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roh=이계선 칼럼니스트

 

 

8월인데도 성탄카드를 걸어 놓고 있는 병원이 있다. 내가 치료받으러 다니는 파킨슨병원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란 영화가 있다더니? 살짝 열어보니 3년이나 묵은 카드다. 와! 원장박사님은 멋쟁이구나. 우리 어머니 이은혜권사님이 그랬다. 아들이 보낸 크리스마스카드를 1년동안 걸어놓고 매일 메리크리스마스를 즐기셨다. 101세에 돌아가셨지만. 그래서 그런지 나는 오래오래 견딜수 있는 크리스마스카드 만들기를 좋아한다.

 

2017년의 돌섬카드 만들기.

은범이가 막대기로 모래사장에 일필휘지(一筆揮之) 하자 모래위에 새겨진 성탄휘호.

“Have Rockaway X-Mas 돌섬 17”

 

하얗게 몰려오는 파도가 모래위의 글씨를 덮어버릴 찰나. 얼른 찰깍! 했더니 카드1면 그림이 완성됐다. 2면에는 생각나는 사람을 적어봤다. 산사람은 물론 죽은 막내동생 사촌형 매형까지 적다 보니 300이 넘는다. 이름을 불러본다. 그리운 이름들이다. 이름마다 대화체 단시(短詩)를 적어보낸다. 300명이 각각이라서 무슨말을 썼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답장카드나 주소불명으로 돌아온 카드를 열어보면 내가 이렇게 썼구나.

 

“한번 슬쩍 만났을 뿐인데 시간 갈수록 가까워지는 이름 서인실’ 이라는 표현이 어찌 마음을 찡하게 하는지요”-나성 크리스챤투데이 편집국장의 답장카드에

 

“천재여 천재여/ 그래도 나는 그대가 부러우니…”-- 되돌아온 크리스장에게 보냈던 단시.

 

“아프리카의 여우사냥꾼/ 여우 목도리를 걸치니 더 이쁘구나”-상담소장도 주소불명.

 

3면에 꽃씨가 숨어있는 성탄메시지를 끼어 넣었다. 보통 꽃씨가 아니다. 네팔 아가씨들이 산을 타고 올라가 어렵게 따서 모은 꽃씨들이다. 11개의 고산중에 에베레스트를 비롯 9개고산을 자랑하는 네팔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악국가다. 국토는 남한보다 큰데 국민소득은 천불미만. 남자들은 등산객들의 짐을 옮겨주는 포터나 셀파라도 할수 있지만 여자는 돈벌이가 어렵다. 네팔 아가씨들이 뭉쳤다.

 

“금년 성탄절에는 우리가 일을 벌리는 거야요. 성탄절카드에 아름다운 히말라야의 꽃씨를 넣어 문명국으로 수출합시다. 돈도 벌고 히말라야선전도 되고 꽃씨가 자라 꽃이 피고 약초가 되면 얼마나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가 되겠어요?”

 

네팔아가씨들은 히말라야의 고산준령(高山峻嶺)을 오르내리면서 꽃씨를 따 모았다. 얇은 미롱지에 풀을 먹인다. 그 위에 꽃씨를 뿌린후 미롱지 한겹을 더 덮어 말렸다. 신사임당이 고려지 만드는 드라마 장면과 비슷하다. 마른후에 가위로 김 자르듯 잘라서 카드에 끼워넣으면 완성이다. 아기 손바닥만한 성탄카드메시지 종이에 4알정도의 꽃씨가 숨어있다. 크리스마스 카드를 감상한후 꽃씨가 숨어있는 얇은 종이를 화분에 묻어두거나 흙속에 던져 버린다. 성탄절 지나고 새해가 밝아오면 카드꽃씨가 하얗게 꼼지락거리면서 모락모락 올라온다. 히말라야에서 날라온 꽃씨 아가씨들처럼 얼마나 아름다울까?

