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생활 이야기] 암에서 탈출한 나를 보다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송석춘 = 지난 허리케인때 우리 마을은 사흘간 전기가 나갔다. 낮에 밖에 나가 땅에 떨어진 수많은 나뭇가지들을 한 곳에 모으느라 지쳐서 밤에는 기운이 없었다.
그러나 허리케인 직전에 우편으로 배달된 한수산의 장편소설인 '군함도'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나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랐으니 조선 징용공들의 애환을 어린 나이에 보고 듣고 느꼈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라서 너무 읽고 싶은 마음에 촛불을 켰다. 옛 선비들은 촛불도 없어 빈딧불로 책을 잃었다고도 하고 달빛에 책을 읽었다고도 한다. 지금의 나같은 시력으로 달빛에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작가는 “어제를 잊은 자에게 무슨 내일이 있겠는가”라며 이야기를 펼친다. 소설은 죽음 같은 노동으로 악명 높았던 일본 하시마 조선인 강제징용과 나가사끼 피폭을 배경으로 탄광에서 일하던 젊은이들 중 소수가 탈출에 성공하지만 자유의 몸이 되어 밟은 나가사키에는 원자탄이 떨어지는 비참한 상황을 그려낸다.
일본에 떨어진 원자탄의 위력은 원자탄을 투하한 비행기 부조정사의 이 탄식 한 마디로 요약된다. "하나님, 맙소사, 우리가 지금 뭘 한거야 (Oh my God, What have we done?)"
당시 사람들이 방공해제 사이렌 소리에 방공호에서 몰려 나올 때 터졌기에 인명 피해가엄청났다.
나는 지금도 당시 일본 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한다. 단 두 방의 원자탄에 항복한 천황의 라디오 방송을 듣고 일본인들이 슬피울던 모습을 생생하다. 그리고 그들만의 독한 민족성도 기억한다.
미군이 요코하마에 상륙하여 각지로 이동하기 위해 오코하마 기차역에서 객차에 타고 대기하고 있을 때 마을 아이들에게 그들의 전투 식량을 많이도 던져 주었다. 일본이 항복하고 3주 후에 초등학교가 개학했다. 당시 여선생은 어린 학생들에게 “미군이 땅에 던져주는 것은 줍지도 말고 먹지도 말라”고 하며 “비록 우리는 전쟁에는 졌으나 거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 후 마을 아이들이 굶어 죽는 것은 많이 보았으나 땅에 떨어진 먹거리를 줍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소설은 하시마 탄광의 비참한 현실과 함께 친일파, 기업위안부 등도 등장한다. “우리는 같은 핏줄이다. 이게 조선 사람끼리 할 짓이냐”라는 대사가 나오기도 하고, “조선놈이 조선 사람 팔아 쳐 먹고… 조선놈이 조선 사람 올라타고 앉아 괴롭히며 저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놈이 있다”라며 동족 끼리의 갈등이 묘사되기도 한다.
소설을 덮고 잠시 생각해 본다. 내가 아직도 살아서 촛불아래서 이렇게 독서를 할 수 있는 것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20년 전에 그 병에 걸리면 끝이야 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내 나이 60이었다. 암 중에서도 지독한 암에 걸렸고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수술실에 들어갔다.
수술에서 깨어나 거울을 보고 “이런 수술이라면 차라리 받지 않았을 것을…”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올만큼 처참한 몰골이었다. 그러나 당시 죽었더라면 우리 가정은 어떻게 되었을까. 나이들어 독서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도, 그리고 오늘처럼 촛불밑에서 책을 읽는 행복한 순간도 없었겠지. 암에서 탈출하여 살아남은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