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트럼프 ‘Dotard’ 비난
Newsroh=노창현 칼럼니스트 newsroh@gmail.com
“제길 도타드가 뭐야? 트럼프와 김정은이 지금 뭐라고 싸우는거야?”
“What the Hell Is a Dotard, and What Are Trump and Kim Jong-Un Fighting About Now?”
-GQ Magazine
북미간 지도자의 공갈포(恐喝砲) 대결이 점입가경(漸入佳境)입니다. 이런 가운데 ‘도타드(Dotard)’란 단어가 큰 화제를 뿌리고 있습니다
‘dotard’는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날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 대응해 자신의 명의로 직접 발표한 성명에 등장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21일 성명에서 "트럼프가 세계의 면전에서 나와 국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모욕하며 우리 공화국을 없애겠다는 역대 가장 포악한 선전포고를 해온 이상 우리도 그에 상응한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조치 단행을 심중히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일단 성명 전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원문 그대로 소개합니다.
<최근 조선반도정세가 전례없이 격화되고 각일각 일촉즉발의 위기상태로 치닫고 있는 심각한 상황에서 유엔무대에 처음으로 나선 미국집권자의 연설내용은 세계적인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어느 정도 짐작은 하였지만 나는 그래도 세계최대의 공식 외교무대인 것만큼 미국대통령이라는 자가 이전처럼 자기 사무실에서 즉흥적으로 아무 말이나 망탕 내뱉든 것과는 다소 구별되는 틀에 박힌 준비된 발언이나 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러나 미국집권자는 정세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나름대로 설득력있는 발언은 고사하고 우리 국가의 ≪완전파괴≫라는 력대 그 어느 미국대통령에게서도 들어볼 수 없었던 전대미문의 무지막지한 미치광이 나발을 불어댔다. 겁먹은 개가 더 요란스레 짖어대는 법이다. 트럼프에게 권고하건대 세상을 향해 말을 할 때에는 해당한 어휘를 신중하게 선택하여 상대를 보아가며 가려서 하여야 한다.
우리의 정권을 교체하거나 제도를 전복하겠다는 위협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한 주권국가를 완전히 괴멸시키겠다는 반인륜적인 의지를 유엔무대에서 공공연히 떠벌이는 미국대통령의 정신병적인 광태는 정상사람마저 사리분별과 침착성을 잃게 한다.
오늘 나는 미국대통령선거당시 트럼프를 두고 ≪정치문외한≫, ≪정치이단아≫ 이라고 조롱하던 말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 대통령으로 올라앉아 세계의 모든 나라들을 위협공갈하며 세상을 여느 때 없이 소란하게 만들고 있는 트럼프는 한 나라의 무력을 틀어쥔 최고통수권자로서 부적격하며 그는 분명 정치인이 아니라 불장난을 즐기는 불망나니, 깡패임이 틀림없다.
숨김없는 의사표명으로 미국의 선택 안에 대하여 설명해준 미국집권자의 발언은 나를 놀래우거나 멈춰 세운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길이 옳았으며 끝까지 가야 할 길임을 확증해주었다.
트럼프가 세계의 면전에서 나와 국가의 존재자체를 부정하고 모욕하며 우리 공화국을 없애겠다는 력대 가장 포악한 선전포고를 해온 이상 우리도 그에 상응한 사상최고의 초강경대응조치단행을 심중히 고려할 것이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제할 소리만 하는 늙다리에게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최선이다. 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국가와 인민의 존엄과 명예 그리고 나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우리 공화국의 절멸을 줴친 미국 통수권자의 망발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받아낼 것이다.
이것은 트럼프가 즐기는 수사학적 표현이 아니다. 나는 트럼프가 우리의 어떤 정도의 반발까지 예상하고 그런 괴이한 말을 내뱉었을 것인가를 심고하고 있다. 트럼프가 그 무엇을 생각했든 간에 그 이상의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미국의 늙다리미치광이를 반드시,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다.
주체106(2017)년 9월 21일 김정은>
조선중앙통신은 영어 번역문에서 늙다리미치광이를 ‘dotard’라고 표현했는데 이 단어가 미국 등 영어권 언론인들을 휘둥그렇게 한겁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 뜻도 모르는 중세 문학작품에 나오는 오래된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메리엄 웹스터 사전은 dotard를 ‘정신적 균형이 쇠퇴해 망령이 드는 상태나 기간‘을 의미하는 도티지(dotage)에서 파생된 단어라고 설명합니다.
do·tard/ˈdōdərd/
: an old person, especially one who has become weak or senile.
대부분의 매체가 흥미로워했지만 그중에서도 세계 최고의 정론지 뉴욕타임스의 반응에 눈길이 끌렸습니다. dotard를 뉴욕타임스 기사 DB로 검색한 결과까지 소개했으니까요.
