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재미과학자들의 실태와 활약상 (2)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미국에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 과학자들이 많다.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이 이 가운데 82%과 연구직이 차지하고 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과거에는 의학과 공학 전공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던 것이 근래 들어서는 물리 화학 생물 등 기초과학자들의 활약이 눈부시다는 것이다.
기초과학자들 가운데는 국제 과학계가 안타까워 하며 항의할 정도로 아깝게 노벨상을 놓친 학자, 전문 매체에 의해 매년 후보군에 꼽힐 정도로 노벨상에 근접한 학자들도 있다. 만약 한국이 김대중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 노벨상을 받는 이가 나타난다면, 기초과학자들 가운데서 나올 것이란 예상이 나온 지는 제법 오래 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현재 미국에서 활약 중인 과학기술자들 가운데 재미과학기술자협회(KSEA)가 꼽은 8명 가운데 노벨상에 근접한 것으로 평가받아온 6명의 학자들의 활약상을 다루고자 한다. 이들의 활약상은 이미 미국 주요 매체 및 한국 매체들이 부분적으로 간혹 다루어 왔으나, 전체를 종합하여 아우르고 조망한 경우는 드물다.
노벨상 아깝게 놓친 김필립 박사
▲ 김필립 박사 |
우선 주변에서 노벨상을 '억울하게' 놓쳤다는 평을 듣는 물리학자 김필립 박사(49)를 소개하고자 한다. 김 박사는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후 하버드 대학에서 물리학 박사를 받았다. 컬럼비아대를 거쳐 하버드대학에서 물리학과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난 2010년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 후보로 유력하게 꼽힌 김필립 박사는 이른바 '꿈의 소재'로 불리는 그래핀(grapheme)의 특성을 규명해온 세계적 권위자다. 그래핀은 반도체 원료물질보다 가볍고 휘어지기까지 하며, 실리콘보다 100배 이상 전기가 잘 통하는 차세대 반도체 소재로, 현대 물리학의 첨단 분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2010년 10월 노벨 물리학상 발표일을 앞두고 국제 물리학계에서는 그래핀 분야 학자들 가운데 김 교수를 유력한 노벨상 후보로 꼽았다. 하지만 김 교수가 빠진 채 다른 두 명의 학자들에게만 노벨상이 돌아갔다. 영국의 세계적 과학학술지 <네이처> 온라인판이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등 강력하게 반론을 제기했다. 학계에서도 김 박사의 그래핀 연구의 실질적 기여도가 다른 수상자를 훨씬 능가한다는 얘기가 나왔고, 일반 매체에서도 노벨상 위원회가 실수한 것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김 교수는 '언젠가는 그래핀 분야에서 노벨상이 나올 줄 예상했는데 의외로 빨리 나왔다'며 노벨상의 전통은 공헌도보다는 최초의 기여자를 우대하는데 이번에 받을만한 사람이 받았다'며 결과를 받아들였다. 한국의 한 물리학자는 그래핀 관련 노벨상 수상이 몇 년 뒤에 있었다면, 김 교수의 수상이 더 유리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그래핀 연구의 역사는 시작된 지는 그리 길지 않고 본격적인 응용 개발단계에 접어든 만큼 앞으로 나오게 될 결과물은 무궁무진 하고, 가까운 시일 안에 김 박사에게 다시 기회가 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분전자과학 최고 권위자 박홍근 교수
▲ 박홍근 박사 |
노벨 과학상에 가장 근접한 과학자 가운데 하나로 박홍근 박사(50)를 빼놓을 수 없다. 약관 32세에 하버드대 교수로 임용된 지 5년 만에 한국인 최초로 종신교수가 된 박 교수는 화학ㆍ물리학과 겸임교수라는 특이한 이력도 갖고 있다.
나노과학, 반도체, 미세유체 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생물학적 도구 개발을 연구 목표로 하고 있는 박 교수는 분전자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개척자이자 최고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분전자 과학은 전자회로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트랜지스터를 분자 몇 개로만 만들어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기술이다. 박교수가 개발한 단분자 트랜지스터는 지난 2002년 과학잡지 <네이처>에 공개되면서 <뉴욕타임스>가 후속 기사로 크게 다루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단분자 트랜지스터 개발은 성냥갑만한 슈퍼컴퓨터 등을 현실화하는 꿈을 꾸게 했다.
