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의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50)
Newsroh=강명구 칼럼니스트
달리는 그 절대의 침묵 속에서 큰 호흡으로 마음을 어루만진다. 일정한 속도로 반복 운동을 하는 두 다리의 움직임 속에서 절대자를 부르는 경건한 의식을 치른다. 달리기는 내게 끝없이 밀려오는 고통 속에서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念願)을 담은 처절한 의식이었다. 달리기는 내가 신에게 바치는 최고의 제천의식(祭天儀式)이다. 이제 나는 달리면서 평화통일이라는 간절한 염원을 하나 더 얹었다. 덤으로 더 얹은 것이 이제 나의 모든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온전한 마음의 평화를 이루는 종교적 깨달음은 수도승이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달릴 때 큰 호흡을 하면서 자신의 육체에 온 정신이 집중될 때 큰 평화가 찾아온다는 하늘의 비밀을 알아내고야 말았다. 트라브존에서는 저 바다 멀리 지난번 동계올림픽 개최지였던 소치가 보이는 듯도 하다. 이제 곧 있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간에 이곳 흑해의 날씨처럼 훈풍(薰風)이 불어오고 있으니 내 발걸음은 더욱 탄력을 받는다.
차향 가득 실은 바닷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나의 마라톤에는 리듬이 절로 생겨난다. 뛰는 발걸음에 리듬이 있고 숨쉬기에 일정한 리듬이 있다. 심장박동 소리에 환희의 리듬이 있다. 달리면서 상쾌해진 선율(旋律)을 길 위에 오선지를 삼아 두 다리로 악장을 적어내며 뛰는 것도 멋진 일이다. 이렇게 탄력을 받으면 한동안 나의 달리기는 어떤 음악적 리듬을 타면서 춤사위에 가까워진다. 이쯤 되면 발길은 해변의 대지와 정분을 나누느라 정신이 없어진다. 나는 흑해연안을 달리면서 마치 파도 위를 뛰는 것 같은 가뿐함을 느낀다. 신이 바람이 되어 내 몸으로 들어와 공명(共鳴)하는 최고의 음악소리가 들리는 듯할 때는 분명 신내림의 무아의 지경에 빠진다.
대지 위에 펼쳐지는 나의 신명나는 춤에 대지도 즐겁게 반응한다. 아침 햇살을 받은 대지도 밤새 움츠렸던 몸을 기지개를 펴기 시작할 때 내 발길이 통통 통 두드려주면 대지도 움찔움찔하는 느낌이 발바닥에 그대로 전달된다. 태양과 나 그리고 대지가 하나가 되는 합일의 환희를 맛본다. 나무처럼 우리의 삶도 대지에 뿌리를 두고 사람들과의 교분을 수분으로 삼고, 그 사랑을 태양의 온기로 삼아 광합성작용을 하면서 이 땅 위에서 생장하며 번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트라브존의 이란영사관에서 이란 비자를 받았다. 앙카라의 한국영사관에서 협조공문을 미리 띄워서 비자를 받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아침 일찍 호텔에서 출발했는데 택시운전사가 이상한 곳에서 내려주어서 시간이 다소 지체되었고 은행에 가서 현금을 지불하고 영수증만 가져오면 끝난다고 했다. 문제는 오전 업무시간이 9시부터 12시까지이고 오후 업무시간은 2시 반부터 4시까지인데 은행에서 줄서서 기다리는 동안 12시가 다되어버렸다. 2시 반까지 기다리면 모처럼만에 갖는 나의 휴일을 모조리 날려버리는 것이었는데 다행히 12시 5분에 갔는데 비자 도장을 꽝 찍어주었다.
흑해 최대 도시인 터키 트라브존에서 느껴지는 정서는 복잡다단하다. 도심 메이단 공원에 이란 영사관 가는 길에 잠간 지나치는데 본토 흑해 주민과 아랍계사람들과 함께 러시아인들의 창백한 얼굴과 흔하게 마주친다. 트라브존은 흑해를 사이에 두고 조지아 등 옛 러시아 문화권과 맞닿은 곳이다. 고대 실크로드의 중요한 도시이기도 한 트라브존에서 리제에 이르는 지역은 세계 최고의 차 집산지이다. 흑해를 마주본 산비탈은 온통 차밭이다.
시간이 아까워 햄버거를 사고 택시에서 먹으면서 와서 달콤한 단잠을 자고 있는데 송교수님에게서 전화가 와서 악차아밧 시장이 나를 만나보고 싶어 하니 세수만 하고 나오라고 한다. 나는 시장이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 면담이라도 나의 오랜만의 꿀낮잠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끊고 그대로 자는데 다시 6시쯤 송교수님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 저녁은 어차피 먹어야하니 일어나서 시장과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한다. 나는 사실 저녁이고 뭐고 다 귀찮았다.
인구 12만의 휴양도시 악차아밧 시장은 늘씬한 키에 말수가 별로 없고 점잖은 중년신사였다. 그는 5년 임기의 시장직에 다섯 번이나 선출된 5선의 시장이다. 우린 시장차를 타고 악차아밧 코프테시로 유명한 바닷가 식당으로 갔다. 이 음식은 이 지방의 향토음식으로 트라브존을 알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음식의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한다. 조금 후에 시장님 사모님도 동쪽 끝에서 온 조금은 이상했을 손님들과 합석을 했다. 코프테는 우리의 동그랑땡과 비슷하며 중국의 난자완스와 비슷한 것인데 이 음식은 터키뿐만 아니라 이란, 이라크, 그리스, 인도 파키스탄에서도 똑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고 하니 음식은 국경을 초월하여 이미 지구촌시대를 앞서가고 있다.
통역을 하는 보좌관은 그의 아내와 함께 한국드라마를 자주 본다고 한다. 전화 통화로 인사한 그의 아내는 꽤 많은 한국말 단어를 알고 있었으니 문화의 힘이 그 어떤 무기의 힘보다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 일대는 홍차와 헤이즐넛의 세계적인 산지이며 여름이면 유럽인들도 많이 찾지만 특히 아랍인들이 많이 찾는 휴양지라고 한다. 아랍인들은 돈은 있는데 이렇게 산과 해변이 어우러진 자연경관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리제로 가는 길에서는 저 멀리 설산(雪山)이 아련하게 보인다. 이 리제 주는 3,000m가 넘는 산들이 즐비하다. 이런 산들의 겨울은 영하 20도로 떨어지는 것은 우습지만 이 해안가 도시는 1월 평균 기온도 6,7도이고 여름에도 23도 정도로 또 온화하여 습도가 많은 기후와 어우러져 차를 재배하기에 가장 이산적인 기후를 가지고 있어 온통 산비탈이 차밭이다. 차이쿠르는 터키의 국영차회사이다.
들판에는 바람이 일고 바다에는 파도가 일렁이고 내 가슴 한복판에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열망이 소용돌이친다.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열망이 달리면서 평화통일의 열망으로 전이가 되어 내 온몸에 펴져나가고 있다. 나의 달리기 제천의식은 천지보은(天地報恩)의 감사의 의식이며 혼신의 힘을 쏟아 부어 평화통일을 간구하는 의식이다.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강명구의 마라톤 문학’
http://newsroh.com/bbs/board.php?bo_table=g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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