1980년이후 뉴욕타임스 기사에 dotard가 등장한 것은 모두 10차례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모두가 문화예술면 기사에 있었습니다. 아시겠지만 뉴욕타임스는 상당히 고급 영어로 기사를 작성합니다. 같은 단어라도 좀 어렵고 수준높은 문어체(文語體) 단어들이 많습니다. 그런 뉴욕타임스도 좀처럼 쓰지 않는, 그것도 예술면 기사에만 등장했던 dotard가 트럼프의 ‘말폭탄’에 대응하는 단어로 쓰인 것에 사람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뉴욕타임스의 1986년 예술논평 기사를 보면 “중세의 인기있는 풍자 우화시는 망령난(dotard) 남편의 젊은 아내가 바람을 피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는 문장이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헛소동(Much Ado About Nothing)에서 레오나토가 “난 망령난 늙은이나 바보처럼 말하지 않아”라고 하는 내용도 나옵니다.
또 ‘모비딕’의 작가 허먼 멜빌은 상어를 주제로 한 시에서 “눈과 뇌들은 망령난(dotard) 멍청이, 창백한 큰까마귀는 공포의 고기”라고 읊기도 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dotard가 한국어 성명에서 ‘늙다리(neukdari)’로 표현됐다”면서 “노인을 경멸스럽게 쓰는 단어로 함축된 뜻은 게으르고 쓸모없는 심신상실자”라고 친절하게 해설까지 했더군요.
뉴욕을 본거지로 한 세계적인 남성매거진 GQ의 제이 윌리스 칼럼니스트도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그는 ‘미국과 북한간의 적대적 공방에 관해 알아야할 것들’이라는 글에서 “젠장 dotard가 뭐지? 트럼프와 김정은이 뭐라고 싸우는거야?”라며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나갔습니다.
윌리스는 ‘dotard’가 등장한 배경을 북한의 오래된 조선어-영어 사전에서 찾고 있습니다. 평양 주재 특파원으로 있었던 전 AP통신 진 H 리 국장이 트위터에 “2012년 조선중앙통신을 방문했을 때 사무실에서 영어번역에 사용하는 사전(辭典)이 아주 오래된 것이었다”고 올렸기 때문입니다. 너무 오래된 사전을 쓰는 바람에 ‘늙다리 미치광이’의 고전적 단어가 나온게 아니냐는 분석입니다.
글쎄요. 제 생각엔 그 사전이 셰익스피어 시대 사전도 아닐테고 북한의 전문가들이 상당히 심혈을 기울인 선택의 결과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북한의 성명이나 논평 등은 노동당 선전선동부 소속의 최고 엘리트들이 맡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주로 북한 최고 명문대 김일성대학과 김형직 사범대학 어문학부 출신으로 탁월한 문장력을 갖춘 인재들을 골라 사상검토와 가정환경조사를 통해 선발한다고 합니다.
이번 경우는 사상 처음 북한 최고 지도자가 직접 발표한 성명이니 영어 번역 또한 북한에서 가장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맡아 치밀한 감수(監修)도 거쳤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단어가 dotard 였으니 영미권 최고 권위의 신문 뉴욕타임스도 놀랄밖에요.
아무튼 dotard 이후 트럼프는 또다시 예의 트윗질로 대응했습니다. 21일 오전 6시30분께 “김정은은 자기 인민들을 굶주리게 하고 죽게 하는 완전히 미치광이(mad man)다. 그는 전례없는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또다시 독설(毒舌)을 퍼부었습니다.
미국내 소셜미디어의 반응을 보면 적어도 이번 말공방에선 트럼프가 판정패 한 것 같습니다.
네티즌들은 “이런 단어가 있는줄 몰랐는데 오늘 구글을 보니까 맙소사, (트럼프에게) 딱 맞는 말이야”, “트럼프가 북한의 김정은에게 영어를 배울줄 누가 알았겠냐”고 조롱(嘲弄)했습니다.
정치평론가 찰스 피어스는 “나는 김정은이 dotard란 단어를 다시 써준 것에 감사하다” “사실은 내가 dotard를 먼저 썼다. 하지만 그를 (저작권으로) 고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유머러스하게 트윗을 날렸습니다.
그냥 열받는대로 감정을 담아 날리는 말펀치보다는 서양의 고전 문학작품에 나오는 현학적(衒學的)인 단어를 구사하며 상대를 조소(嘲笑)했으니 어쨌든 한수 위가 아닐런지요.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dotard 해프닝(?)이 한반도 긴장을 가려선 안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번 일을 너무 희화화(戲畫化) 함으로써 한반도 위기의 심각성이 퇴색하는 등 본말이 전도(顚倒)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나참, 누가 심각한걸 모른답니까. 한반도 위기가 너무나 중차대하기에 이런 글도 쓰는겁니다. 제발이지, 양측이 눈에 쌍심지 켜고 위협하는척 하다 어느날 갑자기 햄버거 먹으며 화해하는 ‘해피엔딩 유머대잔치’로 끝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노창현의 뉴욕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