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인들은 야외를 좋아하는 종족임에 분명하다. 카페나 펍, 레스토랑을 가도 옥외 테이블이 더 인기다. 대중적 놀이 공간으로서의 공원 인프라도 아주 뛰어나다. 해변은 또 어떤가. 시드니만 해도 어느 지역에 거주하든 자동차로 20분 이내면 해변을 즐길 수 있다. 이런 호주의 여름 즐기기에 함께 하려는 해외여행자들이 놀라는 부분도 있다. 비치와 면한 공원에서 한낮의 바비큐를 즐기는 젊은이들(사진).
호주의 여름, 해외여행자들이 놀라움을 주는 것은
텔레비전에서는 온 종일 스포츠, 특히 크리켓 경기가 하루 종일 방영된다. 해설자는 알아듣기 힘든, 그렇다고 경기에 대해 특별한 것도 없는 말들을 끊임없이 웅얼거린다. 펍(pub)이나 호텔 등 공공장소의 스크린에서 방영되는 이 경기를, 그러나 집중해 보는 이들은 거의 없다. 너무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리모콘을 잡고 채널을 바꾸어버리고 싶을 정도이다.
호주 출신으로 영어권에서는 꽤 유명한 여행작가 벤 그라운드워터(Ben Groundwater)씨가 간단하게 묘사한 여름, 호주 휴일의 한 풍경은 마치 이상(본명 김해경)의 산문 ‘권태’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여름날의 일요일, 특별한 액티비티 없이 숙소나 인근 공공장소에서 휴식을 갖고자 하는 여행자라면, ‘여행지가 이토록 끔찍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라운드워터씨는 “이것이 호주의 여름”(Yes, this is summer in Australia)이라고, 해외 여행자들에게 서슴없이 말한다. 뿐 아니다. 그가 호주의 여름에 대해, 그가 말해주는 ‘충격’과도 같은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북반구 국가에서 호주를 여행하는 이들, 특히 12월이나 1월의 추위를 피해 호주에서 따뜻한(?) 시간을 보내려 했던 이들이라면, 그가 ‘13 things that shock foreign visitors’라는 글에서 언급한 내용들은 그야말로 더욱 실감나게 다가올 듯하다.
이를 두 차례에 걸쳐 알아본다.
■ It's hot at Christmas
호주의 공식 여름은 12월부터 2월이다. 12월말쯤 되면 호주의 무더위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전 세계인들의 가장 큰 축제인 크리스마스를 찌는 듯한 날씨 속에서 즐겨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긴 해도 크리스마스 기분은 느껴지지 않나?” 이 말은 아마도 여름 시즌을 기해 호주를 방문한 해외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일 수 있다. 그렇다. 한겨울의 추위와 풍성한 함박눈을 기대하며 이 축제를 보냈던 이들도 해변에서 서핑 산타를 즐기고, 나름대로 크리스마스 전구를 장식해 불을 밝히고, 트리에는 가짜 눈을 얹고, 밤이면 모두들 해변으로 나가 소시지와 새우 바비큐를 즐긴다. 하지만 아무리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분위기를 내려 해도 한겨울의 크리스마스에 익숙한 북반구의 여행자들에게 찜통 같은 날씨에서 보내야 하는 호주의 크리스마스는 결코 진짜 크리스마스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크리스마스 시즌의 해변 풍경. 북반구의 여행자들에게는 해변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가 낯설게 느껴질 듯도 하다.
■ We have giant flying cockroaches
손가락만한 벌레가 빛의 속도로 라운지를 휘젓고 종종 천장에 부딪히면서 휙휙 날아다니는 장면을 처음 본 사람이라면, 손에 닥치는 대로 신문이나 웃옷을 벗어 이리저리 흔들어대다 마침내 어렵사리 이 벌레를 잡고 보니 그것이 바퀴벌레(cockroach)였음을 확인한 뒤,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간 다음 “앞으로 호주 여행은 다시 없을 것”이라고 눈물까지 짜며 투덜거리는 모습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여름 밤, 발코니 등에서 불을 밝히고 앉아 있으면 그야말로 손가락 만한 바퀴벌레가 날아들기도 한다.
