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무덤 2차 조국순례기 여덟 번 째 이야기
Newsroh=장기풍 칼럼니스트
소록도 국립병원을 나오는데 빗발이 제법 거세다. 경비실에 도착 거금도 버스편을 알아보니 다음 버스는 2시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소록도에서 거금대교를 거쳐 거금도 휴게소까지 거리는 3km다. 나는 걷기로 결심하고 가는 길을 물었다. 경비원이 노인네가 우산도 없이 어떻게 가시겠느냐고 걱정했다. 가랑비라고 하기에는 빗방울이 약간 굵지만 한두 번 경험한 것이 아니기에 걷기 시작했다.
얼마 안가 터널이 나타나고 터널을 벗어나자 거금대교의 위용이 드러났다. 총연장 2km 거금대교는 연도교로서는 드물게 2층 현수교다. 아래층은 보도와 자전거도로가 설치되어 있는데 나는 길을 잘못 들어 차도만 있는 2층으로 비를 맞으며 걸었다. 차량통행이 많지 않아 위험하지는 않았으나 비를 피할 방법은 없었다. 다행히 빗방울도 차츰 약해진다. 다리 위에서 얼굴에 부딪치는 차가운 빗방울은 내가 살아 있음을 자각하는 생명감과 상쾌한 느낌을 준다. 다리를 건너자 거금대교 휴게소가 나타났다.
거금도는 박치기왕 프로레슬러 김일 선수(1929~2006) 고향이라고 한다. 거금도 주민의 김일에 대한 자부심과 자랑은 대단했다. 김일 자신도 애향심이 대단했다고 한다. 주민들 말에 의하면 김일은 프로레슬링 배우기 위해 일본에 건너간 1956년 이전 국내 씨름대회를 휩쓸었다. 그는 부상(副賞)으로 받은 송아지와 쌀을 고향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고 한다.
그를 좋아하던 박정희가 하루는 김일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대통령이 소원을 물었다. 김일은 고향주민들 생업이 김을 채취하는 것인데 전기가 없어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T.V로 자신의 레슬링 경기도 볼 수 없노라고 대답했다. 6개월 뒤 거금도에는 전국 섬 가운데 가장 먼저 전기가 들어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만난 거금도 주민들은 한결같이 김일을 영웅으로 묘사했다. 고흥군은 2011년 거금도에 사업비 46억원을 들여 다목적 김일 실내체육관을 완공했다. 섬에 금맥이 있다는 의미의 거금도(居金島)가 거금(巨金)을 들여 김일을 기념한 것이다.
고흥반도와 가까운 거금도는 전국의 10번 째 큰 섬으로 인구는 4500명 정도로 해안선만 54km에 이르며 43km에 달하는 둘레길이 만들어져 있다. 해발 592미터 적대봉과 419미터 용두봉 등 가파른 산들이 있으며 적대봉 정상에는 조선시대 봉화대가 남아 있다. 거금대교를 지나면 휴게소가 나오고 그 아래는 금진(錦津) 선착장이다. ‘조금나루‘라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버리고 굳이 한문 지명으로 바꾼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여기 뿐 아니라 전국 대부분 지명과 명칭이 이 모양이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예전에는 녹동과 연결되는 거금도의 대표적인 포구였지만 지금은 섬 일주 유람선과 몇 척의 어선만 들락거려 쓸쓸하기 짝이 없다. 휴게소 광장에는 박치기 왕 김일을 상징하는 대형 철제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나는 선착장을 둘러보고 휴게소에서 전어구이 백반을 먹었다. 반찬으로 나온 톳무침에서 향긋한 바다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기운을 차린 나는 4km 떨어진 연흥도 나루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밭에서는 늙은 아낙네들이 줄을 지어 양파를 파종(播種)하고 있었다. 하루도 쉴 틈 없는 섬마을 주민의 일상이다. 울릉도 후유증으로 다리가 몹시 불편했다. 두세 시간마다 오는 버스를 기다리면 일정을 맞출 수 없다.
힘들여 도착한 연흥도 포구에는 서너 명이 4백미터 거리를 하루 일곱 차례 오가는 연락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배를 기다리는 동안 연흥도 부부와 이곳을 방문한 목사부부와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었다. 50대 연흥도 부부는 부인이 보건소장으로 남편이 함께 이주한 것이다. 주민 백 명 미만 연흥도에서 보건소장은 유일한 의사며 유지였다. 주민들이 이용하는 10인승 연락선은 5분도 안 돼 섬에 도착했다. 선착장의 아름다운 채색 소형등대는 한눈에도 범상치 않았다. 연흥도는 미술관도 있지만 섬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미술관으로 예술의 섬이다.
연흥도 미술관장 선호남 화백
<下편 계속>
*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빈무덤의 배낭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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