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특사, 북미 중재 실패가 직접적 원인
(마이애미=코리아위클리) 김현철 기자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북한에 지난달의 중국 공산당 제19차 당 대회 결과를 설명한다는 이유로 쑹타오 공산당 대외연락 부장을 특사로 평양에 보냈다.
쑹 특사 입국 날인 11월 17일치 북한 <노동신문>은 논설을 통해서 “우리 공화국의 최고 이익과 인민의 안전과 관련된 문제는 절대로 흥정탁(협상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북한은 이미 시진핑이 트럼프의 요청을 받아들여 쑹 특사를 보낸 것을 알았음을 짐작케 하는 논평이다.
<중앙일보> 9월 4일치를 보면, 5월 8일과 9일 이틀 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있었던 북미 비공개접촉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북미주국장은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철회하고, 대북 제재조치를 해제하며, 북미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북한은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훈련을 중단하겠다’는 뜻을 미국 측 대표들에게 전했다. 바로 이 조건들이 북한이 지금까지 미국에 요구해 온 내용들이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부시와 오바마에 이어 트럼프도 대북 한미합동군사훈련, 유엔을 통한 경제제재, 외교고립 등의 대북 적대정책으로 일관, 북미 대화가 불가능한 단계에 이르렀다. 이는 아직 미국이 달콤한 아시아 패권을 내려놓을 준비가 안 돼 있다는 뜻이다.
북 핵미사일 시험 재개 명분 준 트럼프
트럼프는 이렇게 중국이 제1 단계로 제시했던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 중단과 미국의 대북 압박용 한미합동군사훈련의 동시 중단을 뜻하는 ‘쌍중단(雙中斷) 중재안’을 거부해 왔다.
그런데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은 트럼프가 이제 콧대를 한껏 낮춰 중국이 제2단계로 제시한 북한의 ‘비핵화’와 ‘북미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이른바 ’쌍궤병행(雙軌竝行)’ 중재안까지 받아들이자, 다시 한 번 북미 중재자로 나서서 쑹 특사를 평양에 보낸 것이다.
트럼프는 이제 푸틴의 도움이 필요 없어 예정돼 있던 푸틴과의 회담을 취소했고, 쑹 특사 방북 발표를 듣고 “큰 움직임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며 흥분했다. 북한이 자기 뜻대로 움직일 것으로 오판한 트럼프의 무지가 들어나는 대목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쑹 특사가 미국이 반기지 않는 ‘북중 관계 회복’만 성공시키고 미국이 기대했던 쌍중단, 쌍궤병행 등 조건은 북한에 거부당한 체 돌아왔다. 트럼프는 곧바로 11월 20일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했다. 아직까지 북한이 원인이라는 과학적 증거가 전무한 김정남 사건과 웜비어 사망 사건을 이유로 내세운 것이다.
미국의 일각에서는, 이번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이 북한을 자극해 70일 가까이 조용히 지내고 있는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을 재개할 명분을 준 게 아닌가 염려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을 계속 적대할 때, 그 결과는 요격이 불가능한 무기 체계로 미 본토 주변을 공격, 미국의 입지를 더욱 좁힐 것이라는 게 군사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금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일시 중단 등 머뭇거리는 듯한 자세를 ‘미국의 무력 압박이 두려워서’라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핵무력 완성시일인 금년 말 이후 미국 및 그 추종 국가들은 큰 낭패에 봉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북한은 미국이 지난 수십 년간 대북 관계에 실패를 거듭한 시간을 활용, 핵무기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이제는 미국이나 중국의 군사력을 우습게 보는데다, 트럼프마저도 몸이 달아 북한과의 대화에 목을 매는 등 세상은 예상을 넘어설 정도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북한을 제대로 알아야 미국도 그 추종국들도 다가오는 새해에 전쟁 없는 세상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의 알맹이 없는 ‘중대 발표’
한편, 트럼프는 11월 15일, 아시아 순방 직후 백악관에서 ‘중대 발표’를 한다며 허풍을 떨었다.
결과는 엄청난 거짓말에 알맹이가 없어 북미 간 전쟁이냐 평화냐의 갈림 길에서 초미의 관심을 지녔던 수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그는 “시진핑 주석도 ‘쌍중단' 합의를 수용할 수 없다는 점에 동의했다”며 기자들을 바보로 아는 듯 곧 들통 날 거짓말을 했다.
시진핑을 통해 ’쌍중단‘도 ’쌍궤병행‘도 좋다며 제발 북한에 자기 뜻을 전달해 달라고 매달린 트럼프의 입에서, 이런 거짓말이 나오는 걸 본 시진핑은 기가 찼을 것이다.
다음 날 중국 외교부는 “해당 구상(쌍중단)은 현재 가장 실현가능하고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트럼프의 말이 거짓임을 점잖게 폭로했다.
트럼프는 미국의 유명한 예일대학의 역사학자 폴 케네디 교수가 "미국도 과거의 많은 강대국과 마찬가지로 흥망성쇠의 운명은 피할 수 없으며, 이미 황혼기에 접어들었다"고 지적했음을 새겨들어야 한다.
이제 미국의 실익에 반하는 허세보다는 북한을 적대시해 온 정책을 포기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현실성 있는 대안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게 미국을 위한 차선책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