■ You'll get sunburnt, even in Tassie
사실 여름 시즌에 호주를 여행한다면 가장 주의해야 하는 사항 중 하나이다. 그만큼 해외여행자들이 호주의 강렬한 햇살, 특히 여름철의 뜨거운 햇볕에 놀란다는 얘기다. 강렬한 햇살로 인해 피부암(skin cancer)은 호주의 가장 흔한 암이기도 하다. 이 피부암으로 인한 정부의 의료비 지출은 연간 10억 달러 이상에 달하며 매년 2천 명 정도가 피부암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집계되어 있다. 또한 70세까지 피부암 진단을 받는 이들은 3명 중 2명에 달한다.
강한 햇볕으로 피부가 탈 경우 피부암의 가장 치명적인 흑색종(melanomas) 발생할 가능성은 95%에 달한다. 호주 정부는 국민들에게 이를 인식시키는 캠페인을 통해 치명적인 피부암 발생을 줄이기는 했지만, 호주 내국인들조차 매 여름 400만 명 이상이 맨 피부로 외출한다는 조사도 있다.
전문가들은 야외 활동을 할 경우 선크림을 덧바르는 것이 좋다고 ‘강력’ 권고한다. 그것도 자외선 차단지수(SPF. Sun Protection Factor)가 높은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피부암은 치료가 손쉽지만 발병 즉시 치료해야 한다. 호주에서 피부암으로 인한 사망자는 연간 2천 명에 이른다. 매 6시간마다 한 명이 이 질환으로 사망하는 셈이다. 놀랄만한 수치이다.
그라운드워터씨는 이를 언급하면서 ‘even in Tassie’라고 덧붙였다. 호주 남단의 섬으로 본토(섬이기는 하지만)보다 겨울에 춥고 여름에는 덜 더운 ‘태시’(Tassie. Tasmania 또는 타스마니아 사람)에서도 햇볕에 피부가 타는 것은 예외가 아니라는 얘기다.
한 여름 호주를 여행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사항 중 하나가 강한 햇볕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일이다. 피부암은 호주에서 가장 흔한 암이며 이로 인한 정부의 의료비 지출은 연간 10억 달러가 넘는다.
■ There are jellyfish…
그야말로 호주의 여름, 해변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가장 귀찮은 바다생물 중 하나인 듯하다. 특히 이 젤리피시(jellyfish)의 촉수에 쏘여본 여행자라면 호주의 여름은 가장 놀라운 경험으로 오래 기억될 듯하다.
젤리피시는 호주 및 뉴질랜드에서 ‘Bluebottle’로 불리기도 하는데, 해변에 나왔을 때 색깔과 모양이 파란 병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Portuguese Man of War’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는 바다를 항해하는 포르투갈 전투함 모양에서 유래됐다. 여름이면 호주의 해변에서 가장 기승을 부리는 해파리로, 대개는 무리를 지어 다니며, 바다에서 육지로 부는 바람을 타고 곧잘 해안에 나타나곤 한다. 이 해파리는 파란색의 풍선껌 모양으로 꼬리 쪽에 길고 푸른 촉수를 끌고 다니는데, 해파리는 이 촉수를 이용해 다른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또는 바다생물을 먹이로 한다. 촉수의 독은 아주 지독해 먹이를 구하는 데 아주 유용하다. 해파리의 촉수를 마이크로 현미경으로 보면 수염처럼 긴 줄을 볼 수 있다. 이 촉수에 쏘이면 그야말로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따르며, 수 시간이 지나야 겨우 가라앉지만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
뜨거운 날씨로 당장이라도 바다에 뛰어들고 싶지만 이 해파리 때문에 그럴 수 없다면... 해파리가 없는 바다를 즐겼던 여행자들에게는 ‘아주 잔인한 농담’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지난 2017년 1월, 멜번대학교 연구진이 ‘내과 저널’(Internal Medicine Journal)을 통해 소개한 ‘호주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곤충’(본지 2017년 1월19일 자 보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00년-2013년 사이 젤리피시에 쏘여 목숨을 잃은 사람은 3명이며 3,707명이 병원 신세를 졌다.
미국 출신으로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유명 여행작가 중 한 명인 빌 브라이슨(Bill Bryson)의 호주 여행기인 <Down Under>라는 책에는 젤리피시에 대한 흥미 있는 묘사가 있다(그는 호주 취재 당시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서 일하는 디어드리라는 사람의 안내를 받고 해변을 나간 적이 있는데, 그때 이들이 해변을 떠다니는 젤리피시를 발견한 것이다. 그럼에도 브라이슨은 이 해파리의 위험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젤리피시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내게 디어드리가 대답했다.
“위험하냐고요? 아뇨. 하지만 스치지 않도록 하세요.”
