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권의 브로커 겸 ‘경제적 대리인’(economic agent)로 활동해온 것으로 알려진 이스트우드 거주 한인 남성 최 모씨가 연방경찰(AFP)에 체포됐다. 그에게는 호주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법(Weapons of Mass Destruction Prevention of Proliferation) 2개 조항 위반, 유엔(United Nations)과 호주가 채택한 대북제재 사항을 포함한 여섯 가지의 위법행위 혐의가 적용됐다. 사진은 최씨의 체포 사실을 발표하는 AFP 닐 고건(Neil Gaughan) AFP 부청장(사진은 페어팩스미디어 뉴스 영상에서 캡처).
이스트우드 거주 최 모씨... AFP, 10여 년간 조사 이어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 WMD) 및 미사일유도 기술 수출을 돕던 한국계 호주인이 이스트우드(Eastwood)에서 체포된 사실이 알려졌다.
금주 월요일(18일) 시드니 모닝 헤럴드 등 호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연방경찰에 체포된 남성 최모씨(59세)는 북한 정권의 브로커 겸 ‘경제적 대리인’(economic agent)로 활동해왔으며,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을 도운 것으로 드러났다.
최씨는 한국 출생으로 호주에서 30년간 거주해왔으며, 현재 호주 시민권자로 그의 자택은 이스트우스 퍼스트 에비뉴(First Avenue) 상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호주 연방경찰(Australian Federal Police, AFP)은 캔버라에 주재했던 주호주 북한대사관이 문을 닫은 해인 2008년부터 그의 활동을 조사해왔다.
그러다 올해 초 AFP는 한 해외 정보원으로부터 최씨의 활동과 관련한 첩보를 제공받았고, 몇 달간 그를 주시해오던 중 최근 북한의 미사일 부품 판매를 시도한 그의 행적을 발견, 이스트우드 자택에서 그를 체포했다.
최씨는 애국심을 내세워 북한정권에 자금 모금 활동을 해왔으며, 미사일 부품 등의 판매 외에도 북한의 석탄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지의 비정부 기관에 판매하려고 시도하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닐 고건(Neil Gaughan) AFP 부청장은 “만약 이번 거래가 성사됐을 경우 북한이 수천만 달러를 벌었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는 또한 북한 외 지역에서 미사일 개발 기술을 가르치는 기술 전문가를 양성할 계획으로 올해 8~12월 사이 북한과 탄도 미사일 생산 시설을 설립할 계획도 논의하고 있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AFP에 따르면 최씨에게는 △1995년 실행된 호주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법(Weapons of Mass Destruction Prevention of Proliferation) 상의 두 가지 조항을 위반, △유엔(United Nations)과 호주가 채택한 대북제재 사항 포함한 여섯 가지의 위법행위 혐의가 적용됐다.
이와 관련해 최씨의 친척들도 함께 조사 대상으로 지목됐다.
고건 부청장은 “해당 혐의로 체포된 경우는 이제까지 호주 내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놀라움을 표했다.
AFP는 “최씨가 누구 밑에서 일을 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나, 북한의 고위 간부들과 연락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히면서 “그는 ‘스파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고건 부청장은 “대량살상무기나 미사일 부품이 수입되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돼 호주에 안보 위협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이번 사건은 지하 암거래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의 ‘101’(아주 기본적인) 수준”이라고 언급한 뒤, “모든 매매활동은 호주 밖에서 이뤄졌으며, 벌어들인 수익을 전부 북한 정부에 전달하는 것이 최씨의 목적이었다”고 덧붙였다.
이스트우드 자택에서 경찰에게 체포되어 나오는 최 모씨. AFP는 10여 년 전부터 그의 활동을 조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지난 일요일(17일), 말콤 턴불(Malcolm Turnbull) 총리는 앤드류 콜빈(Andrew Colvin) 호주 연방 경찰청장과 함께 미디어 브리핑을 갖고 “매우 심각한 사건”이라며 “북한정권을 도우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AFP가 반드시 찾아낼 것”이라고 경고했다.
턴불 총리는 이어 “북한은 UN의 제재를 무시하고 석탄 등의 물품을 판매하는 것 뿐 아니라 무기와 마약을 밀매하고 사이버 범죄도 저지르고 있다”며 “북한은 전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매우 위험하고, 무모한 범죄정권”이라고 비난했다.
페어팩스미디어(Fairfax Media)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북한정권이 현금부족을 겪고 있으며, 북한 대사관들이 불법 마약 거래에 앞장서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호주 안보 자문위원인 닐 퍼거스(Neil Fergus)씨는 “북한이 전 세계에 불법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며 “오랜 세월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북한과 핵무기 부품 및 기술 등을 거래해온 수많은 인력들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이어 “(최씨의 경우와 같이) 오랜 기간 시드니에 거주하면서 북한정권의 ‘경제적 대리인’으로 활동하는 일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로위 인스티튜트’(Lowy Institute)의 유안 그레이엄(Dr. Euan Graham) 국제안보연구부장은 “한국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전 세계 지역에 북한과 연계돼 활동하거나 잠복 중인 네트워크가 있다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전 영국 정부의 대북 고문관이었던 그레이엄 박사는 “북한은 이전에도 중동지역을 거점으로 미사일 기술을 판매한 적이 있으며, 특히 지난 2003년 4월, 호주로 125킬로그램의 헤로인 마약을 밀반입하려다 적발된 북한 화물선 ‘풍수호’ 사건으로 북한의 불법행각은 더 극명해졌다”고 덧붙였다.
호주와 북한의 외교관계는 불안한 역사를 이어왔다. 1970년대 중반 캔버라(Canberra)와 평양에 각국의 대사관이 있었으나, 북한은 1975년 11월 주호주 북한대사관을 철수했다.
이후 1990년대 북한이 호주와 직접적인 연락을 취하기 시작하면서 2000년 5월 호주는 중국 베이징(Beijing)에 소재한 주중 북한대사관을 통해 외교관계를 재개하게 됐고, 2002년 5월 캔버라에 주호주 북한대사관이 다시 개관했다가 2008년 1월 또 다시 문을 닫았다.
김진연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