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차주범 칼럼니스트
명절의 최대 미덕은 늦잠자는 자유다. 근심을 덜어놓고 나 혼자 차차차 떡잠을 때리고 일어났다. 얇아진 순대를 채우려고 라면을 끓였다. 특별한 날이니만큼 삶은 달걀 한 개도 투척했다.
남아있던 찬밥 반 그릇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단무지를 반달 모양으로 썰어 접시에 예쁘게 정렬하고 김치도 준비해 풍성한 식탁을 완성했다. 식도를 알싸하게 넘어가는 라면 국물에 말은 고슬고슬한 밥알갱이가 삶의 지속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창자를 채운 후엔 밖으로 나갔다. 초유명 브랜드 던킨 도넛에서 커피 한 잔을 사 아파트 벤치에서 홀짝였다. 눈부시게 맑은 하늘이 선사한 낭만과 아직도 삼일을 더 놀 수 있으면서 먹고 살 수 있는 현실이 마음을 푸근하게 했다.
부족함이 전혀 없는 럭셔리한 고품격 추수감사절이다.
추수감사절은 종교 갈등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청교도의 풍습에서 유래한다. '신대륙'이라 멋대로 작명한 구대륙은 그들에겐 기회와 도전의 땅이었다. 첫해 겨울엔 기아에 허덕였으며 사망자가 속출했다. 인근에 거주하던 '인디언'이라 멋대로 작명한 원주민 부족의 도움으로 겨우 연명했다.
이듬해 다행히 원주민에게 배운 경작법으로 옥수수를 재배해 큰 수확을 거두었다. 청교도들은 3일 동안 추수를 감사하는 축제를 벌였다. 생명의 은인인 원주민을 초대해 추수한 곡식과 야생 칠면조로 식탁을 꾸미고 대접했다.
그들의 식탁은 살아남은 자의 안도, 추수한 곡식이 주는 만족과 여전한 미래에 대한 불안의 혼합이었을 것이다.
이것을 미국에선 추수감사절의 기원(起源)으로 여긴다. 사람이 사람을 보살피고 함께 나누는 아름다운 전통의 시작이었다. 원주민이 이민자를 호혜(互惠)의 정신으로 대우한 인간적인 문화의 출발이기도 했다.
2017년 오늘의 추수감사절은 심란하기 그지없다. 현재의 미국은 초기 개척기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슈퍼 강대국의 풍요를 과시한다. 겉으로 보기에만 그렇다. 작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추수감사절 식탁에는 순간의 만족과 지속되는 불안이 교차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추수(秋收)할 게 별로 없다. 한 줌의 소수가 너무 많은 부를 독점하는 양극화 시대다. 보통 사람들은 상실과 결핍에 늘상 시달린다. 사람이 사람을 탄압하고, 사회안전망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각자도생(各自圖生)의 냉정한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의 광경이다.
"통제 안 받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일 뿐", "교회가 손에 흙 묻히는 것 주저 말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설파했던 통찰과 의견에 깊이 공감한다.
트럼프 행정부 이전부터 추수감사절은 숱한 이민자 가정에겐 슬픔의 명절이었다. 트럼프때문에 사람들이 몹시 그리워하는 오바마가 집권한 기간 동안 이미 2백만 명이 넘게 추방됐다.
트럼프는 현재 망나니 칼춤을 추며 전방위로 이민자를 압박하고 몰아내지 못해 안달이다. 가족 생이별의 아픔을 확인해야 하는 추수감사절의 식탁은 가슴을 아릿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지만 전통은 이어져, 추수감사절의 풍습은 되풀이된다. 현실은 아프고 미래는 흐리지만 우리의 삶은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간다.
오늘은 가족 구성원들이 그야말로 식구(먹을 食, 입 口) 임을 확인하는 날이다. 또는 지인들과 정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날이다. 오늘 하루만은 사람들이 불안을 잠시 접어두고 따뜻한 밥 한 끼라도 위장에 넣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지인의 저녁 초대를 받았다.
해피 땡스기빙 에브리원~~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차주범의 We Are A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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