“왜요?”
“약간 불편할 수도 있거든요.”
나는 감탄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긴 버스여행은 불편하다. 삐걱거리는 나무의자는 불편하다. 대화하는 도중에 잠시 침묵이 어이지면 불편하다. 포르투갈 전함에 쏘이면 고통스럽다(아이오와 사람들조차 알고 있다). 호주 사람들은 위험에 많이 둘러싸여 있다 보니 거기에 대처하는 완전히 새로운 어휘를 개발한 것 같다.
‘젤리피시’(jellyfish)는 해변을 즐기는 호주인들이 가장 기피하는 여름철 불청객일 것이다. 바람을 타고 해변 가까이 몰려드는 이 바다생물의 긴 촉수에는 강력한 독이 있어, 여기에 쏘이면 극심한 고통을 맛보아야 한다.
■ And crocodiles…
그리고, 악어가 산다. 그것도 엄청 많다. 이는 해파리뿐 아니라 악어 때문에 종종 뜨거운 여름날, 바다나 강 속으로 뛰어들 수 없음을 의미이다. 물론 퀸즐랜드(Queensland) 북부, 북부 호주인 노던 테러토리(Northern Territory) 지역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 지역의 바다나 강에 서식하는 솔트악어(saltwater crocs)는 호주의 가장 위험한 동물 중 하나이다. 악어에 의해 목숨을 잃는 경우는 다른 곤충이나 파충류에 비해 적지만 영악하게 사냥을 하는 악어는 쉽게 먹이를 놓치지 않는다.
워낙 잘 알려진 위험 동물로 인식되어 악어에 의한 사망자 수는 적지만 퀸즐랜드 북부 또는 북부 호주(Northern Territory)를 여행하는 이들은 악어 경고 표지판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 And snakes
뿐이랴. 호주에 서식하는 뱀은 또 어떤가.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맹독을 가진 10개 종류의 뱀 중 5종 이상이 호주에서 발견된다. 물론 사람들이 주로 거주하는 해안 지역(호주 인구의 85% 이상이 일부 해안과 가까운 5% 정도의 지역에 몰려 있다)에서는 크게 위험하지는 않지만 풀이 무성한 지역, 공원 등에서 가끔 발견되는가 하면 한 여름, 서늘한 곳을 찾아 집안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이따금 이런 사례가 미디어에 보도되면, 이 같은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던 여행자들에게 놀라움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
위 ‘There are jellyfish...’에서 언급했듯 멜번대학교 연구진이 소개한 ‘호주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곤충’에 따르면 지난 2000년-2013년 사이, 뱀에 물려 사망한 이는 27명에 달하며 6,123명이 병원치료를 받아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맹독을 지닌 뱀 가운데 5종이 호주에 서식한다. 냉혈동물인 뱀은 한 여름, 서늘한 곳을 찾는 창고나 집안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사진은 강력한 독을 지닌 Eastern brown snake.
■ It's hot, and then cold, and then rainy, and then hot again
호주 여행을 안내하는 정보 책자 등에서 호주의 변덕스런 날씨를 언급한 부분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때문에 해외여행자들이 실제로 겪는 날씨변화는 적응하기 힘든 부분일 수도 있다.
호주에는 하루에 4계절이 있다는 말이 있다. 특정 지역에서는 이런 하루의 날씨 변화, 기온 편차가 아주 극심하기도 하다.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기후로, 한 여름에는 종종 열풍이 불어 숨을 멎게 한다. 그야말로 시원한 바람을 내보내는 에어컨의 뒤쪽에서 뿜어내는 뜨거운 바람을 상상하면 이 열풍이 어느 정도인지를 설명할 있을 듯하다. 내륙에 비해 더위가 덜한 시드니만 해도 열풍이 부는 날, 최고 기온이 영상 50도를 기록한 경우도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가 하면 엄청난 낙뢰와 함께 장맛비를 쏟아내며 기온을 한순간 뚝 떨어뜨린다. 영상 35도 넘게 기록했던 날씨가 다음날이면 20도로 떨어지기도 한다. 하루 사이로 엄청난 기온차를 보이는 여름 날씨는, 호주에서의 경험이 없는 이들에게 또 하나의 놀라움이 아닐 수 없다.
열풍이 부는 날 한낮의 시드니 도심. 카메라에 잡힌 빛에서 열기가 느껴진다.
▶다음호(1280호)에 계속
김지환 기자 jhkim@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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