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속 중국 문화 즐기기
롱 1919, 태국어로 ‘롱’은 ‘정미소’를 뜻한다. 즉 한국말로 하면 이곳은 ‘정미소 1919’가 되는 셈이다. 전체적인 공간은 모두 세 번에 걸쳐 리노베이션 된 곳이다. 최초에 이 장소의 목적은, 중국에서 도착하는 모든 물건들이 하역되는 곳이었다. 2층으로 지어진 맨 안쪽 건물이 원래부터 있었던 건물로 약 최소 200년 이상된 건물이다. 중국에서 태국으로 건너온 상인들이 머물면서 아래층에 물건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일종의 ‘샵하우스’였던 이곳은 라마 4세때부터 운영되던 곳이었다고 한다.(라마4세 1851-1868)
당시 중국과의 무역은, 우선 중국에서 배로 들여온 물건들을 하역하면 시암국(태국의 옛 이름)의 왕이 직접 보낸 신하들이 물건을 검사하고 그중에서 가장 좋은 물건들을 먼저 선점하고 나면 이후에 상인들이 일반 장사꾼들에게 판매할 수 있는 구조였다고. 이렇게 판매되는 물건들은 도자기, 금속 장신구 등 다양했으며 이렇게 들여온 물건들이 이후 유럽과 아시아의 다른 지역으로 보내졌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에게 1919년은 매우 중요한 해로 가슴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태국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계 가족 중 하나인 ‘왕리’(Wanglee : 중국어로는 ‘홍리’) 가족에게도 1919년은 매우 뜻 깊은 해이기도 하다. 현재의 롱 1919 전체를 구입하게 된 해이기 때문이다. 왕리 가족은 1919년 이곳을 사들이고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하게 된다. 샵하우스였던 이곳이 ‘정미소’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태국에서 생산되는 상당수의 쌀이 이곳으로 배로 옮겨져 탈곡을 하고 다시금 중국을 비롯한 다양한 아시아 곳곳으로 수출하게 된 것이다. 당시에도 꽤나 부자였던 왕리 가족은 이곳을 정미소로 바꾸고 난 후 더욱 큰 성공을 맛 보았다고 한다. 지금도 태국 상류사회의 한 축이기도 한 ‘왕리’가족의 번성은 이때부터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이곳의 이름도 ‘롱 1919’로 짓게 되었다는 관계자의 설명이다.
근대 중국인들이 태국으로 이주하는데 있어 첫번째 관문이 바로 이 부근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근처에는 바다의 수호신으로 불리는, 어부들의 풍어와 바다 여행자들의 무사안일을 도와주는 해신을 모신 ‘마주(Mazu)사원’이 설치되어 있다. 사원 앞마당에는 넓은 잔디밭이 있어 쉬어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롱1919를 방문하게 되면 꼭 ‘마주사원’도 함께 방문해 보자.
약 6,800평방미터 크기의 부지는 마치 디귿자 모양의 건물로 둘러쳐져 있다. 짜오프라야강을 바라보며 강변쪽이 트인 건물의 모양은 마치 양팔을 벌리고 강의 힘을 한껏 받아들이는 모양을 하고 있다. 2층 건물들로 이어져 있는 오래된 건물은 모두 3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번째 구역은 오리지널 건물로 200년이 넘도록 이곳에 세워져 있는 건물이다. 한동안 방치(?)되어 있던 이곳은 최근 들어 뭔가 새로운 개발을 위해 문을 열었다가 자체적으로 유명 건설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왕리’ 가족의 건축회사 PIA에 의해 벽에 새겨진 그림과 글씨들이 발견되어진다.
자칫하면 그대로 부서져 콘도나 쇼핑몰이 지어졌을 이곳이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은 이 발견이 크게 한 몫을 하게 된 것이다. 1세대 건물 내외부 벽면과 기둥에 새겨져 있던 벽화들이 ‘롱1919’를 존재하게 한 역할을 한 셈이다. 1세대 건물에 이어져 붙여진 중간 건물은 현재도 여러 공사가 진행중이다. 곧 2층에도 다양한 샵 하우스가 오픈할 예정이라고.
마지막 3세대 건물은 완전히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다. iBerry에서 운영하는 태국 전통 음식점을 비롯해 각종 연회와 전시 그리고 이벤트가 열리게 될 전시 공간도 새롭게 지어졌다. 현재까지 롱1919는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관계자에 따르면 아마도 곧 입장료를 징수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조금 서두른다면 입장료를 내기 전에 먼저 무료로 내부 시설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찾아가는 길
(MAP 지도 참조)
페이스북 주소 : https://www.facebook.com/LHONG-1919
문의전화 : 091 187 1919
(기사/사진 김종민)
로그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