 

금년 크리스마스카드는 발송이 좀 늦었다. 보통 11월에 받아보게 했는데 금년에는 12월이 돼서야 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배달사고가 나버렸다. 뉴욕의 3대일간지에 돌섬카드가 전면광고로 나 버린 것이다. 반응3색(反應三色)

 

“등촌형님, 부자 되신걸 축하합니다. 뉴욕의 한국일보 중앙일보 뉴욕일보에 형님의 성탄절카드가 전면광고로 실렸더라구요. 개인의 성탄카드를 일간신문 3개에 그것도 대형전면광고로 낸 일은 이민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일겁니다. 재벌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형님께서 1억불짜리 로토에 당선된건 아닌지요?”—롱아일랜드 노인아파트 건달.

 

“신문에 친구이름을 새겨넣으시고 제 이름도 있는 것을 보고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목사님덕에 교인들에게 인사도 많이 받았어요. 완전히 신문 한면을 친구에게 보내는 성탄카드로 메웠으니 광고비가 어마어마하게 나왔을 텐데? 아무튼 목사님 아이디어는 성탄절 트리의 불빛처럼 반짝인다니 까요.”-후러싱 미녀시인

 

“일간신문 3곳에 목사가 성탄카드를 전면광고로 내다니? 엄청난 광고비를 홈리스들에게 쓸거지 그게 무슨짓이오” -상해임정출신 애국지사(?)

 

욕도 얻어먹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재벌목사로 대우 받았으니 부자가 된 기분이었으니까. 난 간판이나 허례허식을 사양하는 편이다. 딸을 시집 보내면서 청첩장은 커녕 석줄짜리 신문광고 하나 내지 않았다. 10년넘게 기독문학회에 관여해왔는데 행사장에 프래카드나 걸개그림을 걸지 못하게했다. 그래도 기독문학의 르네쌍스는 그때 그 시절이었다.

 

난 돈 들어가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돈 내고 하는 골프보다 진종일 걸어도 일전 한푼 안 드는 걷기운동을 좋아한다. 그런 노랭이가 돈 내고 그것도 전면광고를 낼리가 없다.

 

나를 동키호테의 풍차처럼 하늘높이 띄워준 흑기사가 있다. 맨해튼의 세무사 일공(一空)이다.

서울대에 다니는 천재는 피타고라스의 수학원리로 빠칭코의 도박원리를 격파하겠다고 카지노에 도전한다. 이세돌이 알파고와 대결하기 50년전일이다. 백전백패. 이번에는 신앙으로 도박대결을 벌린다.

 

“하나님 제가10만원을 걸고 도박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이번 도박에서 10만원을 따게 해주시오. 그러면 제가 하나님을 믿겠습니다”

 

드르륵 꽝! 귀신 환장할 일이 일어났다. 십만원짜리 대박이 터진것이다. 60년대 10만원은 한학기대학등록금 이었다. 그는 빠칭코를 버리고 그리스도에게 도박을 걸었다.

 

전도와 봉사 구제에 미친 일공은 괴짜기독인이다. 그의 영적체험은 스웨덴벅수준이요 성경실력은 목사급이다. 요셉처럼 꿈에서도 하나님의 계시를 믿는 어린아이 신앙이다. 신비주의자는 이단 사이비로 빠져 망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일공과 수지는 손대는 일마다 수지가 맞는다. 수지는 일공의 처다. 일공과 수지가 모래위에 그린 “17 돌섬성탄카드”를 하늘높이 띄워준것이다. 크리스마스 카드 발송을 끝내고 카드가 그려진 모래밭으로 나가봤다. 파도에 씻겨내려가 한글자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내가 중얼거렸다.

 

“여보, 일공선생이 광고로 높이 띄워주지 않았으면 썰물파도에 모두 밀려나가고 말았을 거야요”

 

집에 돌아와 보니 나성에서 임승우가 보낸 회신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목사님! 내생애에 가장 멋진 성탄카드를 받고 감동을 먹었습니다….저도 이세상에서 만난 수많은 선후배 친구중에 목사님과 사모님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종이채 심어놓은 화분에서는 어느새 히말리아의 꽃씨가 하얗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3신문 광고.jpg

뉴욕한국일보 뉴욕중앙일보 뉴욕일보에 전면광고로 실린 돌섬카드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등촌의 사랑방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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