' 사업 일환으로 추진됐으며 지난 3월 열린 '리키 라시(러시아의 얼굴들)를 이은 두 번째 사진전이다.
로베르트 김은 김병화 재단 이사장은 “콜호츠에서 조부의 중심이 돼 고려인들과 함께 1946~50년 시기에는 1헥타르 당 4~5톤의 쌀을 생산해 냈고, 일부 작업반들은 8톤까지 생산하면서 농업적 성과와 김병화의 지도력을 높이 평가한 소비에트 당국이 1948년 4월28일 김병화에게 사회주의 노력영웅의 칭호를 수여했다”며 “이러한 할아버지의탁월한 농업적 조직능력과 지도력에 힘입어 콜호즈가 계속 발전해 전 소비에트 지역에 귀감이 됐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1951년 8월 31일 콜호즈 건설과 목화 및 벼 수확고에 따른 결과로 할아버지는 레닌훈장과 ‘낫과 망치’ 금메달을 받았다”며 “강제 이주에 좌절하지 않고 시대를 이끄는 선구자셨다”고 회상했다.
개회식에 초청받고 참석한 김원일 민주평통 모스크바협의회장은 “ 김병화선생님의 존함은 벌써 오래전부터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뜻깊은 행사에 초대받아 기쁘게 생각한다. 우즈베키스탄에서 김병화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고려인지도자들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적을 만들어 내었듯이 새로운 삶의 터전인 러시아에서도 우리 고려인동포들의 기적이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감사의 말을 대신했다.
김병화 선생은 1956년에 소련공산당 기관지인 프라브다지에 소개되면서 소련 연방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그에 따르면 1957년 북극성 콜호즈는 사회주의 이중노력영웅을 포함해 총 26명의 노력영웅(25명이 한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