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형(天刑)의 섬 낙원의 섬 소록도(3)

 

 

Newsroh=장기풍 칼럼니스트

 

 

지난 2016년 5월17일은 소록도병원과 한센인 정착촌이 생긴 100주년이었다. 소록도가 속한 전남 고흥군은 이에 맞추어 43년간 소록도에서 한센인들을 돌보다 2005년 고국 오스트리아로 떠난 ‘벽안의 천사’ 마리안느 스퇴거(82)와 마가렛 피사렛(81) 두 분을 노벨평화상 대상자로 추천하기로 했다. 두 분의 숭고한 뜻을 알리고자 설립된 (사)마리안마가렛(대표 김연준 신부)이 발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낙연 국무총리는 금년 8월 마리안느 마가렛 노벨평화상 범국민추진위원회 설립올 결정하고 위원장에 김황식 전 총리와 김정숙 여사를 명예위원장에 내정했다. 이분들이 도대체 누구길래 노벨평화상까지 거론되는가. 나는 소록도에서 만난 한센인을 통해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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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사진 YTN 캡처

 

 

1960년대 오스트리아 간호대학을 졸업한 마리안느와 마가렛 할머니는 20대 소록도에 정착해 43년 간 한센인들을 돌봤다. 이분들을 흔히 수녀로 부르고 있지만 수녀는 아니다. 그리스도왕 시녀회라는 단체 소속인 평신도 신분으로 서원하고 복음정신에 따라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분들이다. 두 분은 한국에서 한센인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거의 없었던 60년대부터 그들을 위해 모국에서 보내준 의약품과 지원금으로 주거환경 개선, 장애교정 수술 주선, 물리치료기 도입 등으로 한센인들의 재활과 정착 그리고 계몽에 힘썼다. 그 공로로 정부의 국민포장(1972), 국민훈장 모란장(1996)을 받았다. 이들은 한센인 인권회복이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자신들의 나이가 70세가 넘자 2005년 11월 “늙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어 부담이 될 때는 떠나야 한다”는 편지 한 장 달랑 남기고 남몰래 소록도를 떠났다. 자신들이 떠나는 것에 주민들의 아쉬움과 부담을 줄 것을 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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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대화를 나눈 한센인 노인은 이들이 떠난 그날도 평소처럼 약을 타러 마가렛 사무실을 찾았으나 갑자기 사라진 것을 알고 무척 당황했다고 한다. 그분들이 홀연히 사라진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주민들은 한동안 두 분을 그대로 보낸 자책감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상실감이 무척 컸다는 것이다. ‘할매 수녀‘로 불리던 두 사람은 주민들의 친구이자 수녀요, 간호사요, 한 식구였다. 이들의 헌신적인 삶은 주민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직접 환자들의 고름을 짜내고 약을 바르는 등 몸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이 살던 사택은 일제시대 지어진 낡은 붉은 벽돌집으로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이들은 한국을 떠난 후 10년 이상을 다시 찾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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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5월14일 저녁 소록도성당 미사가 시작된 직후 은발의 한 외국인 할머니가 조용히 들어와 뒷자리에 앉았다. ’할매 수녀’ 마리안느 스퇴거(81) 할머니였다. 미사가 끝나서야 할머니를 발견한 참석자들은 탄성을 터트렸다. 몇몇 사람은 눈물을 흘렸다. 소록도 백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러 11년 만에 다시 찾은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다들 잘 계셨느냐"고 인사했다. 동료인 마가렛 피사렛(80) 할머니는 치매로 동행하지 못했다. 벽안의 두 천사는 의사 간호사조차 한센인을 '문둥병자'로 부르며 접촉을 꺼리던 시절 맨손으로 피고름을 짜내고 상처를 소독해주며 43년간 한센인 6000여 명을 헌신적으로 보살폈다. 이분들의 노벨평화상 추천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소록도 성당 측은 마리안느 할머니가 11년 만에 다시 오셨지만 이전과 변함없는 1주일을 보냈다고 전한다. 그녀는 소록도에 머무는 동안 성당 옆 작은 방에서 아침저녁 기도와 묵상(默想)을 하고 낮에는 한센인 환자와 의료진 등 그리웠던 지인들을 찾아보았다. 또 마리안느 할머니는 한센인 120여 명이 입원한 병동 2곳을 찾아 병상의 한센인들의 손을 일일이 잡았다. 한센인들은 "할매 보고 싶었어"라며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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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마리안느 할머니가 워낙 격식을 싫어하는 분이라 병원을 오가는 줄도 몰랐다. 그녀는 일주일 머무는 동안 계속 한센인들을 조용히 만나고 떠났다. 나와 대담한 한센인은 11년 만에 마리안느를 만난 것이 지금도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라고 말했다. 전라도 사투리가 유창했던 두 천사들은 특히 된장찌개를 즐겼다. 마리안느 할머니가 소록도에 다시 와서 처음 먹은 것도 된장찌개였다고 한다. 두 할매들을 40년 넘게 한국에 있는 동안 한국사람이 다 돼 고국에 가서도 한동안 젊은이들의 말을 못 알아들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두 분으로부터 받기만 하고 아무 것도 해드린 것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지난 해 신부가 대표로 있는 '사단법인 마리안느 마가렛'은 두 수녀의 삶을 재조명하는 12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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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센병 노인들과 장시간 대화를 나눈 후 병원 옆 기념품점에서 기념으로 한센인들이 만든 묵주를 구입하고 길건너 소록도 국립병원 한센병 박물관으로 갔다. 깨끗한 2층건물의 현대식 박물관은 소록도에 홀연히 나타난 신기루 같았다. 관람실에는 한센병 역사와 치료약 등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전시해 놓았다. 또한 소록도의 비참했던 역사와 실태 그리고 환자들의 유품과 신문기사와 문학작품까지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전시했다. 관람을 마치고 길에 나서자 조금 전 만났던 한센인이 소록도 직접 본 소감을 물었다. 나는 오랜 고난의 세월을 확인해 가슴이 먹먹하다고 대답했다. 그 분은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지요“라고 말했다.

 

그렇다. 소록도는 한센인들에게는 천형의 섬이자 낙원의 섬이기도 하다.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렛 두 분 뿐 아니라 많은 선의의 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봉사와 주민들의 끝없는 자구노력의 덕분이다. 일제시대에도 헌신적인 일본인 원장과 의사들도 있었으며 지금도 24년 째 의사로서 헌신적으로 한센인을 돌보고 있는 오동찬 씨는 올해 청룡봉사상 인상을 수상했다. 그는 신문 인터뷰에서 나병이 거의 사라진 지금에도 소록도하면 나병환자의 섬으로 불리워지는 것이 안타깝다며 이제는 소록도 주민들로 불러 달라고 당부했다. 나는 지금까지 한하운의 ‘소록도 가는 길’의 황토길이 주는 이미지 때문이지 소록도(小鹿島)하면 그 이름같이 작은 사슴의 슬픈 눈망울처럼 애련하게 생각해 왔다. 나는 소록도를 나오는 길에 해변에 서 있는 일제시대 식량창고와 주민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했던 신사의 자취를 바라보면서 나라가 없었던 시절 한센인들의 패맺힌 역사와 오랜 투쟁 끝에 되찾은 인권을 생각하면서 부슬비 속으로 걸어 소록도와 연결된 거금대교로 향했다. 거금도보다는 옆의 작은 섬 연흥도를 찾기 위함이다.

 

 

<계속>

 

 

*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빈무덤의 배낭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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