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호 홍기탁씨 100일째

기업도 정부도 나몰라라

 

 

Newsroh=노창현기자 newsroh@gmail.com

 

 

동계올림픽 열기가 한창인 한국에서 두명의 노동자가 100일 가까이 75m높이의 굴뚝에서 외로운 고공농성(高空籠城)을 벌이고 있다.

 

파인텍(스타플렉스)의 노동자 박준호 홍기탁씨는 오는 19일 고공농성을 시작한지 100일이 된다. 대체 왜 두사람은 엄동설한(嚴冬雪寒)에도 까마득한 굴뚝 위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을까.

 

2010년 10월, 스타플렉스는 자회사 스타케미칼을 설립하고 한국합섬 제2공장을 인수했다. 파산한 빈 공장을 지키던 한국합섬 노조는 5년간의 투쟁을 정리하고 고용보장과 공장 정상화를 약속받았다. 하지만 공장 가동 1년 8개월 후, 김세권 대표는 시무식에서 '공급과잉'을 이유로 공장가동 중단을 선언했다. 차광호 지회장은 “공장 가동 중단이나 해외이전, 공장 매각 같은 상황이 있을 때 노조와 6개월 전에 합의해 이행하는 절차를 모두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차광호 지회장은 45m의 공장굴뚝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였다. 2014년 5월부터 2015년 7월까지 무려 408일간의 고공농성이었다. 결국 고용.노동조합.단체협약의 3개 승계에 합의한 김세권 대표는 2016년 1월 해고노동자를 고용하기 위해 충남 아산에 파인텍을 세웠다.

 

그러나 직원은 복직된 8명에 불과했다. 공장은 허허벌판에 세워진 300평도 안 되는 비좁은 공간이었고 기숙사엔 선풍기도 TV도, 심지어 이불도 없었다. 식사는 한 끼만 제공됐고, 나머지는 자비로 충당했다. 시급은 7,030원, 수당과 상여금은 전무했다. 열 달 일하는 동안 손에 쥔 임금은 천만 원이 채 안 됐다. 그 사이 동료 3명이 그만두고 5명이 남았다.

 

파인텍은 공장 가동 8개월 만에 다시 문을 닫았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2017년 11월 박준호 홍기탁 두 명의 노동자가 목동의 열병합발전소 75m 굴뚝에 올라갔다. 몸하나 뉘울수 없는 까마득한 높이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이들은 “‘진짜 사장’ 김세권 스타플렉스 대표는 단 한번의 반응도 없고, ‘바지 사장’ 강민표 파인텍 대표(스타플렉스 전무)와는 18차례의 교섭에도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김세권 대표는 파인텍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어떠한 대화 요청도 거부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들을 돕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12일 목동 스타플렉스 본사 앞에서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다!“며 뜨거운 목소리를 외친 것이다. 이날 행사는 원로운동가 백기완선생과 금속노조 이승렬 부위원장, 박래군 인권재단사람 소장, 명진 스님, 최헌국 목사, 임정희 문화연대 공동대표, 정세훈 민예총 이사장, 이해성 적폐청산 문화예술위원회 공동위원장,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과 각 진보정당 대표 등 각계 인사들이 두루 자리했다. 황철우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장의 사회로 굴뚝에 올라갔던 김정욱 쌍용자동차노조 사무국장의 발언과 결의문 낭독, 떡국컵 나눔 행사 등이 이어졌다.

 

이들은 “파인텍 노동자들은 2006년부터 13년간 정리해고, 위장 폐업 등에 맞서 거리에서 싸웠지만 회사는 2015년 공장 정상화, 단체협약 체결을 약속한 뒤 또다시 약속을 어겼다. 이대로 약속 불이행을 보고 있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박준호·홍기탁의 75m 굴뚝고공농성이 19일로 100일이 된다. 두 노동자는 민족의 명절인 설에도 차디찬 겨울 고공의 칼바람을 견디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작 약속을 지켜야할 당사자인 스타플렉스 김세권은 단 한번의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굴뚝고공농성 100일을 맞아 집중투쟁주간을 선포하고, 파인텍 노동자들의 투쟁 승리를 위해 '스타플렉스 김세권은 약속을 지켜라!' 릴레이 1인 시위, 설맞이 굴뚝고공농성장 떡국 나눔, 2월 19일 굴뚝고공농성 100일 집중문화제, 2월 23일 파인텍 투쟁 승리를 위한 금속노조 결의대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굴뚝농성.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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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뉴스>