단분자 트랜지스터는 부피가 적다는 큰 장점 외에도 1억개의 전자가 이동하는 일반 트랜지스터와 달리 전자 하나만을 이동시켜 전력 소모를 대폭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상용화 될 경우 태양전지를 이용한 충전만으로도 충분한 전자제품이 속속 등장하게 된다. 단분자 트랜지스터는 생명공학의 발전에도 획기적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DNA나 생화학무기를 검출할 수 있는 분자센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박 교수는 뇌의 신경을 아주 얇게 절단해 이를 컴퓨터 칩으로 키워보면 신경세포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를 알아내는 뇌연구도 진행중이다. 박 교수는 지난 2005년 <연합뉴스>가 '노벨상에 도전하는 한국인 과학자들' 조사에서 전체 239명이 참여한 노벨화학상 부문 조사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생물물리학계 선두' 하택집 교수
▲ 하택집 박사 |
김필립, 박홍근 박사와 더불어 서을대 86학번 3총사 가운데 하나인 일리노이대 물리학과 하택집 교수(49)는 미국립과학원(NAS) 종신 회원으로 생물물리학계의 선두 주자로 손꼽히고 있다.
하 교수는 물리학 개념과 실험 기술을 분자 생물학의 근본적 문제 해결에 적용한 연구로 학계의 주목을 모았다. 그는 개별 분자의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를 강화하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으며, DNA·단백질 등을 형광물질로 염색하고 단분자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기법을 개발해낸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를 토대로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속속 발표했다. 어지간해서는 받아주지는 않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사이언스> <셀> 등에 매년 연구 논문을 올렸다..
하 교수의 연구성과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미국의 유수한 과학기술 단체들이 그를 회원으로 붙잡아두는 것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하 교수가 속한 미국국립과학원은 아인슈타인 등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이 회원으로 등록된 단체로, 1863년 미국 정부가 과학기술 분야의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했다. 이 단체는 학계가 인정하는 뚜렷한 연구 성과를 낸 신망받는 학자들만 입성할 수 있다.
2015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꿈의 교수직'이라는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의 블룸버그 석좌 교수직에 올랐다. 블룸버그 통신사의 설립자이자 전 뉴욕시장 마이클 블룸버그가 2013년 2억5천만 달러를 기부한 돈으로 시작한 블룸버그 석좌 교수제(Bloomberg Distinguished Professorship·BDP)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최고의 석학을 선발해 지원하는 제도이다.
이밖에도 하 교수는 미국과학재단상, 미국물리학회 석학회원(fellow), 미국국립과학원 회원, 미국예술과학원 회원, 하워드 휴즈 의학 재단(HHMI)의 올해의 생명의학 과학자 등에 선정됐다.
'충돌의 여왕' 김영기 교수
▲ 김영기 박사 |
물리학자 김영기 시카고대 물리학과 교수(55)는 '충돌'을 연구하는 세계적 여성 천체물리학자이다,
시카고 근교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에서 전 세계 850여 명의 과학자를 이끌며 우주의 생성비밀을 캐내고 있는 김 교수는 1977년 미국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천재 물리학자이자 한국인 첫 노벨상 후보자였던 고 이휘소 박사의 학맥을 잇는 학자로도 알려져 있다.
김 교수는 지난 2004년부터 세계 최대 규모의 입자물리 실험기구인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에서 양성자, 반양성자 충돌 실험(CDF·Collider Detector at Fermilab)을 이끌었다. 충돌실험의 종착역은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나.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답을 얻는데 있다. 우주와 그안의 지적 생물체인 인간의 생성에 대한 관심이다.
김 교수는 지난 2014년 재미과학기술자협회 강연한 내용을 <미주중앙일보>가 정리한 것을 보면 그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우주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만드는 것이 나의 꿈"이라며 "한 때는 가장 작은 것은 원자라고 했지만 그 이론은 무너졌다. 물질 세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소립자이다. 쿼크(quark)가 소립자인데 여섯 가지 종류가 있고 그 중 가장 무게가 많이 나가는 톱 쿼크를 지난 1995년 발견했다. 현재는 소립자에 질량을 주는 힉스(Higgs) 입자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고려대에서 석사 학위 취득 후 1990년 미국 로체스터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 교수는 2000년 디스커버지가 '주목해야 할 20명의 젊은 과학자'에 선정했으며, 2004년 미국물리학회(APS)가 펠로(Fellow)로 선정했다.
창공의 빛줄기만 바라보는 서은숙 교수
▲ 서은숙 박사 |
서은숙 박사(55)는 김영기 교수에 이어 우주를 연구하는 또다른 여성 천체물리학자다. 현재 재미과학기술자협회(KSEA) 최의 여성 회장이기도 한 서박사는 우주에서 날아오는 입자인 우주선을 탐구한다. 하늘을 나는 우주선(spaceship)이 아니라, 우주 밖에서 날아온 선(cosmic ray)에 대한 연구다.
서 교수가 지난 2012년 <세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밝힌 '우주선 철학'을 들어보자.
