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와 남북단일팀
[i뉴스넷] 최윤주 편집국장 editor@inewsnet.net
시작 전부터 우려와 반발이 빗발쳤다.
나라밖에서는 평화올림픽의 토대를 닦았다며 벅찬 감격의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정작 나라 안은 시끄러웠다.
정치권에서는 북한의 체제 선전에 이용되는 게 아니냐며 신경전이 치열했고, 체육계 안팎에서는 조직력 약화를 우려하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하나의 민족이면서 두 개의 나라로 갈라진 현실처럼, 한 팀인 듯, 한 팀이 아닌 채 남북 단일팀의 올림픽은 그렇게 시작했다.
5전 5패. 참담한 기록이다.
숫자를 드러내면 더 참혹하다. 0대8, 0대8, 1대4, 0대2, 1대6.
세계 랭킹 22위인 한국과 25위인 북한이 최정예 선수들만 모아 아이스링크를 누볐어도, 세계 5위 스웨덴, 6위 스위스, 9위 일본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27일간의 대장정은 그렇게 끝이 났다.
초라한 성적표이지만 단일팀이 거둔 성과는 위대하다.
“미디어에선 우리가 두 팀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한 팀이었다.”
남북단일팀을 이끈 세러 머리 감독의 일갈이다.
“이게 바로 올림픽 정신이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의 찬사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까지 남북 단일팀을 유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
르네 파젤 국제아이스하키 연맹 회장의 약속이다.
평창올림픽 개막식이 열렸던 지난 9일.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성화대를 향해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던 남북선수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장면을 예상하고 만들지는 않았겠지만, 달항아리 모양으로 만들어진 성화대를 향하는 그들의 발걸음은 가슴 찌릿한 감동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조선 백자인 달항아리는 따로 만들어진 몸통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붙인 도자기다. 두 개의 대접을 붙이다보니 접합부분이 어긋나 일그러지기도 하고, 장작불이 훨훨 타는 가마 안에서 무게와 장력을 견디지 못하고 주저 앉거나 변형되기 일쑤다.
전문가들은 완벽하지 않은 무기교의 기교. 이것을 달항아리의 소박미라 일컫는다.
수많은 우연과 변수를 뚫고 중력을 거스르는 도공의 집념으로 만들어진 달항아리는 갖은 시련과 난관을 이겨내고 꼴찌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낸 남북 단일팀의 뜨거운 열정과 맞닿아 있다.
이제 우리 차례다. 두 개의 조각을 붙여 하나의 달항아리를 만들기 위해 수없이 많은 도자기를 깨야만 했던 조선시대 도공의 결연한 의지가 온 국민에게 필요하다.
평창에서 일궈낸 하나된 기적의 역사는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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