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한인언론인협회 회원사들의 친목과 화합을 다지고, 지역모임의 활성화를 위한 세계문화유산탐방 시리즈 첫 행사가 1월5일부터 8일까지 3박4일간 캄보디아의 세계적인 문화 유적지 앙코르와트가 있는 시엠립과 프놈펜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호주 언론사 대표로 참여한 본 기자는 세계 각국의 언론인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라 긴장감 속에 캄보디아를 찾았다. 환한 얼굴로 기자를 맞이해 준 비슷한 나이 또래인 주간교민정보지 뉴스브리핑 캄보디아의 정인솔 편집장과의 만남으로 긴장은 어느새 풀려 편안한 마음으로 일정 가운데 서 있었다.
정인솔 편집장은 캄보디아를 유창히 해 한국어-캄보디아어 전문학교(KLC)에서 캄보디아어 강의도 하며, 뉴스브리핑의 재정, 취재, 기사작성, 광고, 편집까지 총괄하고 있다.
<정인휴씨가 운영하고 있는 ‘까로나의 캄보디아’ 유투브채널 영상의 한 장면.>
뉴스브리핑은 캄보디아 한인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유력 언론매체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100면이 넘는 주간신문으로, 지령 700호 발행을 앞두고 있다. 캄보디아 어학원을 운영하는 것은 물론 ‘까로나의 캄보디아’ 유투브채널은 조회수 150만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직접 촬영 및 편집을 담당하며, 캄보디아어 강의 내용과 문화 소개 영상 등을 업로드 하고 있는 정 편집장의 오빠인 정인휴 씨는 캄보디아사람 사이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인사라고.
사실 이번 행사는 정인솔 편집장의 주도로 진행됐다. “아버지인 정지대 대표님이 세언협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크신데 사실 건강이 점점 안 좋아져 생일선물로 가장 애착을 갖는 세언협 회원사분들과 함께 잊지 못할 시간을 보내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라고 개인적으로 이번 행사를 기획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행사 내내 효심 넘치는 그의 모습은 참석자 모두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기대, 작은 희망의 시작
2001년 2월, 16살의 나이에 캄보디아에 온 정인솔 편집장. 사춘기 끝자락에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낯선 캄보디아 땅은 좀처럼 익숙해 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사업이 급작스럽게 어려워짐에 따라 이민을 선택했고 첫 1년동안은 학교도 다닐 수 없었다. 17살에 처음 중국인학교에 들어가게 됐는데, 중국어를 전혀 못하니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야 할 나이에 초등학교 1학년으로 학업을 시작했다. 1년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다 보니 그저 아침에 집 밖을 나서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회고한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도 삶의 의지도 없이 절망감은 깊어져 갔다. 하루하루 힘들게 연명하는 삶에 지치기도 했다. 그때 한인교회에 새로 오신 선교사님이 하신말씀이 삶의 전환점이 됐다.
“너의 10년후가 너무나도 기대된다”
처음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계획을 기대하며 말씀에 의지하는 작은 소망을 품는 하루하루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캄보디아 뉴스브리핑 정지대 대표(오른쪽)과 정인솔 편집장(왼쪽).>
마음이 부자인 나라, 캄보디아
한국에 가서 중학교,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보고 돌아와 프놈펜 왕릭대학 캄보디아 문학과에 입학했다. 사실 그는 캄보디아는 낙후된 후진국으로 치부하며 캄보디아어를 배울 생각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2004년 코이카 봉사단 코디네이터 아르바이트를 할 때 처음으로 캄보디아어를 체계적으로 배우게 됐고, 관심을 점차 갖게 되면서 캄보디아 문학과에 진학을 결정했다.
캄보디아어는 문자가 어렵지만 문법은 쉬워 단어와 단어만 연결하면 대화가 되기 때문에 쉽게 배울 수 있다고 정 편집장은 설명했다. 처음엔 글자 모양과 발음 때문에 외계어를 배우는 것만 같았다고도 말한다. 간호사는 ‘낄리어누파타예까’ 낙천적은 ‘소티떼니윰’, 조공은 ‘쑤어이싸아꺼’등 읽기도 힘든 단어는 멜로디를 붙여 노래로 외우기도 했다.
언어적으로 자유롭다 보니 캄보디아에 정착하는 분들을 위해 정보를 나눌 수 있는 교민정보지를 운영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임 편집장은 말한다. 17년간 생활하면서 쌓인 캄보디아 생활 tip을 소개하는 코너가 뉴스브리핑에서 가장 인기있는 코너이기도 하다.
캄보디아 대학생활은 공부 보다는 문화에 적응하는데 더 어려운 시간이었다 회상한다. 다행히 4살 터울인 오빠와 재학생활을 같이 해 서로 의지하면서 지낼 수 있었지만 문화의 벽은 쉬이 낮아지지 않았다. 1교시의 시작은 아침 7시였는데 집에서 6시쯤 나와 오빠가 운전하는 오토바이 뒤에 앉아 새벽바람을 가로지르며 학교에 도착해 쌀국수를 먹고 수업에 들어갔다. 그렇게 도착하면 휴강하는 날이 비일비재. 미리 공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자리에 앉아 기다린지 20분 가량이 지나도 교수님이 안오면 그저 휴강이라 생각하면 된다.
3시간 강의 시간에도 수업은 한 20분 가량 뿐이고 매번 비슷한 농담만 주고 받는것도 다반사라 도대체 공부를 하는건지 답답했지만 더 이상한건 아무도 화를 내지 않는점이었다. 시험시간에 학생들 모두 컨닝을 하는데 그게 너무 화가나서 백지를 냈더니 교수님이 ‘왜 컨닝을 해서 답을 쓰지 않았냐’고 오히려 혼을 낸 일 등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었다.
고분분투 지나간 4년간의 대학생활이었지만 캄보디아 분위기를 익히고 문화를 배우는 귀한 시간이 됐다. 캄보디아는 접촉사고가 나도 서로 욕하거나 싸우지 않는다. 가끔 어떻게 화를 내지 않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되는 상황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행복한 사람들같아 보이기에 부럽기도 하다고.
경제적인 부를 누리고 살진 않지만 그들의 모습에서 항상 미소가 떠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그들의 마음이 부자이기 때문은 아닐까.
“저희 아버지는 제가 어릴적 오랫동안 알코올 중독이라는 병으로 고생하셨습니다. 가족들 모두 고생했지만 본인이 가장 힘드셨겠죠. 정신병원에서 생활하시는 동안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시고 기적적으로 제가 12살이 되던해 아버지는 술을 끊으셨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21년동안 한모금도 드시지 않았어요. 이후 17년 동안 캄보디아에서 또 새롭게 뉴스브리핑캄보디아라는 교민지를 일궈내신거에요. 저희 가족에겐 이곳에서의 17년이 하나님께서 덤으로 주어진 시간같아요. 온 가족이 한 곳에 모여 사는 것 만으로도요”
행사 기간 내내 뉴스브리핑의 정지대 대표는 딸 자랑에 여념이 없었고, 정인솔 편집장은 참석자 들에게 한결같은 정성과 배려로 대해 큰 감동을 줬다. 화려하고 편리한 삶과는 조금 떨어진 소박하지만 따스한 그곳에서의 삶이 더욱 빛나 보이는 건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실천하며 사는 삶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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