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의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34)

 

 

Newsroh=강명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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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에 들어와서 계속 ‘백만 송이 장미’라는 러시아 민요가 머리에 떠오르다가 오늘 제목을 이렇게 뽑았다. 발칸의 붉은 장미 불가리아는 세계 최대 장미 산지이다. 최고의 장미 오일의 산지이기도 하다. 장미 오일의 1 킬로그램이 황금 1.5 킬로그램에 맞먹는 가격으로 거래가 된다고 하니 놀랍다. 전 세계적으로 향수와 에센스에 쓰이는 장미의 80%가 불가리아에서 생산된다. 불가리아는 우리에게 알려진 것이 별로 없는 만큼 신비로운 것도 많다. 신비의 장막을 걷으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장미(薔薇)는 푸르른 6월 하늘 아래 붉은 꽃망울을 피워내며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이 바람에 날리는 향기마저 천상의 냄새이다. 곱고 부드러운 살결은 슬그머니 피부에 가져다 대고 싶기도 하다. 교태(嬌態)가 넘치는 것이 우아하기까지 해서 스스로는 꽃 중에 여왕이 되었고 많은 예술가의 혼을 자극한다. 그런 것이 여자의 마음을 흔드는 데 최고의 수완을 보인다. 장미로 인해 말주변 없는 남자도 마음을 표시할 수 있었다. 덕분에 인류는 더 많은 사랑을 나누어왔고 그래서 더 자손이 번성했는지도 모르겠다.

 

장미의 선홍의 색은 19살의 나이에 사랑에 뛰어들어 두근두근 뛰던 나의 심장의 색과 같고 그 향기는 완행열차를 타고 경춘선을 타고 갈 때 스쳐오던 그녀의 체취처럼 정신을 몽롱하게 만든다. 겹겹이 싸인 많은 꽃잎 속에 삶과 사랑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 것 같고, 뾰족한 가시는 이루지 못한 첫사랑처럼 아프다. 나는 지금도 달리는 순간순간 6월의 푸른 청춘의 어느 날 장미꽃다발을 내밀던 떨리는 손길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장미오일 한 방울 만드는데 1000장의 장미 잎이 필요하고 장미오일 1kg 추출하려면 장미 송이 3천 톤이 사용된다니 한반도에 작은 평화를 추출하는 것에 얼마나 많은 촛불의 촛농이 필요한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1만6천km를 달리는 나의 발자국 수만큼 필요하다면 참 좋겠다. 그것으로 부족하다면 붉은 장미 백만 육천 송이를 더하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석”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달려갈 발자국을 선으로 이으면 유라시아 대륙에 목걸이를 건 형상이 된다. “평화의 진주목걸이.” 그렇다 그 길이 평화의 진주목걸이가 되어준다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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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잔구크에 ‘장미의 계곡’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이 계곡은 불가리아를 동서로 130km에 걸쳐 펼쳐져 있다. 해발 30~710m에 분포하며 북쪽은 1,600m 이상 높이의 발칸 산맥이 겨울에 남하하는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고, 남쪽 산지에는 출구가 있어서 지중해의 온화한 공기가 계곡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온화하고 강우량이 적당하다고 한다. 장미는 차갑고 밝은 것을 좋아하는 성질을 가졌다. 땅이 비옥하고 수분이 충분해야한다. 이곳의 장미는 독특한 지리적 요인과 기후 조건 덕분에 꽃잎이 얇다.

 

불가리아는 1270년 시리아의 다마스쿠스 장미를 도입해서 알맞은 기후 덕분에 16세기에 좋은 장미수를 얻는데 성공했다. 1680년 이후부터 불가리아의 장미는 대부분 장미 오일을 만드는 데 이용되고 있다. 18세기 중엽부터 장미 오일은 오스만 제국의 이스탄불의 해운을 통하거나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 오스트리아의 빈을 거쳐 유럽으로 수출되고 있다.

 

나는 이곳 불가리아에서 장미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불가리아에 들어오기 전 세르비아에서 부터였다. 장미보다도 더 붉은 통일의 열정을 가진 가족들이다. 이 통일 가족을 총 지휘하는 마에스트로는 가진이 할머니다. 가진이 할머니의 조부 때부터 독립운동을 한 독립군가족이다. 증조부는 만석지기였는데 대대로 종으로 있던 사람들에게 땅을 10마지기씩 나누어주고 면천(免賤)을 시켜주었다고 한다. 내가 이 가족의 불가리아 집을 방문했을 때 마당 한쪽 벽에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 무효’라는 큰 구호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우리 역사가 진구렁으로 빠지기 시작한 해이다. 이 집을 살 때 토지대장에 1905년 지어진 집임을 확인하고 바로 샀다고 한다. 창문에는 ‘평화’라는 글자가 들어간 액자가 세워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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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는 장미를 평화의 마음을 담아 평양에 보내는 것은 어떨까, 소피아 분지를 달리는 내내 ‘백만 송이 장미’를 흥얼거리며 생각해본다. “옛적에 한 화가가 살았네... 집과 캔버스를 가지고 있었네... 어느 여배우를 사랑했다네... 그녀는 꽃을 좋아했지. 그녈 위해 집을 팔고 그림과 모든 것을 팔았지. 그 돈으로 샀다네... 꽃의 바다를, 수백만 수백만 빨간 장미....” 모든 걸 다 팔지 않아도 무기를 살 돈의 극히 일부만 가지고도 수백만 수천만의 빨간 장미에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전하면 어떨까, 안타까운 마음에 자꾸 생각해본다.

 

남북통일은 지나간 옛사랑을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저녁 달빛 창가에서 목이 터져라 세레나데를 부르고 백만 송이 장미로 꽃의 바다를 만들어서라도 이루고야 말 운명적인 사랑이다. 남북통일은 오랜 기간 분단된 이질적인 것들을 한군데 버무려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담대한 도전이요, 이 시대의 최고의 과제이기도 하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고 화합하고 때론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은 덮어가면서 따뜻한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는 것이다. 그 운명적인 사랑을 위하여 휴전선의 철조망을 걷어내고 수백만 수천만 빨간 장미를 장식하며 평화를 구애(求愛)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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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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