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유라시아의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Newsroh=강명구 칼럼니스트
넬라호제베스는 블타바 강변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또 해질 무렵이 다되어서 그 작은 마을에 들어서자 르네상스식 거대한 궁전이 눈에 확 들어온다. 벨트루시 성이다. 그러나 궁정보다 더 놀라운 것이 이 마을에 ‘신세계 교향곡’을 작곡한 안톤 드보르작의 생가가 있다는 것이다. 신세계 교향곡은 아폴로 11호에 실려 우주여행을 한 음악이 되기도 했다.
푸르고 평화로운 블타바 강과 잘 보존된 아름답고 장대한 고성(古城), 사방을 둘러싼 숲을 지나는 나그네의 발길에 어느새 음들이 요정처럼 동행한다. 어느덧 나그네의 발걸음은 천재적 음악가의 미적 감각이 조화를 부린 악보처럼 구성된다. 사실 드보르작은 천재적 음악가는 아니라고 한다. 가을 햇살도 건반 위를 날아다니는 장인의 손가락 같이 경쾌하다.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나뭇잎 소리도 교향곡의 한 소절 같이 들리는 듯하다.
무대의 커튼이 올라가며 지휘자의 은은한 손짓이 허공을 휘젓기 시작하면 첼로의 남성적 선율이 사랑을 속삭이듯이 감미롭게 소리의 물결을 일으킨다. 뻐근한 몸을 일으켜 눈을 비비고 기지개를 펴고 아침 햇살에 어둠이 무대의 커튼 젖혀지듯이 물러날 때 나는 아다지오의 매우 느리게의 속도로 대지의 현을 켠다. 아직 몸이 달구어지지 않았다. 활기찬 발바닥과 만나는 가을의 대지는 악기의 공명판처럼 작은 두드림에도 섬세하게 반응한다. 대지의 반응은 곧 전신을 타고 심장으로 전해진다.
서주(序奏)가 끝나면서 그 적막에 가까운 아련한 소리 위로 호른이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 옛 터전 그대로 향기도 좋다. 지금은 사라진 동무들 모여”의 음을 연주하고 어느 순간 호른과 플릇이 소리를 주고받으며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유라시아대륙을 달리는 나와 평화통일을 염원하며 내게 힘을 주는 모든 이는 조금씩 다른 음색의 소리를 내면서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간다. 이때쯤 나는 온몸의 모공이 열리며 발걸음은 경쾌하게 리듬을 타고 앞으로 나간다.
그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달리는 발걸음은 크레센도로 빨라진다. 발걸음이 빨라질수록 격정적인 포르테의 흥겨움을 발산하면서 달리노라면 정신도 최상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그맘때면 심장의 고동소리가 팀파니의 강렬한 울림으로 연주되어 나오고, 아직도 절정에 다다르려면 멀었지만 고통은 최상에 다다르게 된다. 그 고통의 터널을 잘 견뎌내면 음들은 어느덧 잦아지고 남극의 빙하와 같이 순결한 순간이 찾아온다. 삶에도 음악에도 마라톤에도 평화통일의 길에도 고통의 터널의 지나야 비로소 만나는 열락(悅樂)의 세계가 있다.
지휘자는 천상에서 노니 듯이 허공에서 음을 쥐었다 놓았다 하면서 명주실을 뽑아내듯이 음을 뽑아내고, 어느덧 잉글리쉬 호른 주자의 현란한 손놀림처럼 대지의 음공을 현란한 발걸음으로 두드리며 자연과 대지와 혼연일체가 되어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나는 마치 여기서부터는 잉글리쉬 호른의 독주를 연주하듯이 신나게 치고 나아간다. 그리고는 더 이상 합주를 허락하지 않는다. 환상적인 음에 관객들이 숨을 죽이듯 평화마라톤을 응원하는 이들이 나를 숨죽이며 바라본다.
연주가 무르익어 가면 음은 음 이상의 것이 되어서 사람의 가슴을 두드린다. 달리기가 최고조에 이르면 육신의 경계를 넘어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세계에 들어선다. 분위기가 한층 무르익어갈 때 오보에 소리가 시작되어 잉글리쉬 호른 소리와 왈츠를 추듯이 서로 휘감아 흐를 때면 나무 위에서 새들의 우짖는 소리가 발걸음 소리 위에 얹히고, 그럴 때면 영락없이 삶의 저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박수갈채 소리가 가슴으로 전해져 온다. 그 지울 수 없는 화상 같은 기쁨과 환희가 언제나 나를 유혹하여 아침 일찍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달리게 만든다.
무한 질주의 독일의 아우토반에 멈춰 서서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자동차에 불과했던 나는 들판을 달리는 야생마처럼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생명이 된다. 긴 겨울을 준비하며 붉게 물든 나뭇가지 위로 휘감아 부는 돌풍이 최고의 고음을 내면 달리는 발걸음도 절정에 이르게 된다. 음표(音標)들이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듯이 발걸음도 길 위에서 격렬하게 상하운동을 하게 된다. 육체가 최고점에 이르렀을 때 거기서 흘러나오는 절정의 인간정신을 축출하여 씨줄과 날줄로 엮어 나의 삶을 재생시키고, 사람들과 함께 평화통일의 신세계를 가꾸어나가는 것이다.
악공의 손이 악기 위에서 자유자재의 음을 만들어 사람들의 가슴을 적시듯이 나의 발바닥은 길 위에서 자유자재의 평화통일의 꿈과 희망의 음표를 만들어 나와 사람들의 가슴을 데우면서 최고의 피날레를 향하여 달려간다. 평양을 거쳐 광화문까지 앙코르의 연호가 하늘 가득히 메아리치기를 기대하면서. 그 힘찬 피날레는 마른 나무에 물이 오르는 재생의 숙연한 순간이며, 불가마 속에서 진흙이 명품 도자기로 태어나는 연금술의 순간이요, 강화도령이 대관식을 치르는 장엄한 순간이기도 하다.
평화마라톤은 나의 몸이 음표가 되어 고통과 환희의 음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사람들의 가슴 속에 묻혀있는 염원을 모아 신세계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이다. 고통과 즐거움, 불확실과 확실성 그리고 보수와 진보를 인류의 보편적 가치 속에서 화해시킨다. 평화는 관악기와 현악기, 타악기를 서로 화해시키고 조화를 이끌어내며 서로 협력하게 하여 찢어진 마음을 기우고 삐뚤어진 인간정신을 바로 세우는 장엄하고 성스러운 음을 만들어 내는 그런 것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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