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무덤 2차조국순례기
Newsroh=장기풍 칼럼니스트
완도 시외버스 터미널 인근 모텔은 값싸고 깨끗하고 친절했다. 오랜만에 숙면(熟眠)을 취했다. 아침 일찍 여객선 터미널로 향했다. 모처럼 날씨도 상쾌하고 숙면한 덕분으로 컨디션은 좋았으나 다리는 여전히 불편했다. 원래 계획은 여서도를 들렸다가 청산도로 향할 계획이었으나 여서도 배는 오후에 출발한다. 나는 청산도행 배표를 끊고 배에 올라 객실이 아닌 선미에 앉아 다도해의 크고 작은 섬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청산도를 생각하면 청산도 섬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17세기 성리학자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1689)의 ‘청산도 절로절로’라는 시가 연상된다. 나는 선미(船尾)에 앉아 청산도 절로절로 가락을 콧노래로 흥얼거렸다.
청산(靑山)도 절로절로 녹수(綠水)도 절로절로
산(山) 절로절로 수(水) 절로절로 산수간(山水間)에 나도 절로절로
그 중(中)에 절로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
영화 '서편제'에서 딸과 아버지가 '진도아리랑' 부르며 걷던 길
따지고 보면 노랫말처럼 절로절로 자란 내 인생이 벌써 늙기도 절로절로 나이 70고개를 넘었다.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이런 배낭여행의 호강을 누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특히 며칠 전 성인봉에서 주저앉고 다리가 불편한 다음에는 걷는 것도 예전보다 자신이 없어졌다. 그렇다고 단체여행은 내 취향에 맞지 않는다. 상념에 빠지고 있는 동안 여객선은 한 시간 만에 청산도에 도착했다. 청산도(靑山島)는 남해 연안의 전남 완도군 청산면의 주도다. 대모도, 소모도, 여서도, 장도 4개 유인도와 여러 무인도로 이루어졌다. 사시사철 푸르다 해서 '청산도'라 부른다. 산과 바다가 조화를 이루는 절경으로 옛날에는 신선이 산다는 '선산도(仙山島)' 또는 '선원도(仙源島)'라고도 불렀다. 인구는 6천 명 정도지만 해안선 길이만 42km로 꽤 큰 섬이다.
섬에는 해발 384미터 매봉산과 대봉산(334m), 보적산(330m) 등 300m 내외의 산이 사방에 솟아 있다. 섬 중앙부와 서부지역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있어 주민들이 어업과 함께 야채와 쌀농사를 할 수 있다. 연중 온화한 기온으로 동백나무. 후박나무 등 난대림이 경관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 조선시대에는 수군만호진이 설치되어 해양방어의 요충지 역할을 했으며 당시 쌓은 청산진성이 그대로 있다. 고종 때는 이곳 수군이 강진 해남 완도 일대의 방위를 담당했다. 1981년 12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지정되었고 2007년 12월 1일에는 국제 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슬로시티로 지정되었다.
국제 슬로시티연맹이 지정한 한국의 슬로시티는 11곳이다. 전남 신안군 청산도 담양군이 2007년 12월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인정받은 후 경남 하동, 충남 예산, 경기도 남양주시 전북 전주, 경북 상주와 청송, 강원도 영월, 충북 제천 등이 차례로 가입했다. 1999년 국제 슬로시티연맹이 창설된 후 슬로시티는 30개국 225개 도시가 가입되어 있다. 슬로시티 운동이란 달팽이 로고가 의미하듯 “천천히 살자”는 운동이다. 슬로시티는 바쁘게 사는 삶과 패스트푸드를 거부한다. 바쁜 현대사회에서 한 템포 느리게 살자는 운동이다. '슬로푸드‘ 먹기와 '느리게 살기'가 목표다.
1999년 이탈리아 중부 포도주 산지 오르비에토시에서 시작된 '패스트푸드'를 거부하고 깨끗하고 신선한 먹거리로 만든 음식을 먹자는 '슬로푸드 운동'의 이념이 자연스럽게 슬로시티 운동으로 번졌다. 여러 도시에서 대형마트와 패스트푸드점이 사라졌다. 대기오염과 속도의 상징인 자동차도 줄면서 삶의 만족도는 높아졌다. 속도와 생산성만 강요하는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벗어나 자연과 인간, 환경이 조화를 이룬 가운데 여유롭게 살자는 취지다. 슬로시티 선언문은 이런 취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우리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흥미를 갖는 도시, 훌륭한 극장, 카페, 여관, 사적(史蹟) 그리고 풍광이 훼손되지 않은 도시, 전통 장인의 기술이 살아있고 현지의 제철 농산물을 활용할 수 있는 도시, 건강한 음식과 즐거운 삶이 공동체의 중심이 되는 도시를 추구한다."
슬로시티로 인정받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슬로시티로 지정되면 관광객이 급증해 지역상권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격한 조건으로 지정받기도 힘들고 매 5년마다 재심사해 기준에 맞지 않으면 여지없이 탈락된다. 그동안 매년 충남 태안과 전남 구례, 전북 장수 등이 꾸준히 슬로시티를 신청했지만 국제슬로시티가 제시하는 엄격하고 깐깐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번번이 실패했다.
청산도는 슬로걷기 축제가 열리는 4월~5월 관광객이 급증한다. 특히 청산도의 슬로길은 2011년 국제연맹으로부터 세계최초의 슬로길로 공인받았다. 슬로길은 청산도 마을 길을 다듬어 2010년 11개 코스 42.195 Km의 둘레 길을 만들었다. 아름다운 풍광에 취해 절로 발걸음이 느려진다하여 슬로길로 명명했다. 마라톤 풀코스와 똑같은 길이는 ‘뛰는 빠름과 걷는 느림’을 상징한다. 처음 청산도여행 목적은 슬로길 일주였다. 그러나 울릉도에서 다친 후 하루 20Km 이상 걷던 것이 10Km도 버겁다.
나는 관광안내소에서 지도를 얻어 다리를 절룩거리며 서편제 촬영장 언덕길을 올랐다. 서편제에서 양아버지가 장구치고 그가 장님으로 만든 양딸이 한 맺힌 목소리로 창하면서 덩실덩실 걷던 길이다. 길에는 돌로 위장한 스피커에서 부녀가 불렀던 진도아리랑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옆에는 KBS 드라마 ‘봄의 왈츠‘ 촬영지로 당시의 세트집이 보존되어 있다. 그곳을 걷다가 2기의 초분(草墳)을 목격했다. 사람이 죽으면 바로 매장하지 않고 풀이나 짚 이엉을 덮어 2,3년 후 뼈만 추려 매장하는 풍습으로 남해안 특히 청산도에서는 지금도 행해진다. 책에서만 보던 초분을 직접 목격한 것이다.
<계속>
* 글로벌웹진 NEWSROH 칼럼 '빈무덤의 배낭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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