 

‘408+93일’의 야만을 목도하며

 

2014년 5월 27일부터 2015년 7월 8일까지 ‘408일’ 동안 고공농성을 해야 했던 노동자들입니다. 기네스북 최고 기록이라는 야만입니다. 하늘을 나는 새도, 생각이 낮다는 동물도 그렇게 가둬두면 죽거나 미쳐버릴 야만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렇게 싸워 합의된 고용승계, 노동조합 승계, 단체협약 승계도 공염불이었습니다. 다시 길거리로 나앉아 싸우던 스타플렉스(파인텍 모회사) 노동자들이 ‘다시’ 저 75m 고공으로 오른 지 벌써 ‘93일’째입니다. 사측은 교섭 제의 한번 없고, 정부는 나몰라라입니다.

 

그런 사회가 한국사회입니다. 돈의 가치만이 최고인 경쟁사회의 틈바구니 속에서 2200만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살얼음판 같은 현실을 살아야 하는 사회입니다. 그중 비정규직이 1100만 명입니다. 100대 재벌 사내유보금만 천 조를 넘어선 극악한 독점과 야만과 폭력의 사회입니다. 인구의 0.1%도 안 되는 재벌과 대주주들의 무한한 행복의 독점을 위해 겨울 담쟁이 넝쿨처럼 말라가는 수많은 인간가족들의 풍경이 아픕니다. 누군가 떨어져 죽었다 해도 눈 하나 줄 겨를 없이 살아가는 이 광폭한 신자유주의 시대 삶의 풍경이 아픕니다. 누군가를 보듬기 위해서가 아니라 떨구어 내기 위해서 이전투구로 피눈물을 흘려야 하는 이 경쟁의 시대가 아픕니다. 촛불혁명을 이루었다지만 평화와 평등, 모두의 안녕을 향해서는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는 정치사회 현실이 아픕니다. 여전히 또 다른 박근혜들과 이재용들이 사회의 주류가 되는 현실이 암담합니다.

 

그래서 박준호와 홍기탁은 자신들의 생존권만이 아니라, ‘헬조선 타파!’, ‘노동악법 철폐!’, ‘수구야당 해체!’, ‘국정원 해체!’ 등을 외치며 올라갔나 봅니다. 바보스럽게 이 모든 악의 축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는 꿈을 꾸었나 봅니다.

 

그들이 하루 속히 이 평지로 내려오게 해야 합니다. 한국사회 노동자 민중들의 안전이 보장되는 세상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2018년 저 하늘바다에 외롭게 떠 있는 ‘세월호’가 다시 기울어지게 우리 모두가 ‘가만히 있으면’ 안됩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은 나와 우리 사회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에 다름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시민사회 모두가 ‘굴뚝이’들이 되어 오늘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명절을 맞을 수 없는 그들을 응원하고 함께 지키고, 함께 싸우기 위해 모였습니다. 다시는 누구도 저런 삶의 벼랑으로 내몰리게 해서는 안된다는 분노를 안고 모였습니다. 스타플렉스를 함께 응징하겠다는 결의로 모였습니다. ‘가만히 있는’ 촛불정부를 야단치고 혼내기 위해 모였습니다. ‘408+93일’의 야만을 증언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408+93일’이 절망이 아닌, 새로운 희망의 숫자로 한국사회에 새겨지게 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들은 2016년부터 2017년 겨울을 꼬박 ‘박근혜퇴진 광화문 캠핑촌’에서 보냈던 촛불항쟁의 주역들입니다. 그들이 다시 2018년 노동자민중 항쟁의 차디찬 봉화가 되어 저 하늘 위 굴뚝에 올라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투쟁에 함께 해야 합니다.

 

2018년 2월 12일

 

스타플렉스(파인텍)굴뚝고공농성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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