"우주는 어떻게 시작됐고, 어떻게 진화했으며, 앞으로 어디로 가고 있을까? 이 근원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의 답을 찾아 나섰어요. 철학과 물리학의 뿌리가 같지만 저는 과학을 통해 우주의 기본원리를 규명하는 연구에 매진했지요. 지구 밖 외계에서 지구로 무수한 미립자가 날아오고 있어요. 이것이 우주선입니다. 우주선이 대기 중에 존재하는 입자와 충돌해 쪼개지고 이때 우주선보다 에너지가 낮은 입자가 만들어져요. 이렇게 대기 중에서 무수한 입자가 만들어지는 것을 '에어 샤워'라고 합니다. 과학자들이 쪼개진 입자를 측정해서 처음에 들어온 원래 입자의 에너지를 간접적으로 측정할 수 있어요. 이처럼 에어 샤워를 관측하는 것을 '지상 관측 실험'이라고 합니다."
결국 서 교수가 하는 것은 에어 샤워 관측을 통한 간접적인 우주선 측정보다는 대기권 밖에서 우주선이 대기의 입자와 충돌하기 전에 직접 측정하려는 것으로, 입자검출기를 우주공간에 설치해 우주선의 성분과 에너지를 직접 측정하는 '우주선 관측 실험'이다.
서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 중에서 우리 인간이 알아낸 것은 고작 4∼5% 정도에 불과한데, 인간이 알지 못하는 '암흑 물질'을 고에너지 우주선 연구를 통해 조금이나마 찾으려는 것이 연구의 핵심이다.
서 교수는 2004년부터 미 항공우주국(NASA)과 공동으로 남극에서 검출기를 띄워 우주선을 측정하는 아이스 크림(ISS-CREAM) 프로젝트의 총괄 책임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미국, 한국, 이탈리아, 프랑스, 멕시코 등 5개국 연구원 100여명을 이끌고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서 교수의 연구 결과는 <네이처>와 <뉴욕타임스>는 과학면에서 비중있게 다뤄졌다. 서교수의 아아스크림 연구 업적은 미국에서 고에너지 우주선 연구분야의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 교수는 1997년 11월 미국정부가 유망 과학자에게 주는 최고의 상인 '신진 우수연구자 대통령상'을 받으면서부터 장래가 촉망되는 과학자로 일찌감치 미국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2006년에는 NASA그룹업적상도 수상했다.
'과학을 뒤흔든 젊은 천재' 데니스 홍 박사
▲ 데비스 홍 박사 |
마지막으로 소개할 데니스 홍 박사(한국명: 홍원서, 46)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는 이른바 '휴머노이드'(인간의 형상을 한 로봇) 개발의 세계적 권위자이다.
홍 박사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3살 때 한국으로 들어와 자라면서 고려대학교 3학년 재학 당시 위스콘신 대학교 매디슨으로 편입하여 기계공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후 퍼듀 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UCKLA 기계공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로봇공학 연구소인 로멜라(RoMeLa)를 설립하고 초대 소장으로 취임했다.
홍 교수는 2007년 NSF로부터 '젊은 과학자상'을 받은데 이어, 지난 2009년 미국 <파퓰러사이언스)(Popular Science)으로부터 '과학을 뒤흔든 젊은 천재 10인'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얻었다.
어렷을 적부터 아메바처럼 움직이는 로봇을 꿈꾸어 온 홍교수는 시각장애인이 직접 운전할 수 있는 자동차를 개발해 냈고, '천재 로봇공학자'라는 별칭을 얻었다.
2011년 1월 롤렉스24 자동차경주대회 예선전 때 선보인 SUV 자동차 경주대회는 세상을 전율시켰다. 보통의 경주용 자동차와 달리 천천히 트랙을 돌던 그의 차가 멈춰서더니 문이 열리고 시각장애인 마크 리코보노 씨가 지팡이를 짚고 나왔다. 세계 최초 시각장애인용 자동차 '브라이언'이세상에 알려진 순간이다.
그의 시각장애인을 위한 자동차 개발을 두고 <워싱턴포스트>는 '달 착륙에 버금가는 성과'라고 극찬했다. 2011년 <타임>은 그에게 최고 발명품상을 주었다. 2012년에는 펩시 '세계 최고의 두뇌 6인' 가운데 하나로 그를 선정했다.
홍 교수는 훗날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따뜻한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했던 사건이었다. 불가능, 그건 하나의 의견일 뿐이란 생각을 굳히게 된 계기였다"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이후 홍 교수는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차례로 성공시켰다. 구조용으로 개발한 기어 다닐 수 있는 로봇은 그가 초등학교 때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단세포 생물들에 매료돼 아메바처럼 움직이는 로봇을 만들고 싶다는 허황한 꿈에서 비롯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