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 106년전 美이민국 서류
신장과 눈색깔, 현금까지 상세 기록
Newsroh=노창현 newsroh@gmail.com
‘국적 한국, 신장 5피트10인치, 머리칼 검은색, 눈동자 진한갈색, 소지현금 50달러...’
도산 안창호가 미국에 도착한 1911년 9월 3일 이민국의 서류에 기재(記載)된 내용이다. 미주흥사단(위원장 윤창희)이 25일 발굴 공개한 독립운동가 안창호와 이갑의 이민국 서류엔 100여년전 미국에 입국하려는 외국인 방문자들의 신상정보가 빛바랜 모습으로 담겨 있었다.
입국 심사대에 오르기전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이 문서의 제목은 ‘미국 도착 여행자 이민국 관리서류(List or Manifest of Alien Passengers of United States Immigration Officer at Port of Arrival)이며 익명의 이민국 관리가 필기체로 29개 항목을 작성한 것이다.
도산 안창호는 6번에 있었고 당시 국적은 한국(Korea), 나이는 33세, 직업은 학교 운영자(School Manager), 최근 방문지역은 영국 런던, 최종 목적지는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라고 기재했다.
이민국 관리는 안창호의 영문이름을 성은 ‘호(Ho)’, 이름은 ‘안창(An Chang)’이라고 적었다. 한국식으로 쓴 이름을 거꾸로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도산이 소지하고 있는 현금은 50달러, 이전 미국 방문기록은 1901년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였다.
특이한 항목은 ‘일부다처주의자(polygamist)’와 ‘무정부주의자(anarchist)’ 였던 적이 있느냐는 질문이다. 또 신체가 기형(deformed)이거나 불구(cripped)인지, 그렇다면 언제 어디서 그렇게 됐는지 묻는 내용도 있었다.
도산의 신장은 5피트10인치(178cm), 피부색(complexion)은 ‘yellow’로 적혔고 머리 색깔은 ‘black’ 눈은 ‘dark brown’, 출생지는 ‘한국 봉정(Pong Jong)이라고 적었다.
당시 도산은 20세 남성과 함께 입국한 것으로 추정(推定)된다. 도산 바로 앞줄에 국적이 한국이고 목적지가 같은 남성이 있기때문이다. 필기 상태가 좋지 않아 영어이름 식별이 힘든 이 남성은 한국에서 온 것으로 기재됐고 고향은 길덕(?)으로 적혀 있다.
6번에 안창호의 영문 이름이 보인다
24번에 이갑의 영문 이름이 있다
도산의 평생 동지인 이갑(Lee Kap)은 이듬해 4월 28일 입국했다. 24번에 위치한 그의 나이는 35세, 직업은 출판인(publisher)이라고 답해 눈길을 끈다.
그 역시 도산과 마찬가지로 동반자가 있었는데 25세 김곡범?(Kim Koku Bom)이었다. 김곡범은 직업을 학생이라고 기재했다. 당시 여행 경비를 책임졌던 도산이 이갑의 건강이 안좋았기 때문에 젊은 사람이 수행하도록 배려(配慮)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이갑은 건강상태를 묻는 항목에 ‘좋다(good)’고 답했으나 의사들이 육안으로 파악하는 1차 신체검사에서 병색을 감출 수 없었던 모양이다. 입국이 거절돼 엘리스 아일랜드 병원에 입원후 진단을 받고 결국 뉴욕땅을 밟지 못하고 최초 출발지였던 러시아로 쓸쓸히 돌아가야 했다.
도산과 이갑이 기재된 서류엔 각각 29명의 명단이 적혀 있었다. 대부분이 독일 프랑스 헝가리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유럽에서 온 이민자(방문자)들이었고 호주와 페루에서 각 1명, 그 외 대륙은 없었다. 두 사람이 타고 온 배가 유럽 항에서 떠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엘리스 아일랜드는 1892년부터 1954년까지 총 2500만명에 달하는 방문자들이 입국 심사를 받은 ‘이민자의 섬’이다. ‘기회의 땅’ 미국에 가기 위해 길게는 수십일을 대서양의 파도에 시달리다 엘리스 아일랜드에 도착했지만 건강이 안좋으면 입국이 거절돼 가족간 생이별로 통곡하는 일들이 비일비재 했다.
