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장기풍 칼럼니스트
아침 첫 배로 거문도를 떠나 여수에 도착했다. 여수에서 버스를 타고 순천으로 향했다. 섬은 아니지만 3년 반 전 70일 배낭여행할 때 아쉽게 지나쳤던 갈대밭을 걷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오후 내내 순천만 국가정원과 순천만 연안습지 갈대밭을 걸었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국가정원은 온갖 화초와 테마파크 습지(濕地)와 꽃밭 사이에 보도를 만들어 관광객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국가정원을 둘러 본 나는 국가정원에서 스카이큐브라는 모노레일을 타고 순천만 연안습지를 찾았다. 이곳은 영화촬영지로도 많이 이용되는 이른바 춘천만 갈대밭이다. 세계 5대 연안습지로 손꼽힌다. 개발논리에 밀려 사라져갈 뻔했던 갯벌을 환경단체들의 끈질긴 투쟁과 노력으로 되살린 곳이다. 전체면적이 28㎢에 달하는 순천만 습지는 갯벌이 22.6㎢, 갈대밭은 5.4㎢ 규모다. 순천만 생태박물관 순천만 천문대, 자연의 소리 체험관, 용산 전망대, 문학관, 무진교, 갈대데크 등 각종 생태관련시설이 있어 국내외 수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순천만은 2003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이후 연안습지로서는 최초로 2006년 '람사르 협약'에 등록됐고 지난해는 유럽연합 공공조직 ‘그린 데스티네이션’에서 '지속가능한 생태관광지 100선'에 선정되어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천연기념물 228호로 보호받는 흑두루미는 1990년 불과 70여 마리가 관찰되었는데 갯벌이 보존된 지금은 해마다 천 마리가 훨씬 넘는 흑두루미가 시베리아에서 날아오고 있다. 또한 갈대밭 한 쪽에는 불그스레한 칠면초(七面草) 군락지도 있다. 칠면조처럼 색이 변한다 해서 이름 지어진 칠면초는 줄기와 더불어 몸 전체가 붉은색을 띠어 갯벌을 붉게 물들여 초록에서 갈색으로 변하는 갈대와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또한 이곳은 흑두루미, 재두루미, 황새, 저어새, 검은머리물떼새 등 국제적인 희귀조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11종을 비롯해 청둥오리 도요새 등 140여 중이 번식하거나 날아들어 세계 5대 습지 가운데 희귀 조류가 가장 많은 지역으로 꼽힌다.
갯벌에는 짱뚱어라는 물고기가 서식하는데 간조(干潮) 때는 갯벌을 살금살금 기어다니며 먹이를 찾고 만조 때에는 갯벌에 굴을 파고 숨어 있다. 공기로 호흡해 육지와 바다를 오갈 수 있는 한 뼘 길이의 짱뚱어는 순천만 명물로 짱뚱어탕을 파는 음식점이 많다. 머리와 몸의 앞쪽은 원뿔 모양의 작은 돌기로 덮여 있고 그 외는 매우 작은 비늘로 덮여 있다. 머리는 크고 위아래가 납작해 머리의 나비가 몸의 나비에 비해 넓다. 한마디로 괴물같이 생긴 물고기가 뻘 흙을 헤치고 분주히 드나드는 모습이 신기했다. 나는 짱뚱어탕에 호기심은 당겼지만 시식해보지는 못했다. 다만 추어탕 같은 느낌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이밖에도 식당마다 매생이국을 파는 것이 이 역시 남해안 명물인 것 같다. 매생이국은 한국을 떠나기 며칠 전 들른 왜관수도원에서 먹어보았다. 입에 넣는 순간 바다냄새 같은 향이 정겨운 느낌을 준다. 장모가 ‘미운 사위’에게 끓여준다는 우스개가 있다. 아무리 펄펄 끓여도 김이 나지 않아 멋모르고 한 수저 입에 넣으면 입천장을 덴다는 것이다. 그래도 사위에게 일부러 입천장 데게 할 장모님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순천 갈대밭을 테크를 따라 몇 킬로를 걸었다. 갈대밭에는 수많은 연인과 부부들이 사진 찍기에 바빴다. 나는 여태 혼자 배낭여행하면서 외로움을 느끼지 못했다. 함께 동반할 사람도 마땅치 않지만 여기저기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는 데는 혼자가 편했다. 그런데 이날 쌍쌍이 갈대밭 속에서 다정히 속삭이며 걷는 모습을 보면서 진한 외로움을 느꼈다. 혼자 걷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이다. 갑자기 미국의 아들 딸 며느리 손주들이 보고 싶고 남녀노소 누구라도 붙잡고 이야기 하고 싶어졌다. 오랜 세월 배낭여행에서 처음 겪는 일이다. 이날 아침 파주에 사는 동생이 손자를 낳았다고 소식을 전해 준 때문인지 모르겠다. 나는 실없이 사진 찍는 사람에게 자청해서 남의 사진 몇 장 찍어주었지만 대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늙은이가 주책없이 그들의 데이트만 방해한 셈이다.
혼자 하염없이 갈대밭 테크를 끝없이 걷다 다시 순천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길에서 반바지 작업복 차림에 무거운 전문 카메라를 짊어진 외국인이 순천가는 버스 정류장을 묻는다. 나도 찾아가는 길이라고 하니 따라 나선다. 동양 여인이 함께 하고 있어 한국 사람이냐고 물으니 말레이시아 사람으로 남편은 호주 사진작가라는 대답이다. 택시들이 많이 대기하는 데 굳이 버스를 기다리는 그에게 당신도 BMW 여행족이냐고 농담하니 남자가 정색하며 BMW 탈 형편이 못 된다고 했다. 내가 버스 메트로 걷는 여행이라고 설명하자 그제야 깔깔대며 웃는다. 그 바람에 외롭고 우울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하찮은 농담도 분위기를 바꾸는데 요긴한 법이다. 나는 이들과 순천에서 헤어지고 곧바로 시외버스로 고흥으로 떠났다, 다음날은 소록도 국립병원과 연흥도에 갈 계획이다. 고흥도에서 마침 깨끗하고 값싼 모텔이 있어 저녁식사 후 하룻밤 편하게 쉴 수 있었다.
<계속>
*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빈무덤의 배낭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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