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유라시아의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Newsroh=강명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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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게르만 민족이지만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독일 사람들보다 덜 사색적이고 덜 철학적인 것 같다. 호기심 가는 것이 나타나면 캥거루의 눈처럼 동공(瞳孔)이 커진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즐겨하는 농담 중에 하나가 ‘오스트리아에는 캥거루가 없어요.’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사람들의 눈동자가 캥거루같이 맑고 크다. 사람들은 놀라워하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기도 한다. 나의 행색이 평범한 행색은 아니어서 사람들이 쳐다보는 시선이 달라야하는데 독일에서는 영 그걸 느끼지 못했었다.

 

경찰을 만나는 일은 법을 어기지 않아도 반가운 일은 아니지만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한두 번쯤은 나를 세웠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그런 일이 없다가 오스트리아경찰이 지나가다가 돌아와 저만치 차를 세우고 카메라로 나를 담고 있다. 당연히 그의 앞에 섰다. 그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어디서 자는지 왜 이렇게 달리는지 묻는다. 나는 충분히 준비된 답변을 했다. 우리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달린다고. 아마 그 경찰은 들어가 업무일지를 쓸 것이고 그의 상관이나 동료가 그것을 볼 것이니 나의 홍보활동은 잘 된 것이 틀림없다.

 

경찰뿐 아니라 도나우 강도 유럽을 지나는 동안 자주 만날 것 같다. 도나우 강은 유럽에서 두 번째 긴 강으로 독일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 있는 검은 삼림지대에서 발원하여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등의 나라를 유유히 지나며 흑해(黑海)로 흘러들어간다. 빈은 아직 강 상류에 해당하고 고색창연한 건축물이 신비로움을 더하는 오랜 전통의 도시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도시를 구경하는 대신 단잠을 선택했으니 나의 선택이 언제나 옳은 것이 아님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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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전반 동안 비엔나는 제국의 번영과 함께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謳歌)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원래 스위스 북부에서 시작되었는데 차츰 세력을 오스트리아로 확장시켰다. 그 후 600년간 오스트리아를 지배했다. 그러다 카를 5세 때는 유럽의 대부분의 땅을 다스리는 거대한 제국이 되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 제국은 대부분 전쟁의 결과가 아니라 정략결혼의 결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당시 빈에는 “아,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결혼하자!”란 말이 유행하기고 했다.

 

이런 화려한 도시에는 예나 지금이나 어디엔가 있을 성공을 찾아 날아드는 부나비 같은 청년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 모두가 성공 신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23세의 청년 히틀러도 그 중의 하나였다. 비엔나에는 이런 청년들이 낙오(落伍)하여 거지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시에서 마련한 허름한 숙소가 있었다. 그도 그런 곳에 거주하였다. 히틀러도 그곳에 거주하였지만 아무도 그가 어머니와 이모로부터 넉넉한 유산을 물려받아 좋은 집에 머물러도 될 좋은 형편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가 비엔나에 온 것은 1907년이었다. 미술학교 입학시험도 두 번이나 실패하였지만 크게 실망도 않고 창가에서 그림만 열심히 그렸다. 여느 젊은이들과 달리 축제에 어울리지도 않았다. 가끔씩 미친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주위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큰 소리로 도덕과 인종의 순수성, 게르만 민족의 사명과 슬라브족의 교활함에 대하여 열변을 토했지만 사람들은 그것만 빼고는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곳에서 징집을 기피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1913년과 1914년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를 중심으로 세계의 역사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비엔나라는 무대 위에 한 세기에 하나 나올까 말까하는 걸출(傑出)한 유명배우들이 여럿 등장한다. 제국을 지키려는 프란츠 요제프 황제, 제국을 바꾸려는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십대 암살범 프란치프. 그리고 프로이트, 히틀러, 트로츠키, 레닌, 스탈린 등 인류 역사상 최고의 독특한 성격파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아직 충분한 역할이 주어지지는 않았다.

 

그때 그들이 비엔나라는 같은 무대에 있었지만 나중에 그렇게 인류 역사를 뒤흔드는 인물이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세월이 많이 흘렀어도 그들이 남긴 나쁜 그림자가 세계 곳곳에 남아 있다. 스탈린은 우리 38선의 직접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100년이 지난 뒤 전쟁과 이념의 귀재들의 거친 기가 흐르는 이곳에 그들보다 더 거친 기를 담아서 내가 1,600여km를 달려서 들어왔다. 평화를 노래하면서 말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생지였고 제2차 세계대전의 격전지였던 이곳에서 나의 평화의 노래를 더욱 증폭(增幅)시켜야 할 이유는 충분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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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의 한국문화회관은 시내 중심가에서는 많이 떨어진 도나우 섬 내에 있었다. 보통은 중심가에 있어서 한국을 알리는 전초기지로 정부기관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순수 교민들의 모금으로 오스트리아 정부의 건물을 60년간 임대를 받아 운영한다고 한다. 그래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위치한 한국문화회관이라고 자랑을 한다. 도나우 공원의 경관(景觀)은 정말 빼어나다. 전미자 관장의 차를 타고 그곳에 도착하니 이른 시간인데도 이미 10여 명이 와있었다.

 

시간이 되자 바쁜 가운데도 한인회장, 평통 관계자, 국제부인협회 등 30명의 교민이 모여 나의 강연에 귀를 기울여 경청(傾聽)하고 꼭 평양을 거쳐 판문점으로 귀국하라며 굳게 손을 잡아준다. 처음에 혼자 상상하고 꿈꾸며 거의 무모하게 시작했지만 이제 나의 발걸음으로 사람들의 통일에 대한 염원을 눈덩이처럼 굴려 커지는 모습이 보인다. 몸은 외국에 와서 살지만 평화통일을 바라는 마음은 오히려 조국에 사는 사람들보다 크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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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러분과 제가 이렇게 마음을 모으면 여러분과 제가 상상하는 이상의 일이 벌어지는 기쁜 날이 곳 올 겁니다. 그리고 만약 제가 평양을 통과해서 판문점으로 입국하게 되면 나는 북한 당국자들에게 남한 시민 5만 명, 북한 시민 5만 명, 그리고 해외동포와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시민 5만 명이 함께 어우러지는 맥주, 막걸리 축제를 대동강가나 판문점에서 열 것을 제의할 것입니다.”라는 말로 마무리를 했다.

 

대단한 성공이다. 히틀러나 레닌, 스탈린도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30여 명 앞에서 말하는 기회는 갖지 못했다. 나는 그들이 남긴 100년 가까운 검은 그림자를 발걸음으로 지우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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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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