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퐁피두센터에서 9월 20일부터 고암 이응노(1904∼1989)의 작품 17점 (회화 14점, 조각 3점)을 유족으로부터 기증받아 전시가 열리고 있다. 20일 오프닝 행사에 작품 기증식이 있었고 퐁피두센터 내 프랑스 현대 미술관 내 5층 'Donation Lee Ung-No(이응노 기증)' 전으로 11월 27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세계적인 미술관인 퐁피두센터가 직접 기획한 전시로 의미가 크다. 블르스텐 퐁피두센터 관장이 지난 2015년 10월, 디종의 ‘르 콩소르시움(Le Consortium)에서 열렸던 ‘이응노 & 한묵 전’에서 이응노 작품을 처음 보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 이루어진 전시다.
블르스텐 관장은 “한국 미술, 특히 이응노 화백은 동양과 서양 문화를 잇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한다.”며 “모더니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진 작가로 미술사적 의미가 재평가돼야 하기에 이번 전시를 열게 되었다”고 밝혔다.
동, 서양을 넘나드는 가교는 이응노의 생이었다.
1904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난 이응노는 1922년 해강 김규진 문하에 들어가 문인화를 배우며 그림을 시작했다. 1935년 일본에서 유학을 하다 1945년에 귀국해 서울에 고암화숙을 개설해 학생들을 가르치며 홍익대학교, 서라벌예술대학에도 출강했다. 1958년 51세에 프랑스로 왔다가 독일에서 1년간 체류하며 본, 쾰른,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인전을 열며 활동하다 파리에 다시 정착했다.
1962년 폴 파케티 화랑과 전속 계약을 맺고 첫 개인전 '이응노, 콜라주'를 통해 콜라주 기법을 이용한 추상 작품을 전시했다. 전시는 성공을 거두며 그의 이름이 유럽을 비롯해 미국까지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1964년 파리 체르누스키 미술관에 동양미술학교를 세우며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았고, 왕성한 활동을 하는 중 1967년 7월 ‘동백림 사건’에 연류되어 2년 6개월간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1969년 사면된 후 프랑스로 돌아와 활동하다가 1980년대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1989년 1월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앞두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프랑스에서 망명객처럼 살다가 고국의 땅을 밟지 못하고 떠난 이응노 화백은 그의 사후가 다시 재조명되며 세계의 대표적 미술관 중 하나인 퐁피두센터에서 전시가 열리게 된 것이다. 이번 전시가 더 뜻 깊은 의미를 지니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응노 화백의 작품세계
이응노는 프랑스로 건너와 한국화와 동양화의 전통적인 필묵과 서양화의 접목으로 그만의 독특한 현대미술 세계를 구축했다. 장르와 소재를 넘나드는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이응노는 유럽 미술과 한국 미술이 파리에서 만나 새로운 운하의 줄기를 트듯 모더니즘을 넘어선 독특한 테크닉과 조형언어를 통해 새로운 작품세계를 창조해 냈다.
자연과 인간의 생동하는 움직임을 문자와 인간형상 등을 수묵화, 서예, 콜라주, 도기, 조각, 판화, 태피스트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와 양식의 변화를 거쳐오며 실험정신과 시대정신을 담아 그만의 현대적 감각으로 창조 표현해 낸 것이다.
특히 세상을 떠나기 십 년 전부터 그리기 시작한 ‘군상’ 시리즈는 현대성이 강하게 드러나면서 자유로움의 경지를 한지에 먹으로 표현하고 있다. ‘군상’시리즈는 독재 권력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것이다.
체르누스키 미술관에서 더 많은 작품들과만난다.
퐁피두센터 전시에 앞서 올해 6월부터 체르누스키 파리 시립동양미술관 Musée Cernuschi에서 ‘군중의 사람들, 이응노’ 전시가 열리고 있다. 미술관에는 이응노 화백의 작품이 100여점 소장되어 있고 이번 전시에는 70여점이 선보인다. 1950년대부터 1989년까지의 작품 활동을 비교해 볼 수 있도록 9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전시하고 있다.
그 외에도 미망인 박인경 작가와 아들 이융세 작가의 작품도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전시는 11월 19일까지 열린다.
체르누스키 미술관에는 동양미술학교가 있다. 이응노 화백의 정성으로 세워진 학교로, 유럽 인들에게 서예와 사군자를 가르쳤던 곳이다.
Donation Lee Ung-No
전시기간 : 2017년 9월 20일 ~ 11월 27일
장소 : 퐁피두센터 Niveau 5
시간 : 11h~22h(화요일 휴관)
요금 : 14유로
【프랑스(파리)=한위클리】조미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