맨하탄 앞에 있는 작은 섬이 엘리스 아일랜드 www.en.wikipedia.org
수많은 이민자들의 꿈과 희망, 눈물과 한이 얼룩진 엘리스 아일랜드는 현재 섬 전체가 이민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매년 5월엔 엘리스 아일랜드 이민박물관에서 미국 소수민족연대협의회(NECO)가 미국사회에 기여한 이민자들에게 '엘리스 아일랜드‘ 상을 수여하고 있다.
아래는 지난 2009년 뉴시스 특파원 시절 엘리스 아일랜드 재단에서 발견된 문서 관련 기사이다.
안창호 이상설 이위종 등 독립지사 100명 뉴욕항 입국 기록 발굴(2009.10.22.)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도산 안창호 선생을 비롯, 독립운동가 100여명이 뉴욕항에 입국한 기록들이 발굴돼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주뉴욕총영사관(총영사 김경근)의 주낙영 부총영사는 21일(현지시간) 맨해튼의 엘리스 아일랜드 재단을 방문, 최근 발견된 안창호, 이상설, 이위종 선생 등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뉴욕항 입국 기록 문서를 전달받았다.
이번 기록 발굴은 현재 한미대학생취업인턴제(WEST) 프로그램에 참여한 금교혁 씨(26·한국외대 졸)가 이 재단에서 인턴십을 하면서 독립지사들의 입국 기록을 발견한데 따른 것이다.
금 씨는 지난 두 달 간 100여년 전 수작업으로 된 입국 기록들을 컴퓨터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업무를 수행하면서 한국인들의 성씨를 발견, 안창호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의 귀중한 사료들을 찾을 수 있었다.
금 씨에 따르면 국적란에 'Korea'라고 쓴 사람은 약 100여명이며, '이(Lee)'와 '김(Kim)' 등 한국식 이름을 쓰면서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듯 국적란에 'China', 혹은 'Japan'이라고 쓴 사람들도 다수 있어 상당수의 한인 동포들이 뉴욕항을 통해 입국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안창호 선생은 1911년 9월3일, 머제스틱호를 타고 뉴욕항에 입항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입국서류의 국적란에 'Korea', 직업은 매니저(Manager)로 적혀 있어 관심을 끈다. 또 1907년 6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이 파견한 3인의 특사였던 이상설, 이위종 선생은 1907년 8월1일, 같은 배(Majestic호)편으로 뉴욕항에 입국한 것으로 기록됐다.
뉴욕총영사관은 "3인의 특사 중 이준 열사는 현지에서 분사(憤死)함에 따라 나머지 두 분만 뉴욕항을 통해 입국한 당시의 상황이 생생한 기록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밖에 3·1운동 당시 유학생 신분으로 파리강화회의에 참가하고 1923년 귀국 후 연희전문교수와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한 이관용 선생이 1922년 11월15일 입국한 기록을 비롯, 홍언, 송헌주, 윤병구 선생 등 애국지사들의 입국 기록이 다수 발견됐다.
뉴욕총영사관은 이번에 발굴된 기록이 미주 한인 이민사의 중요한 사료가 됨은 물론, 한국 독립운동사 차원에서도 귀종한 사료 가치를 지난다고 판단하고 이번 기록물을 한국의 독립기념관, 외교부(외교사료팀), 문화부 등에 송부해 추가 연구가 진행 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리버티 아일랜드 바로 옆에 위치한 엘리스 아일랜드는 1892년부터 1954년 사이 뉴욕 이민자들의 관문 역할을 맡은 섬으로 입국자 심사를 맡은 붉은 벽돌 건물이 이민 박물관으로 활용돼 이민자들의 짐 가방, 사진 등 각종 자료들이 전시되고 있다.
엘리스 아일랜드 재단은 1892년 이후 엘리스아일랜드를 거쳐 입국한 약 2500만 명 이민자들의 기록을 관리하는 재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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